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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담아 Feb 24. 2024

봄이 오면 가리1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부론면 현계산 거돈사지



그래 이것이 사랑이다 


날씨가 따뜻해져 봄이 살랑거리자 마음이 먼저 들떴던 얼마 전이었다.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봄이면 거돈사지를 가리 했다. 큰 느티나무 아래서 3층 석탑을 보고 있으면 천 년을 담은 듯한 하늘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다고. 그 말 한마디 했다가 덜컥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거돈사지의 시그니처 천 살 먹은 느티나무

"가자, 당장! "


무서운 언니들이다. 다음 날 새벽같이 만나 거돈사지로 향했다. 돗자리, 커피, 과일, 주전부리를 싸서. 전에는 정산분교였던 자리에 거돈사지 전시관이 생겼다. 전시관에서 거돈사지로 데크를 놓아 길이 이어진다고 했다. 


"아니 거돈사지는 저 아래서부터 걸어야 맛이야."


온몸으로 저 느티나무를 맞이하는 것부터가 거돈사지 답사의 시작이다. 오래 살아 늙은 티를 낸다고 느티나무라 했다던가?  천 년을 넘게 살았다는 느티나무를 그저 바라보며 다가가는 것만으로 가슴 설레는 떨림이 온다. 


그래, 이것은 거돈사지를 향한 나의 사랑이다.  



비어있음을 그리워했다 


"아무것도 없네!"

"그래서 오는 거야."


맞다 거돈사지는 석탑 한 기, 승탑 한 기(진짜는 국립중앙박물관 마당에 있다), 승탑비 한 기, 그리고 자리를 잃은 석물들을 모아놓은 것이 전부다. 그러므로 무엇을 보러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텅 빔을 누리러 가는 것이다. 발굴을 끝내고 덮은 잔디밭에서, 느티나무 아래에서, 석축 위에서 그저 본다. 바라보다가 들여다보다가, 내려다보다가 걷는다. 이곳을 채우는 것은 오직 바람, 하늘, 구름뿐이다. 

거돈사지를 지키는 3층석탑(보물 제750호)

그저 한참 있다가 답사객은 상상으로 텅 빈 것을 채운다. 3층석탑 뒤로 부처님을 모신 금당이 있었을 것이다. 금당 중앙에 있는 큰 돌덩이 같은 저곳에 부처님이 앉아 계셨을 것이다.  크기로 보아 부처님의 크기는 이만했을 것이고, 그 불상의 크기로 금당의 크기는 또 이만했을 것 같다는 상상. 그때 차를 세웠던 정산분교에서 봤던 당간지주가 아주 컸던 것까지 기억을 합친다. 


상상은 관심사에 따라 다르게 펼쳐질 것이다.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은 공간구성을, 미술사에 관심 있는 사람은 석물들의 양식과 배치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천 년을 가르는 바람소리를. 나는? 그러저러한 것은 잘 모르는 무식쟁이다. 


그저 얼토당토 않은 상상을 했다가 지우고 다시 비운다. 그리하여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곳이라 좋다. 하지만 나는 너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해 너를 알아보는 노력을 한다.  




길을 다시 그려보자


지도로 보는 거돈사지 위치

거돈사지가 가까워지면 유심히 이정표를 살펴보자. 재미있는 경험을 한다.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를 순식간에 오락가락하는 지점이 온다. 그게 무슨 재미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재밌다. 그건 남한강이 있기 때문이다. 

  

지도에서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물줄기가 남한강이다.  남한강 왼쪽 위는 경기도, 아래는 충청도, 오른쪽은 강원도이다. 3개 도를 가르는 남한강을 섬강이 만나는 지점에 흥원창이 있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모으던 국립창고 흥원창이다. 200석이나 거두었다니 꽤나 큰 조창(조세를 거두던 창고)이었다. 그 지척에 거돈사지가 있다. 예사롭지 않은 위치에 거돈사가 있었다.


전근대 사회 세금은 주로 쌀이나 베로 걷었다. 그것을 어떻게 수도까지 운반했을까? 뭍이 아닌 물을 이용해 배로 옮겼다. 군사의 이동도 마찬가지다. 뭍길로 걸어서 각개격파로 전선을 확보하며 오는 보병도 있지만 중심부의 허를 찌르는 특별부대나 보급의 이동은 물길을 이용한다. 그래서 역사상 주요 전투는 수륙양면이 성공해야 승리했다. 이것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모두 같았다. 삼국시대 백제, 고구려, 신라의 치열한 전투는 한반도 중심부를 흐르는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였다. 무려 300년이 넘는 공방전이 한강을 두고 벌어졌다. 한강은 한반도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혈관은 심장부에서 뻗어나가고, 심장부로 다시 모인다. 한반도 이남 어디든 닿을 수 있는 한강의 물길을 차지하는 것은 국가 존망을 좌우했다. 이것을 안다면 삼국시대 300년 넘게 이어졌던 한강에서 벌어진 전투의 절박함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삼국이 싸우던 시대를 지나 우리 역사 실질적 통일을 이룬 고려시대와 그 뒤를 이은 조선시대는 전투가 아닌 지방을 어떻게 지배하고 세곡을 어떻게 운반할 것인가가 중요했다. 개성과 서울로 이어지는 길 가운데 단연코 남한강 물길이 가장 바빳을 것이다. 한강 이남 물산이 가장 풍부한 지역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강원도에서 시작된 물길이 충청도, 곡창지대 경기도 여주 이천을 지나 양주로 이어져 서울로 닿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돈사지가 텅 비어 좋은 절터(폐사지)만은 아니란 것을 짐작하게 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이 절이 언제 지어졌고 어떤 위상을 가졌을 지 알아봐야 한다. 이제 승탑(부도)의 주인공과 그 주인공의 일대기를 적은 탑비를 보러 갈 차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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