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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Oct 18. 2023

너를 좋아해

인간 엄마의 사랑

“날 사랑하는 건 알아. 그거 말고 그냥 날 좋아해 주면 안돼?”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레이디버드’의 사춘기 소녀 크리스틴은 유난스런 못난 짓들을 일삼고, 그런 그녀를 한숨 쉬며 바라보는 엄마를 향해 호소한다.

 걱정도 사랑의 한 형태임을 알지만, 불안한 자아상 앞에서 누군가의 믿음과 지지가 절실한 마음. 그녀가 엄마에게 바란 마음은 사실, 그녀 스스로 자신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제 일곱살이 된 세온이와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서 꼭 안고 있을 때 그녀가 물었다.

“엄마는 왜 나를 사랑해요?”

엄마의 딸이니까 그 자체로 아주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말하자 그녀는 미심쩍은 듯 다시 묻는다.

“내가 엄마한테 물을 떠다 줘서? 내가 작고 귀여워서?“(그녀가 애교가 많고 유난히 작고도 귀여운 건 사실이며, 나는 우리집 막내에 대해 이렇게 팔불출로 애정을 표하는 엄마인데도 그녀는 의심이 많았다.)

나는 다시, 네가 물을 떠주는 건 정말 고맙지만, 세온이가 맛있는 걸 혼자 다 먹고 엄마 말을 안 듣고 미운짓만 골라서 해도 엄마는 세온이를 사랑할 거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기대와 관심에 민감한 그녀는 이 말의 진실을 확인하러 그녀가 일부러 못된 짓을 하지는 않을까 두려운 내 속내까지 다 읽었을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가 하는 말,

”엄마, 하나님은 내가 아무리 잘못해도 끝없이 기회를 주신대요.“

나는 신이 아니건만, 그녀는 신에 준하는 사랑을 엄마에게 갈망하며 또한 인간이 줄 수 있는 사랑의 한계를 직감하기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녀가 공항 바닥에서 반짝이는 스티커를 주우면 세균벌레가 옮겨 붙으니 버리라고 얼굴을 찌뿌린다. 유치원에 다녀와 딴청을 부리는 그녀를 가자미 눈으로 바라보다가 피곤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쉬기전에 숙제 먼저 했어야 했다고 싫은 소리를 한다. 6년간 크고 오랜 사랑을 받아 낡고 해진 그녀의 토끼 인형을 빼앗아 기어이 세탁기에 넣어야 속이 시원한 나. 나는 과연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가.

 ”세온이는 엄청 귀엽고 매력이 넘치는 사람인데도! 우리는 모두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지 불안해하는 존재인가봐.” 남편에게 세온이와의 대화를 전하다가 인간 존재가 가진 슬픈 결핍과 안타까운 불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미우나 고우나 자식이니, 아마도 마지못해 끝없는 기회를 주게 될 나는, 신을 닮고 싶어도 발뒤꿈치나 따르게 될 모자란 존재다. 넓은 아량을 향한 마음 수련과 시의 적절한 애정표현에도 늘 실패하고말 인간 엄마의 사랑. 그런데도 수틀리면 다들 엄마 때문이래!

 모성애를 향한 세상의 기대와 무거운 부담감을 체념하듯 내려놓고 그저 그녀를 좀 더 좋아해 보기로 한다. 고단한 와중에도 작고 예쁜 것들을 찾고 발견하는 적극성과 안목, 우리집 내음과 엄마 품이 마냥 편안한 일곱살의 행복, 낡고 정든 것을 아끼는 고운 마음.

 그녀를 좋아하는 눈빛으로 바라볼 때 그녀는 나를 향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우리 사이엔 그저 바라봄으로 할 수 있는 대답이 있다.

너를 보는 내 눈빛을 닮고 배워 언젠가 거울 속 자신을 너그럽게 바라보며 스스로를 좋아해 줄 수 있는 네가 되길.

 그리하여 인간 엄마가 줄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을 다해, 오늘도 ”나는 너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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