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지긋지긋하다고 느낀 적이 많다. 도망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중 하나가 책이었다. 책이 사람보다 편했다. 내가 굳이 책에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됐고 책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아도 됐다. 조용히 책의 심연에 빠져들면 그만이었다. 아이들이 옆에서 놀아주라고 하는데도 "잠깐만, 너무 궁금해서 여기까지만 읽고!"라고 한 적도 적지 않다. 죄책감이 들었다. 책으로 도망치는 것은 삶을 회피하는 졸렬한 짓이라고 생각이 들어 때때로 괴로웠다.
첫째와 둘째를 재워주기 위해 침대에 함께 누웠다.
큰 애가 먼저 천장을 보며 한 마디를 건넨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러면서 말을 이어간다. "엄마 책 중에 <삶이란 무엇인가>, 이 책 있잖아."
첫째 아이가 책 제목 하나를 말하니 둘째 아이도 질세라 거든다.
엄마 책 중에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도 있어
그래, 너희들 좋은 화두를 던졌구나. 얘들아, 삶이란 무엇일까?
두 아이들에게 물었다. 첫째 아이는 삶이란 소중한 것이라고 답했다. 둘째 아이는 삶은 행복한 것이라고 했다. 혹시라도 염세적인 답이 나올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삶은 '고뇌의 연속'이라고 동상이몽을 했기에 더 걱정됐는지 모른다.
삶으로부터 피하기 위한 책 읽기, 의도는 불순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의 책 읽는 모습, 엄마가 켜켜이 쌓아놓은 책장에서 삶과 죽음을 배운다. 엄마 책을 펼쳐 읽어본 적이 없어도 아이들은 엄마가 읽는 책들의 제목만으로도 가슴에 철학의 씨앗을 뿌린다. 의도하지 않은 횡재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은 과연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 집 아일랜드 식탁의 풍경이다.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내게 아일랜드 식탁은 나의 가장 친밀한 책장이다. 아이들은 밥을 먹으며 이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간혹 책 제목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삶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읽기 시작한 책이 나와 아이들을 묶어 다시 삶으로 떠오르게 한다. 지난한 일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선택했던 독서였지만 결코 비겁한 게 아니라고 자위해 본다. 인생에 허튼짓이란 하나도 없다.
"엄마는 책을 밥처럼 먹어."라고 말하던 둘째 아이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아일랜드 식탁의 풍경
아이들이 언급한 책을 책장에서 찾아 기록에 남겨본다. 책장이 미어터져 꽂힌 책들 앞 열로 가로로 한 줄 또 놓인 책들. 얘들아, 엄마, 책 제목 많이 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