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쓰는 편지/ 눈물이 말을 대신하다
딸아,
눈물은 몸이 흘리는 말이며, 마음을 쏟아내는 문장이다.
입이 닫히면 눈이 말하고, 말이 멎으면 눈물이 쓴다.
그리움이 깊을수록 눈물은 불처럼 뜨겁고, 슬픔이 깊을수록 눈물은 체온처럼 따뜻하다.
눈물은 끝내 얼지 않는 마음의 온도이며 나와 마주하는 순간의 결과물이다.
그날 고은이는 힘이 쭉 빠진 인형처럼 휑한 모습으로 소파에 누워만 있었어. 말을 잃어버린 듯 입을 달싹도 않던 고은이. 무엇인가를 해 내느라 여념이 없었던 그 작은 손끝조차 움직임이 없었던 아이. 오후 두 시가 되자 조금씩 몸을 일으켰어. 크고 맑은 눈동자에 생기가 도는가 싶더니 어깨를 툭 건드리며 슬슬 장난을 걸더라고. 할아버지와 풍선을 주고받으며 놀이를 시작했어. 풍선이 손끝에서 튀어나가며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과 ‘휙, 휙’ 소리에 아이는 자지러지게 웃었단다. 풍선을 할아버지가 받아내지 못할 때는 데굴데굴 구르면서 깔깔거렸지. 절간 같았던 집 안에 온몸으로 즐거운 동작을 표현해 내는, 청아한 그 웃음소리가 어찌나 황홀하든지, 아빠와 엄마도 덩달아 웃음이 번지더구나. 조막손으로 풍선을 힘주어 내던질 때마다 볼이 발그레해지고 생동감이 넘치는 고은이의 모습을 보며 ‘아, 아이가 움직이는 지금 이 순간이 큰 선물이구나’ 싶더라. 그 모습 놓칠 새라 동영상으로 담아서 단톡방에 올렸지. 한참을 몸을 움직이며 신나게 놀던 아이, 남아 있던 에너지가 다 소진되었는지 눈꺼풀이 한 겹씩 내려앉더니 이내 잠이 스며들었단다. 평소에도 먹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고은이. 아프니까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던 아이. 맥없이 자는 모습이 얼마나 측은하고 짠하든지. 먹어야 기운을 차릴 수 있는데 모든 음식을 거부하니 가엾기 짝이 없더구나.
한 시간쯤 자고 난 뒤 아이는 잠들기 전의 그 아이가 아니었어. 축 늘어져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 눈은 공허로 가득 차고 마음으로 찾는 것은 오직 한 사람, 바로 엄마인 너였지. 45개월 된 아이가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애절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엄마를 호명하더구나. "엄마", " 엄마" 편도가 부어서 말하기가 어려웠던 고은이에게 엄마가 보고 싶은 거냐고 묻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빗방울처럼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 눈물로 범벅이 된 아이의 얼굴은 열로 달궈져 볼이 발그스레해지더라, 열(38도)이 나길래 해열제를 먹였어. 엄마 퇴근까지 4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설득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동원해서 달랬어. 아직 시간 개념이 없는 아이는 그 기다림이 얼마만큼인지 가늠할 수 없었는지 설득당하지 않더라. 평소엔 엄마 아빠가 없어도 우리와 잘 놀던 아이였는데, 아프니까 네 품이 절실했던 거야. 아이를 달랠 재간이 없어 결국 집에서 15분 거리인 네 회사로 원정을 간 게지. 창밖으로 때 아닌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차 안으로 여름 햇빛이 얼마나 강하게 내리비치든지 여름 끝이 세긴 세더라. 가을이 오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네 품에 안긴 아이는 살갑게 굴지도 않고 그저 엄마와 살갗을 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을 찾았던 아이. 금방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지. 눈가에 눈물이 맺힌 고은이는 네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으려 하자, 네가 먼저 눈물보가 터지고. 부여잡은 모녀의 애끓는 손을 조심스레 떼며 애틋한 이별을 했지. 돌아오는 차 안의 공기는 눅눅하고 묵직했어. 라디오에서는 희미한 멜로디가 흘러나왔지만, 그 소리마저도 아이의 무거운 침묵에 묻히고 말았단다. 제 엄마가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본 아이인데 용케 울지 않더라. 혹시나 차 안에서 울음보가 터지면 어쩌나 싶어 조마조마했는데, 결코 차 안에서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았던 고은이. 속이 깊은 것일까? 엄마랑 헤어지면서 자기가 울면 엄마의 슬픔이 깊어질 것이라는 생각이라도 했던 것일까. 아니면 운전하는 삼촌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하여간 그 깊은 속은 아직도 의문으로 남았단다.
집에 도착해서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던 고은이. 그 울음소리는 억눌린 숨이 터지는 듯했어. 거실 공기가 한순간에 축축해졌고, 그 작은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어찌나 애잔한 마음이 일든지. 왜 우느냐고 물으니, 가만히 엄마를 외치더라.
그래, 엄마가 보고 싶은 거구나. 금방 보고 왔는데도 보고 싶은 엄마.
엄마가 보고 싶을 땐 울어도 돼. 소리 내어 울어도 괜찮으니, 실컷 울어.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아이를 꼭 안아주었단다. 아이의 머리칼에서는 아기 특유의 엷은 복숭아 향이 나더라. 한동안 소리 없이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던 아이. 그리움을 눈물로 덜어 내고 나니 가슴이 후련해졌는지, 작은 손을 꼼지락 거려서 색종이로 파란 배를 접던 아이.
좀 전에 그리움에 잠긴 아이를 품고 있을 때 문득, 오래전 엄마의 삶 한 장면이 스치더라. 무려 50여 년 가까이 지난 중학교 3학년 초봄이었지.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두 외삼촌은 서울로 떠났고, 큰삼촌과 엄마는 전학을 기다리며 고향에 남았어.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문 틈 새로 스며든 찬바람이 방 안의 이불 끝을 파고들어 온몸이 얼마나 시리든지. 그날 엄마는 몸살감기에 된통 걸려서 끙끙 앓으며 밤 새 울었단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한도 끝도 없이, 목놓아 울었단다. 울면 울수록 그리움은 더더더 깊어지고, 열은 그리움을 부채질했어. 아무리 울어도 엄마를 곧바로 만날 수 없는 경우가 있고, 그리움은 스스로 달래야 하는 감정이라는 걸 그때 알아차렸단다.
세월이 흘러 30여 년 전, 큰 숙모가 둘째를 낳았을 때 세 살배기 인구가 우리 집에 맡겨진 적이 있었지. 낮에는 잘 놀던 아이가 해 질 무렵부터 울음보를 터뜨리는 거야. 석양 무렵의 감포 하늘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았어. 밥 짓는 냄새와 함께 노을이 지고 있던 그때 온갖 방법으로 달래도 인구의 울음은 그치질 않더구나. 말을 못 하던 아이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애처롭게 표현해 냈어. 그렇게 25분쯤 애간장이 녹아날 정도로 울고 나서야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던 아이. 4일째 되던 날부터는 엄마에 대한 보고픔이 사그라들었고 주어진 환경에 금세 적응을 하던 아이.
딸아, 이 모든 울음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란다. 그 속에는 따뜻한 숨결과 그리움이 섞여, 타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리움과 체념 속에서 성장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 너와 아이, 엄마의 청소년시절, 사촌 동생의 울음까지 모두. 그리움은 결핍이 아니라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고, 통곡은 슬픔이 아니라 그리움을 해소 내는 수단이란다.
워킹맘으로서 아이가 아플 때 가장 마음 아플 너, 아이가 아프면 네가 더 앓고 네가 더 먼저 운다는 걸 잘 알지. 그건 네가 약해서가 아니라, 모성이 네 안에서 살아 있다는 뜻이야. 엄마가 너를 품으며 흘렸던 눈물이 이제 너에게로 흘러 또 다른 사랑이 되는 게지. 그리움을 담은 눈물은 이렇게 세대를 건너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아이가 아플 때는 폭풍이 몰아칠 때처럼 집 안이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하지만, 건강할 때는 햇살이 온 세상에 내리쬐듯 웃음꽃이 피어나잖아.
주방에서 나는 음식 냄새와 아이의 웃음소리가 뒤섞이고, 재잘거림이 끊이지 않는 따뜻한 오후의 집, 포근한 이불속에서 온 가족이 안온하게 쉬고 있는 그 공간.
그곳에서 성장 과정을 파도처럼 거치면서 잘 자라고 있는 고은이의 삶을 축복해.
더불어 아이 양육의 으뜸이 '부부의 금슬'이라는 것을 잘 아는 우리 딸 부부의 삶도 축복해!
아이구 어째요.
남편한테 링크 걸어 주면서 뭔가를 잘 못 건드렸는지 글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라이킷으로 관심을 표현하시고,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하시어 댓글로 진진한 애정을 쏟아내 주신 작가님들 죄송합니다.(ㅜㅜ)
다행히 한글에 이 글이 남아 있어 재발행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