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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Feb 20. 2021

카레집 이야기

퇴근하고 오는 길에 있는 카레집은 매장보단 배달 장사를 더 많이 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몇 없는 테이블에는 이미 가게의 비품들이나 식품들이 올려져 있다. 하긴 요즘 같은 시대에 매장에서 먹는 거 조차가 위험하니까. 그저 처음 생겼을 때는 샛노란 간판에 정직하게 '카레집'이라고 쓰였길래 나중에 한번 먹어봐야지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길에 불 켜진 카레집에 고개를 돌렸을 때, 주인장이 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 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캔버스에 이미 밑그림은 그려져 있고 색만 칠해 넣으면 되는 그런 상품 있지 않나, 그걸 하고 있었다. 캔버스는 매우 컸으며 아직은 흰 바탕이 더 많이 보였다. 요즘 많이들 하는 취미를 위한 상품 중 하나로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었지만 그 장면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추운 겨울날 집이 코앞이고 얼른 들어가서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노란색 건물 안 창 너머 보이는 큰 캔버스에 색을 칠하는 카레집 주인장의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딘지 모를 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날은 그렇게 집으로 갔다.


그리고 다음날 마치 어제는 정말 영화의 스쳐 지나가는 장면처럼 그 자리를 지나가기 직전까지 그 카레집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똑같이 그 앞을 지났을 때도 그 주인장은 색 채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문득 필름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고 싶었다. 어두운 밤, 작은 카레집에서 (어쩌면) 손님을 기다리는 그 지루한 순간에 할 거를 찾다 큰 캔버스에 색을 채우는 보다 생산적인 할동을 하고 있는 그 주인장의 모습을 프레임에 담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문을 열고 카레 주문도 아닌 '제가 당신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찍어도 될까요?'라고 물어볼 용기도, 그 정도의 열정을 가진 예술가도 아니었다. 그저 지친 직장인이었던 난 그런 찰나의 영감도 추위와 배고픔 따위에 곧 금세 잊어버리고 말기에.


그다음 날도 그곳은 여전히 불이 켜있었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이제 나는 왠지 모를 안도감과 위로를 받으면서 카레집을 지나친다. 회사에서 탈탈 털리고 터벅터벅 집에 오는 길에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을 보면서 고된 하루와 지친 마음에 위안을 얻었다. 자영업자가 너무나 힘든 요즘, 늦은 밤까지 영업을 하면서도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는 그 주인장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카레와 그림, 쉽게 연결 고릴 떠올리기 어려운 둘의 조합에 시선을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속에서 어쩌면 꿈과 희망 그리고 용기와 같은 그런 '열심히 사는 사람'의 모습에 진한 울림을 느꼈다. 여전히 그는 열심히 캔버스를 채우고 있다. 그가 그림을 완성하기 전에 그 집 카레를 꼭 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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