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놀이치료는 상담과 치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관심이 높아지면서 함께 부상한 치료 중 하나이다. 요즘에는 학교 현장이나 복지관, 육아종합지원센터 등에도 모래놀이치료실이 많이 있어서 학생들에게는 더 친근한 치료이기도 하다.
놀이치료는 언어보다 놀이로 자신을 표현하기 용이한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효과적인 치료기법이고, 따라서 모래놀이치료도 어린아이들이 하는 치료라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실제로 모래놀이치료사라고 나를 소개하면 많은 사람들이 했던 질문이 '그럼 아동만 상담하시는 거예요?'였다. 그러나 내가 모래놀이치료 현장에서 만난 내담자는 아동, 청소년, 성인 비중이 비등비등하다.
오늘은 내가 모래놀이치료를 받은 경험을 나누어보려고 한다. 내가 처음 모래놀이치료를 접한 것은 대학생 때였다.
전공과목강의를 담당하신 교수님께서 강의가 끝나갈 즈음 종이 한 장을 돌리면서 모래놀이치료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셨고, 경험 삼아 받아보고 싶은 학생이 있다면 종이에 이름과 연락처를 써서 제출하라고 하셨다.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고 진로불안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진로에 대한 경험'이라는 키워드에 홀려 모래놀이치료를 경험하게 됐다. 첫 경험이 치료를 위한 경험은 아니었던 셈이다.
처음 가본 모래놀이치료실에는 온갖 피겨가 가득했고, 내가 상상했던 것과 달리 어린아이들 장난감으로 보이는 피겨만이 아니라 종교적 상징물이나 고풍스러운 조형물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었다. 피겨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흥미로웠고 당장 모래상자에 피겨를 가져다 놓고 꾸며보고 싶어졌다. 처음 만나는 치료사와 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사라졌고, 실제로 치료사도 침묵 속에 신성한 것을 보듯 내 모래작업을 관찰했을 뿐 나에게 어떤 어려움을 갖고 있는지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그래서 더없이 안전하고 신비로운 공간에 와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10회기(10주 동안 주1회 1시간 씩총 10시간) 동안 모래놀이치료를 받았으며 이 치료가 자연스럽게 스스로 나라는 사람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중에 내담자마다 다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무척 신기해했다.
어떤 사람은 모래 상자가 너무 넓다고 또는 작다고 느꼈고, 어떤 사람은 상자에 피겨를 가져다 놓는 것이 너무 유치하게 또는 너무 고상한 활동이라고 생각했으며, 어떤 사람은 모래를 만지기 거북해했고 또는 모래의 촉감이 기분 좋다고 생각했다. 완벽히 직관적으로 상자 안에 작업을 지속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어떤 모양의 상자를 만들지 계획해서 자신의 계획에 부합하는 피겨를 가져와 상자 안에 표현했다.
재미있었던 것은, 만든 사람이나 그 작업을 관찰한 사람이나 비슷한 감정이나 생각을 공유했다는 점이었다. 난 이것을 대학생 때 모래놀이치료 과목을 수강하면서 처음 경험했는데 무척 놀라웠다. 창조자와 관찰자의 무의식이 모래놀이상자를 중심에 두고 맞닿으면서 생기는 일이었고 이 경험이 치료 현장에서 무척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머리로 아는 것과 오감을 모두 사용해 경험한 치료가 무척 다르다는 것도 느꼈다.
아래는 내가 수업 시간에 만든 모래놀이치료 상자의 사진이다.
청소년이나 성인은 영유아나 아동에 비해 더 많은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으며, 상담 도중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표현하고 다루는 데에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한다. 모래놀이치료는 그러한 저항을 낮추며 효과적으로 무의식과 정서를 다룰 수 있는 치료기법이다. 모래놀이치료는 내담자로 하여금 치료를 안전하게 느끼게 하고 스스로 자신의 무의식을 다루고 작업하게 도와주는 효과적인 치료다.
내 경우에는주위를 경계하고 방어하기 위한 피겨나 피겨 배치를 많이 사용했었는데, 나이가 들고 꾸준히 모래작업을 하면서 점차 피겨 개수가 줄어들었다. 모래를 이용해 굽이굽이 굴곡을 만들거나 인물의 여정에 대해 표현하던 주제들도 작업을 해나감에 따라 점차 한 곳에 머물고 안정되는 등주제가 바뀌어 갔던 것 같다.
모래작업을 통해 나에 대한 탐색과 통찰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모래놀이치료를 받을 당시 나에게는 자신을 치료할 목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모래작업을 하면서 무척 치유적이라고 느꼈으며 내가 부정하고 있던 내 특성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럿이서 집단으로 모래놀이치료를 경험하게 되는 수업 특성상 내가 어떻게 남들과 다른 상자를 만드는지, 즉 나와 다른 사람이 어떤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경험할 수 있었다.
혼자 하는 작업도, 여럿이서 하는 작업도 모두 나를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가게 해 줬다.
모래놀이치료사로 일하면서 더 많은 사례를 접하고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아동청소년, 성인 상관없이 모래가 치유적인 경험을 하게 도와주는 효과적인 도구라고 생각하고 치료에 힘쓰고 있다.
상담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 또는 공부해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의식적인 수준에서만 진행되는 상담은 공허하고, 깊은 정서와 맞닿는 데에 감각적이고 신체적인 경험(예를 들어 모래)만큼 효과적인 수단이 없었다. 모래놀이치료는 이런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만약 모래놀이치료를 경험할 기회가 있거나, 주위의 지인 또는 지인의 자녀가 모래놀이치료를 고려하고 있다면 좋은 경험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