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Eyre Sep 24. 2021

아직 적히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인간의 불행은 타인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또다시 가을이 찾아왔다. 새벽엔 이제 제법 찬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새벽 5시 58분 146번 버스는 항상 만원이다. 이내 영동대로로 진입한다. 왼쪽에는 롯데타워가 보인다. 어떤 날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고, 어떤 날은 풀어헤쳐놓은 솜사탕 같다. 또 어떤 날은 물안개 때문에 타워의 꼭대기만 보이는 날도 있다. 오늘은 어떤 모습일지  출근길의 소소한 재미다. 파리 Bir-Hakeim다리에서 바라보던 에펠탑이 생각난다. 포르투 모루 언덕에서 봤던 노을도 잠깐 스쳐 지나간다. 영동대교를 빠져나오면서 몽롱한 정신에 프랑스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그리운 마음으로 뒤적거려본다. 그러고 보니 벌써 한국에 들어온 지 1년이 한참 지났고 2021년도 3달밖에 남지 않았다. 프랑스 친구들 생각에 메시지를 보내려다가 퇴화되어가는 불어에 잠시 주춤거리고 이내 포기했다. 귀찮고 바쁘다는 핑계로 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얼마나 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들이 뒤로 사라지는 것 같아 슬프다. 그래도 이 글들 덕분에 값진 시간들을 되새기며 오늘도 감사하며 살아간다. 내 글에 스스로 위로받고, 내 인생에서 아직 적히지 않은 것들의 답을 내 글을 매일 밤 뒤적이며 답을 찾는다. 나는 어디쯤 왔을까? 그리고 행복한가?



다시 되찾은 휴무, 나의 참새 방앗간



인생의 교차점, 그 안의 시간들


한국으로 돌아와서 어렵게 입사한 첫 회사에서 3개월 만에 퇴사라니. 첫 번째 회사를 4년을 다녔고, 두 번째 회사를 4년을 다니고, 프랑스로 떠났다. 분명 그곳에서도 배운 것은 많았다. 마치 이별 뒤에 다음 연인에 대한 이상향이 생기듯이, 이번 경우가 그랬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나은 곳을 찾고 싶었고, 가장 나 다울수 있게 일할수 있는 곳을 원했다. 돈을 버는 곳 이상으로써의 회사에 대한 가치관이 내 인생에서 절정에 다 달랐던 것 같다. 일하고 급여를 받는 곳 이상의 가치를 원했다. 그리고 아마 이 회사가 내 마지막 회사가 될 듯하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영상촬영과 인터뷰


안 믿기겠지만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정확히 말하면 글을 쓰는 것보다 더 바쁜 일이 있었다고 하는 편이 나에게 위안이 될지 모른다. 새로운 곳에 책임자로 입사를 하고 또 나와 다른 새로운 사람들과 이른 아침을 함께 한다. 매일 같이 새로운 것들 투성인 곳에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은 쉽지 않았다. 함께해야 할 동료들의 이름도 제대로 알기도 전에 해야 할 업무들이 산더미였다. 내가 직원이 아니라 과장이라는 직급으로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커리어가 전적으로 컸다고 생각했다. 그때와 직급은 같지만 생각은 달라졌다. 내가 아직 과장이라는 직급으로 아직까지 이 회사에서 있을 수 있는 것은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성격, 가치관이 다르다. 서로의 경력도 다르고 잘하는 분야도 다르다. 그리고 지금은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것들을 좁혀가며 같이 서로 무언가를 배워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만의 시간이 된다.


무려 2009년에 찍은 사진이다. 첫 직장 주방


제과제빵과를 졸업하고 첫 사회에 발을 딛었을 때에 누구보다 열정이 넘쳤다. 행정조교에 학점관리를 잘한 탓인지 담당교수님들이 추천서까지 써준다고 하는 상황이었다. 선택할 수 있는 회사가 많았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첫 사회의 현실은 철저하게 괴리감이 들었고, 정치판 같은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후배가 들어오면 연이어 줄퇴사를 해서 나는 업무가 몇 년째 고정이었다. 빵을 매일 같이 태우고, 실수가 유난히 잦았던 날, 직장 선배와 술 한잔을 기울였다. 24살의 사회 초년생에게 그는 말했다. "아직 어린데, 이 일 말고 다른 일 해보면 어때? 이 일이 너랑 너무 안 맞아 보여" 나를 생각해주고 했던 말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표정관리가 안되었다. 내가 그날 퇴사를 했다면, 세상은 더 아름다웠을까? 내가 더 인정받고 다른 곳에서 열심히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큰 회사의 부점 포장이 되었을까? 10년이 훌쩍 넘어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는 인생의 교차점은 있었지만, 다른 시간을 살았다. 목표가 일치하지 않았고, 서로의 다름을 좁혀가려 하지 않았다. 순수했던 마음속에서 악한 독기가 퍼지는 느낌이었고, 나는 분명히 그날의 사건으로 배운 게 많았다. 지나고 보니 그것 또한 필요한 시간이었다.


크루아상이 잘나오는 날이면, 세상 행복하다


무엇을 배울지는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똑같은 교육환경에서도 학생들의 이해도나 습득력이 다르듯이. 우리는 퇴사하지 않는 이상 함께 해야 할 공간 안에서 시간을 소비한다. 같은 사물과 현상을 보더라도 느끼는 게 다르듯이,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배우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이것들을 경험이라고 한다. 기술적인 부분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시간들을 함께 공유해야 하는 시간 속에서 어떤 값진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지 분명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쩔 수 없이 교차점은 생긴다. 그리고 시간은 멈출 수 없으니까. 





나를 지키지 못하면, 아무도 지킬 수 없다



나는 천성적인 워커홀릭이다. 한 달 전쯤 몸이 아팠다. 무리한 탓도 있었겠지만, 그동안의 잘못된 습관 탓도 있었다. 일주일을 강제로 쉬었다. 부모님 댁으로 내려와 시간을 보내면서 동료들의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책임자의 첫 번째 역할은 직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그들이 제품을 만드는데 더 효율적이고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 있다. 부모가 아직 되보지는 않았지만, 마치 유사한 심정처럼. 나의 경험을 토대로 그들의 실수를 줄여주고, 나 또한 그들을 통해 실수를 줄여나가고, 더 완벽에 가까운 제품들을 매일 같이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의 경험 속에서는 내가 실력이 좋아서 직급을 달아본 적이 없다. 함께 하는 동료들의 소중함을 알고, 그들의 대변자가 되어서 내가 미리 느꼈던 것처럼, 그들의 아픈 곳을 긁어주고, 때로는 방패막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들이 바탕이 된 후에 매출, 신제품, 매장의 증가, 다른 부수적인 것들을 이뤄냈다. 혼자서는 절대 안 되는 것들이 함께면 가능하다.



잘 지내다가 몸이 갑작스럽게 아파보면, 사람들은 많은 것을 깨닫는다. 내가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누군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내 삶은 대부분 이타적이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너무 이타적이라 상극의 사람들에게 비난받은 적도 있었다. 내가 나의 몸과 마음을 다듬지 못하면서, 바르지 못한 생각들과 판단으로 혹시 동료들을 난처하게 한적은 있었는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르방의 어머니의 손그림



책을 가까이하는 게 꼭 마음을 다듬는 것은 아니지만 안 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책을 안 본 지도 한참이 지났고, 근심을 마음껏 털어놓을 공간도 없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도 없었다. '나를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면서 누굴 챙기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통화 기록은 모두 회사 관련된 사람들이다. 회사가 삶의 전체로 스며드는 것을 조금은 막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아픈 사람이 허겁지겁 약을 찾듯 미쳐 서울로 다 보내지 못한 책을 한 권 꺼내 들었다. 몸보다 어쩌면 정신이 더 힘들었나 보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동료들을 오래 가까이 두기 위해서는 나부터 지켜야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자기 살기도 바쁜데 누가 누구를 지키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래도 최소한 책임자라면 그 정도의 소명은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힘을 빼자


사람이 나이가 먹어가면 어릴 때의 패기의 잃어가며, 순해지고 유연해진다고 한다. 20대에는 물불 안 가리고 악착같이 열심히 살아보고, 30대에는 조금은 주변도 돌아보며 살아가고, 40대에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조금 더 효율적이고 안락하게 살고 싶었는데, 아직은 온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어, 계획이 10년씩 늦춰지는 느낌이다. 세상에는 넘치는 열정과 탁월한 기획만 가지고 안 되는 것들이 많다. 시기도 잘 맞아야 하고, 누군가를 설득할 수도 있어야 한다. 시기가 아닐 때는 한발 뒤로 물러서는 용기도 필요하고,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눈감아줄 수 있는 미덕도 필요하다. 힘이 많이 들어가면 오래가지 못해 부러지기 마련이다. 면접부터 열정적이고 커리어가 화려한 사람들치고 근속을 오래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내가 말하는 힘은, 권력을 이용한 결정, 자신이 믿는 것들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때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내 판단이 모두를 곤경에 처하게 할 수도 있으며, 나도 사람이라 철저하게 무너질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힘은 올바르게 쓰여야 하고, 강약 조절이 되어야 한다.


프랑스 느낌 내봤지만, 여긴 프랑스가 아닌걸



두 번째 회사에서 매장 오픈 건으로 다른 제과점에서 대리급 정도로 근무하던 인원을 채용한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몸과 말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친구였다. 여담이지만 제과제빵사들은 기술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많고 어느 집단도 그렇겠지만 허세도 심한 편이다. 나이를 다시 봤더니 나보다 3살쯤 어렸다. 말투에 인품이 묻어났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공손했고 예의 발랐지만 눈빛은 열정적이었다. 직원들과 오전마다 커피를 마시며 하루 일과에 대해 회의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어느 날 업무 공유를 하다가 내가 놓친 부분에서 "미안하다"며 사과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모르는 것들에게 대해서는 죄송하다면서 알려달라고 한 적도 참 많았던 것 같다. 미안한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 하는 게 함께 일하는 동료 입장에서는 과장이라는 직급을 가진 최고 경력자가 그런 말 하는 게 익숙한 장면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과장님, 상사가 직원들한테 미안하다고, 죄송한데 이것 좀 알려줘"라고 말하는걸 처음 봤다고 했다. 그들의 경험과 그들이 생각하는 상급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직급을 가진 사람은 힘을 쓸 때 힘을 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본다. 대부분은 내부에서 힘쓰기를 좋아하는데, 사실 외부에서 힘을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적절할 때 힘을 써야 그것도 멋이고 타의 귀감이 될 수 있다. 좋은 시기에 좋은 사람과 인생의 교차점을 보내고 난 그들 덕분에 더 성장했었다.




가치관과 목표의 부재가 주는 공허함


10년이 넘게 한 분야에서 일을 하면 전문가라고들 한다. 용기와 자본만 있다면, 한번 있는 인생에서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직업으로 살리지 못하면 취미나 아마추어의 길을 걷기도 한다. 대학 전공을 살리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살아다가다가 새로운 직업을 찾는 사람도 많이 본다. 그리고 동시에 두 가지 직업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두개의 자격증이 나의 프랑스 유학을 대변할수 없다



20대의 나는, 가치관이나 목표 자체가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부자가 되어야지, 건강하게 살기, 빨리 결혼하기, 이런 허무한 계획조차도 없었다. 하루하루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회사가 전부였다. 내가 한만큼 인정을 해줬고, 모든 것들이 잘 맞아서 한 회사에서 오래 근무했으며, 급여도 잘 올랐다. 학교를 잠시 다녀보겠다고 했다가 회사 때문에 중도에 포기했고, 설탕공예를 배우다가 여러 가지 문제로 그만뒀다. 개그맨을 갑자기 해보고 싶어 대학로 공연장에서 무급으로 몇 번 청소도 해봤다. 사람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지고, 가지지 못한 것들에 욕망이 피어나며 타인의 한마디에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에서 오일남 캐릭터가 이런 말을 한다.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없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나? 바로 재미가 없다는 거야" 그때의 나는 금적인 문제를 떠나 재미가 참 없었다. 생각만 가득했다. 퇴근을 하면 각자 자신들의 취미생활이나 친구들과의 만남, 또는 학원 등을 다녔는데 , 나는 집 빼고는 갈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목표가 없었다.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왜 일을 열심히 하는지에 대한 답을 도출해 낼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 이 상황이 또 나에게 들이닥쳤다.



프랑스에서부터 쓰기 시작한 글들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이 글이 다시 나에게 해답을 줄 것 같았다. 그리고 때로는 적절한 시기에 내 주변에 사람들이 나에게 해답을 주기도 한다. 무심코 하는 말들이 정확하게 답이 되기도 한다. 누구와 함께 일하는지가 왜 중요한지, 하루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구성원들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나를 위한 목표는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인생을 살아가며 절대 흔들리지 않고 지켜야 할 가치관은 무엇인지 분명하게 해 둘 필요가 있고, 관리해야 한다. 그것들의 부재는 인생이 재미가 없고 삶의 어떤 풍파에도 무너지기 쉬우며, 늘 어렵다는 것이다.




공감의 위대한 힘

"아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말이 바보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 말을 내뱉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모두가 다른 사람들 중에서 단 한 명이라도 "그래서 힘들었구나,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말하는 게 이타적이라고 말하는 나부터도 쉽지 않다. 4년제 유명한 대학의 경영이나 회계를 전공하고 갑자기 과장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2년제 제과제빵과를 졸업했고, 서울에 올라와 2년간 1평 고시원에서 살았고, 6 평남 짓의 지하의 작은 주방에서 처음에 이 일을 시작했다. 뭔가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많이 힘들었던 것들은 시간이 지나 점점 희미해져 가는데, 마음과 몸이 다쳤을 때 따뜻한 말 한마디는 아직도 선명하다. 완전하지 않지만, 어떤 상황에서 신뢰를 느끼는지, 어떤 상황에서 안도감을 느끼는지, 어떤 말들이 그들을 다시 일어서게 할 수 있는지 그래도 조금은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공감이라고 부른다.



월급 세전 175만 원쯤 되었다. 월세 내고, 설탕공예 학원비 내고, 그때 청약적금을 매달 40만 원 정도 넣었는데, 그러다 보면 보통 다음 달 월급이 들어오기 3,4일 전쯤 통장에 잔고가 없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지만 샴 푸살 돈이 없을 때도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지하 4층에 발주했던 재료를 받으러 가야 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함께 갔던 누나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아무 말 없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내 자리 위에 비닐봉지를 하나 무심히 던졌다. 샴푸랑 바디워시가 들어있었다. 전쟁터 같았던 직장에서 매일같이 데어 상처 가득한 팔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많았을 때였다. 어린 나이에 따뜻한 말 한마디와 행동이 그리웠을 것이다. 분명 인간의 선한 본성과 그녀의 경험에서 그 행동이 나왔겠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유대관계만 있다면 마치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공감능력은 선천적인 것도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 느낀 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후에 개개인의 성품과도 직결되는 경향이 있다. 나 혼자 노력한다고 모든 것이 평화롭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아무도 노력하지 않고 공감해주지 않으면, 어쩌면 악의 대물림은 영원할 거라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착한 아이 증후군(food boy syndrome) -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면서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30살이 넘어 유학시절에 어학원에서 알게 된 한국인 동생에게 처음 들어본 말이다. 별생각 없이 넘겼는데, 상대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나 좋지 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노력하는데 시간과 마음을 쓰며 살아왔나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내가 베푸는 작은 배려조차 누군가에는 기분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다. 배려가 어떻게 기분 나쁘지라고 할 수 있지만, 나부터도 불필요한 배려에 그런 적이 있다. 오지랖도 병이다. 사람들은 점점 상처 받기를 두려워해 지극히 개인 중심으로 생활한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기대의 대상은 늘 그 당시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말 자체에도 나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좋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매우 순간의 인연들에게 감정 소모와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은 이기적일 필요도 있고, 나부터 챙겨야 할 시기도 분명히 올 것이고, 누군가에게 박수받을 때 누군가는 손가락질하는 것도 당연한 관계의 이치라고 생각할 수 있는 평온함도 필요하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글을 쓰고 책을 가까이하려고 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좋은 사람인지는 그때는 잘 모른다. 시간이 지나 봐야 수면 위에서 그 관계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교차점에서 잠시 인생의 기로가 겹치고 떠난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에, 어쩌면 일부러라도. 그것에 비중을 두고 살아가야 할 필요를 느낀다.



상생 관계


어쩔 수 없지만, 회사도 결국 각자의 필요들에 의해 모여진 공동체이다. 같은 목표로 움직이고 매일 새로운 안건들과 협의 사항들이 생기고 우리는 각자 잘하는 것들로 하루하루를 이겨낸다. 그리고 서로 부족한 것들을 좋든 싫든 도와주면서 협력해야 하는 관계이다. 대표가 느끼는 무게가 있고, 부장이 느끼는 무게가 있고, 과장이 느끼는 무게가 있으며, 각 매장의 점장들이나 팀장들이 느끼는 무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원들도. 인간이라면 회사와 직급을 떠나 모든 사람은 각자의 무게와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서로의 무게를 존중해야 하고 공감해야 한다.


리더자들과 경영에 관련된 책에 관심이 생겨 한참 읽었다. 현대 사회에서 경력을 개발하고 행복과 성취감을 얻는 것을 성공으로 정의한다. 리더들은 그들이 현대사회에 발맞춰 나아갈 수 있도록 조금 더 높은 자리에서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는 것이다. 나 역시 처음 직급을 달았을 때는 지금보다 더 많이 부족했다. 나도 주임이 처음이라고 도와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시간이 지나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디 선한 마음을 지녔다고 생각하고 그 신념대로 동료들을 대했다. 내가 부족한 것들에 대해 서슴없이 말했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 기술에 관련된 글을 쓰지 않은 이유도 그것이다. 그런 책들은 서점에 가면 수 없이 많다. 보유한 제과제빵 서적이 몇백 권이 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심도 있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 그 사람이 이 글을 써야만 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것이 나는 더 궁금하다.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왜 저런 생각을 할지에 대해 알려면 친해져야 한다.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더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상처나 아픔을 느꼈는지도 모르면서, 고객을 응대하고 고객과의 최고의 접점을 찾는 것이 가능할까 되묻고 싶다. 결국엔 비슷한 것들에 공감을 느끼고, 서로 부족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작고 큰 관계들 속에서 말하지 못하는 흔들림과 직급의 무게와 누가 요구하지도 않은 책임감들이 나를 짓누를 때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가 늘 나에게 찾아와 손을 내밀었다. 그때마다 나는 일어났고, 이겨낼 수 있었다. 주방 안에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에도 가을이 왔다는 감성과, 소름 돋는 다며 빨리 없애야 한다는 이성. 글이 내 발목을 잡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라는 내 말에, 그 글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글을 쓰기 때문에 그래도 바르게 살고 있다는 말 한마디. 작은 현상에도 가까운 사람들의 이런 다른 시점들이 때론 나를 웃게 하고 이겨내게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 책, 그리고 어둠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는 책의 문구를 보았다. 정말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과 목표가 확실한 사람은 주변의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몇 명 있다. 그들을 통해 내 가치관에 덧칠을 해본다. 누군가를 만나고 오래 이야기를 하면, 에너지가 소비되는 만큼 그 사람의 영향력이 나에게까지 느껴진다. 지금은 또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나는 어떨까? 누가 내 옆에서 같이 걸어가고 있을까? 불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살면서 더 확실해지는 것 중에 하나는 계획은 내가 하지만,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계획대로 되면 감사한 일이고, 안되더라도 거기에 또 교훈이 있다.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가며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본다. 하루에 나를 위해 얼마나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봤다. 자유롭게 여행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살아가고 싶다. 맛있는 것을 먹고, 운동을 하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통화를 하고, 원하는 시간에 잠이 들고, 그런 시간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조금은 멀리 내다보고 이기적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림



나는 결코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없고, 원하는 삶을 모두 살아 볼 수도 없다.
원하는 기술을 모두 배울 수도 없다.
그런데도 왜 그러길 바라는가?
난 내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경험의
모든 음영과 색조의 변주를 살아내고 느끼고 싶다.

- 실비아 플라스 Sylvia Plath -





작가의 이전글 마음과 기억을 두드리는 질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