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직업 속에 나와 우리를 묻다
빗소리가 창문을 뚫고 간간히 귀에 울릴 때쯤, 잠에서 깨었다.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걷었다. 거짓말처럼 날이 개어 있기를 바랐다. 모처럼만의 특별한 약속이었다. 야속했다. 하늘을 원망하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궂은 날씨가 좋은 배경이 되고 특별할 것이라고는. 꿈을 꾼 것 같은, 정확하게 말하면 비 오는 파리에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비가 안왔으면 아쉬웠을거라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기다렸던,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을 보고 나와서 우리는 1층 카페로 향했다. 다시 만난 건 꼬박 한 달 만이었다. 젖은 도로 위의 물 웅덩이에 반사된 흐린 도시의 모습을 차들은 무심하게 밟고 지나갔다. 주문한 음료들이 나오고 창가와 멀지 않은 곳에 나란히 앉았다. 배려 섞인 가벼운 안부를 묻는 대화가 오갔다. 내가 먼저 그동안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글을 쓰고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허탈감 또는 괴리감이었을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나는 무언가와의 오랜 싸움 끝에 지쳐 있었고 위축되어 있었다. 현실에 대한 투정일 수도 있다. 내 고민을 상대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타협의 문턱에서 나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더러운 먼지와 지치고 위축된 마음이 창밖에 내리는 빗물에 씻겨 내려가길 원했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말을 아꼈을지 모른다.
글을 쓰는 것은 나를 나타내는 하나의 표현임과 동시에 책임감이 막중하다. 온전하게 나를 위해 쓰는 글들이지만, 누군가를 의식한다.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그 누군가를 위해서도 '이런 글을 썼으니 이런 삶을 살아야 해'에서 시작된 고민은 나를 옭아맸다. 나아가야 하는 길들을 좁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펜을 들었다.
그녀가 예약해 놓은, 철문 하나로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재즈바에 도착했다. 빗소리는 온 데 간데없었다. 재즈에 대해 무지하지만, 악기들의 뿜어내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매웠다. 연습하는 연주자들을 마주 보고 무대와 멀지 않은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같은 직업 속에서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감 비슷한 감정이 음악소리보다 점차 그 공간을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하다가 그녀가 나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다.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대답할 뻔했다. 질문이 매우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도 질문자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늦지 않은 시일 내에 글로 남기겠다고 내가 제안했다. 직업 이외에 나를 표현할 방법에 '글'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덤덤하고 현란하지 않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고 싶었다. 지체한다면 그 질문에 답이 내가 의도한 것들과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질문이고, 반드시 답을 내야 해야 했다. 쓰인 이 글이 다시 나를 옭아매 주길 바랬다.
Pourqoui les gens normales doivent manger les desserts?
왜 일반적인 사람들은 디저트를 먹어야만 하나요?
정답이 없는 이 질문은 관점과 분야의 시선에 따라 대답은 다양할 것이다.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반드시 제과사라면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질문해봐야 한다. 디저트를 직업적으로 만드는 사람을 프랑스에서는 'Pâtissier(제과사)라고 부른다. 제과사는 창작가이다. 창작가는 창작활동에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창작활동에 철학을 불어넣으면 예술이 된다. 우리가 예술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철학을 시각으로 표현해줄 매체를 찾고 때론 그것을 직업과 부업, 또는 취미로써 나타내며 다른 누군가들과 소통한다. '나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직업에서 나는 이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맹목적인 끌림이 아닌, 이 표현을 지속해야만 하는 강력한 이유의 관점에서 이 질문에 접근했다.
디저트가 단순히 식사 후에 먹는 간단한 음식이라고 하기엔 이제 그 시장이 커지고 디저트 하나하나에도 제과사들의 생각과 이야기가 깊게 뿌리고 내리고 있다. 그 디저트를 통해 만든 사람을 더 알아가고 싶어 하고, 다른 창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고, 그렇게 사람을 알아가는 하나의 소통의 변화이자 방법인 것이다.
나는 시간을 내어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전시회나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표현방법에 영감을 주고, 다른 사람들의 표현 속에서 스스로 생각을 하고 그 순간만큼은 나를 온전하게 예술가들에게 투영시킨다. 때로는 지식 없이 내 멋대로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더 궁금하면 그들의 인터뷰, 그들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고 살아온 배경에 대해서도 관심 있게 들여다본다. 직접 대화해보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음적으로 혼란스럽거나, 기대고 싶거나, 지쳐있을 때 이런 활동으로 말없이 타인과 소통한다. 사람의 관계과 비슷하다.
하나의 디저트는 누군가의 창작품이다. 연주자는 악기로 자신을 표현하고, 건축가는 건축물로 자신을 표현한다. 화가는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작가는 글로 자신을 표현한다. 영화감독은 영화로 자신을 표현한다. 누군가는 표현을 하고 누군가는 상대의 표현을 느낀다. 제과점은 미술관이고 디저트들은 누군가의 작품이다. 그래서 그곳에 그들의 고뇌가 담겨 있고 삶이 담겨 있으며, 생각과 철학이 담겨있는 것이다.
디저트의 시장은 넓어지고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으며, 각각의 셰프나 회사의 방식대로 다양한 형태의 디저트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디저트는 이런 세상에서 하나의 소통의 방법이며, 자신의 표현방식을 조금 더 풍부하게 해주는 일종의 문화 활동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디저트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의 위로를 받아야 했을지 모른다. 디저트를 단지 바로 입으로 가져가기보다, 감각적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제품을 선택하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생각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생각하고 입으로 가져가길 바란다. 혹 예상과 다르거나 큰 감동이나 소통이 없다고 느껴지면, 새로운 매장에서 자신만의 인생 디저트를 찾아보자. 반드시 그 제품이 우리들 인생에 먼저 찾아와 말 걸어주고 좋은 영감과 위로를 줄 것이라고 믿으니까.
À quoi pensez-vous quand vous fabriquez les desserts? ‘
당신은 디저트를 만들 때, 무엇을 생각하나요?’
디저트를 온전하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본적은 사실 페랑디에 있을 때뿐이다. Ritz호텔의 짧은 실습 기간이 있기는 하지만 부분적인 것들이 전부였다. 프랑스에서 나는 학생이었고 실습생이었다. 온전히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다 표현하고 담아내기엔 환경이 그렇지 못했고, 많은 것들이 부족했다. 배움이었고 모방의 시간들이었다. 엄청난 기술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했고, 프랑스 제과사들이 제품을 대하는 태도, 셰프의 가치관, 재료의 사용방법, 역사 등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집중했다. 순간순간의 감정까지 메모하지 않았지만 매일 새벽 '오늘 만드는 제품은 잘 만들어야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던 매일이 설렘과 적당한 긴장감의 순간들이었다. 디저트를 만들면서 그들이 해왔던 대로 제품을 똑같이 구현하기 위해 힘썼으며, 이 표현하는 방식을 직업으로 결심했던 20대 초반의 나로 다시 돌아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망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한국의 학교나 학원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그런 무언가가 그곳에는 있었고, 경력과 직급으로 오만하고 거만한 나를 무력화시키며 깎아지게 하는 순간들이었다. 제품을 만드는 순간만큼은 진심이었고, 함께 한 동료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으며, 고객과 만드는 사람의 입장을 넘나들며 다양하게 생각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잘 쓰고 두 번째 질문에 답을 하려다가 부족한 경험 때문에 미래를 가정하고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질문한 의도와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제품의 구성 방법, 생산 일정,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재료의 선택, 효율적 업무방식 등, 주방에서 디저트를 만들면서 수많은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중요하다. 그렇지만 여기에 나의 대답은 찾을 수 없었다.
나의 매장이 생기고 주방에서 나의 제품을 만드는 순간을 거듭하며 상상한다. 나의 매장이라는 작업실이자 미술관에서 나만의 제품을 창작하고 전시하는 매 순간마다 나는 "프랑스 유학"시절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의 시간들은 위에 나열한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며, 나의 인생을 바꾸고 가치관을 생기게 해 줬으며, 조금 더 올바르고 건강한 생각의 길로 날 걷게 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줬고 나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깨달았다. 나의 창작품을 만드는 매 순간마다 그때의 순간들을 생각하고 매일 기억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 그리고 하루를 반성하고 감사하며 또 내일을 위해 나를 다듬는 것에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다. 내가 놓친 질문들을 그녀가 해줬고 나는 그 대답들을 나의 기억 속에서 찾아왔다. 몇 안 되는 주변 사람들의 안부는 궁금해하면서 정작 내 안부는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글 때문에 힘든 시간이었는데 글을 쓰며 위로받고 해결책을 찾는다.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각을 더 선명하게 그려나가야 하는 순간이다. 질문과 동시에 해결책을 스스로 얻게 했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시간을 보내고 다시 나왔을 때는 어둠이 깔려있었고 빗소리는 줄어들었다. 비 오는 밤거리를 걸었다. 생각이 많아졌고 집에 오자마자 책상에 앉아 펜을 잡았다. 한참을 막힘 없이 두서없는 글을 써 내려가다가 잠이 들었다. 쉽지만 쉽지 않은 질문인만큼 대답하기 쉽지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러나 좋은 질문이었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책임감 때문에 한동안 또 힘들 것 같지만, 풀어야 할 숙제를 또 하나 풀어냈다는 후련함이 밀려왔다. 직업은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를 표현하는 직업이라는 수단에 분명한 길라잡이가 되어줄 질문이었음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