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를 절약하게 만드는 로마
로마에서는 일상의 전기세가 무지막지하게 비싸다. 그냥 두루뭉실하게 요금 낼때만 비싼게 아니라 매우 구체적으로 매일의 일상에서 다가온다. 순간전력소모량이 많은 전자제품을 한번에 두 개 이상 가동하면 바로 집 전체 전기가 다운되서 두꺼비집을 찾아가 올려야 한다. 예를 들어 전자렌지랑 세탁기랑 같이 돌리면 파박. 세탁기랑 전기주전지랑 같이 돌리면 파박. 진공청소기랑 전자렌지를 같이 돌리면 파박 ... 등등. 세탁기 돌리는 동안 청소기로 청소해야지! 는 너무 효율적인 시간 관리이므로 집안 전기 사정이 나를 강제로 쉬게 해준다. 세탁기 돌아가는 동안은 앉아서 쉬는거다. 다른거 하면 세탁기 전기가 또 나감.
그냥 말로만 전기 아껴야 해 에너지 아껴야 해!!! 는 참으로 공허한 주문이었다. 조금만 총에너지량이 오바되는 그 즉시 너무 정직하게 온 집안 전기가 나가버리니까 눈에 불을 켜고 콘센트마다 다 뽑고 다니고 안쓰는 방이나 화장실에 불이 켜져있으면 애들은 최소 엎드려 뻗쳐각이다. 아닌 밤중에 온집안 전기가 나가는 경험을 연달아 두번 하더니 애들도 알아서 끄고 다닌다. 매우 바람직한 교육이다.
집에 공급되는 전기량이 기본으로 설정되어 그렇다고 전기회사에 공급량을 상향 신청하면 된다지만 그렇게 하면 더 쓰게 될거라 그것도 쉽사리 결단을 못내리겠다. 이사오자마자 한달치 전기세 고지서가 나왔는데 여태 살던 그 어떤곳보다 전기세가 높다. 사실상 처음 2주는 빈 집이었고 1주일은 내가 아무 살림없이 혼자 살던 기간이었으므로 이런저런 가전제품을 사용하면서 제대로 전기를 쓴 건 고작 1주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세는 서울에서 쓰던 한달 전기세의 약 3배에서 4배 금액.
도대체 한달 내내 제대로 쓴 두번째 달의 전기세는 과연 얼마가 나올것인지... 매우 두렵다. 거기에서 이어지는 생각은 그동안 얼마나 싼 값에 전기를 썼는지.. 그리고 그걸 얼마나 인식하지 못했는지다. 물건을 고를때 조금이라도 전력이 세고 금방 되는 기능에만 충실했지 에너지 소모가 많은지 아닌지는 큰 이슈가 아니었다. 물이든 밥이든 내내 보온이 되면 그저 좋기만 한 기능이었는데 그게 얼마나 전기를 쓰는 건지 다시 학습중이다.
결국 가져온 제품들 중
김치냉장고 안쓰고(찬장으로 사용중)
토스터기 안쓰고(후라이팬에 구워먹음)
전기 주전자 안쓰고(냄비에 물 끓여서 보온병에 담아놈)
전기밥솥 안쓰고(그냥 압력밥솥에 밥해먹고 남는건 쪄이먹음)
네스프레소 안쓰고(그냥 쳐박아놓고 인스턴트 커피 타먹음)
청소기 덜 쓰고(일주일에 한번만 돌리고 물걸레나 마른걸레질 침)
집에 붙박이로 달린 식기세척기 안쓰고 (과자 및 간식 저장소로 전환)
그리고 전자렌지는 극도로 최소한만 쓴다.
신기한 건 크게 불편하지 않고 잘 살아진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좀 불편한 것들에 대해서 스스로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고 좀 더 무던해지고 있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생활하는 생활력도 강해진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정말 원자력발전소를 없애거나 바꾸려면 생활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겠다는 것. 그게 미치는 일상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정말 엄청날 거라는 것이다. 매월 전기세로 3만원 내다가 어느날부터 훨씬 적은 양을 쓰는데도 15만원에서 20만원이 나오니 엄청 충격이다. 전기회사야 내 월급 그만 가져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