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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Mar 10. 2018

[로마의 평일 1] 가방이 급격하게 무거워진 이유


로마에서 주변을 돌아보면 사람들이 짐을 많이 갖고 다닌다. 일단 매일같이 간단하게 다니는 출퇴근길의 가방 안 물건이라도 줄이고 싶어도 영 줄일 게 없다.  


우선 열쇠 꾸러미.

건물 열쇠, 아파트 대문 열쇠, 우체통 열쇠, 차고/창고 열쇠 등이 달린 열쇠는 뺄래야 뺄 수 없이 묵직하다.







그다음 지갑.
전자식 교통카드가 보급되어 월정액 카드를 사면 다달이 충전을 할 수 있는데 중요한 건 그 달치 요금을 충전했다는 걸 증명하는 영수증을 같이 갖고 다녀야 한다. 왜냐.... 다니는 고객은 전자카드를 들고 다니지만 여기저기 다니는 검표원은 그 카드가 충전되었는지 아닌지를 알아낼 수 있는 기계를 갖고 다니지 않는다는 게 문제. 그래서 결론은 카드와 영수증을 같이 갖고 다녀야 한다. (이게 왠 웃지 못할 상황인가.) 심지어 주변인들의 조언은 연간 카드를 사서 충전해 다닌다면 충전하자마자 바로 영수증을 복사해놓는 게 팁이란다. 1년이 지나면서 영수증 잉크가 바래기 때문에 여차하면 복사본을 내놔야 한다는 것. 결국 카드, 영수증, 영수증 복사본까지도 들고 다녀야 하는 상황.



신분증은 또 크기가 너무나도 커서 일반 카드와 비교하면 1.5배 크기. 지갑 카드 구멍엔 들어가지도 않을 크기요 그 어디에도 맞지 않는 크기다. 결국 지폐 칸이 많은 지갑을 써야 지나 수납이 가능. 그리고 생각보다 신분증 요구하는 곳이 많아서 늘 갖고 다녀야 한다.


게다가 유로화는 동전이 핵심이 아닌가. 1유로 동전 하나가 1300원이니 동전을 빼놓고 다닐 수도 없고 늘 지갑에는 무겁디 무거운 동전이 한가득으로 지갑을 뚱뚱하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지갑, 열쇠, 핸드폰만으로도 묵직한 가방의 기초가 다져진다.


하지만 매일 같은 가방에 무게를 더하는 데 일조하는 것은 바로 동네에 별같이 흩어져 있는 작디작은 가게들이다. 요 근래 다녀보거나 살아본 곳 중에 이탈리아만큼 구멍가게, 작은 슈퍼, 개인 가게들이 아직 많은 곳도 참 드물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많지 않고 다양한 소상공인이 많다는 건 분명 선택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은 몸이 불편하다는 점이며 오히려 가게 주인의 선택에 나의 선택을 맞춰야 하는 불편함도 가져온다. 몇 가지 물건을 사기 위해 엄청 다양한 가게에 다녀야 하는 데다 대부분 작은 가게들이다 보니 물건의 수급도 들쭉날쭉이다. 계절을 많이 타고 시류를 많이 타니 지난주에 있던 야채, 물병, 그릇은 다음 주에 가면 온데간데없고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 거기 말고 어디에서 또 비슷한 물건을 팔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보일 때, 그리고 나간 김에 사 오는 게 장땡이다. 게다가 매일매일 여기저기서 시장이 형성되니 지나가면서 뭘 안 살 수가 없다.


비닐봉지는 돈 주고 사야 하는 데다 너무 빈약해서 금방 찢어지게 생긴 게 대다수다. 게다가 나같이 출퇴근 거리가 좀 되면 손을 파고드는 비닐 들고 다니는 것도 버거워진다. 그래서 가방에 늘 여유분의 천가방을 말아 넣고 다닌다. 여차하면 꺼내서 물건 담을 수 있도록.


차가 없는 뚜벅이면 더더욱 팔힘이 세진다. 일단 배달문화가 있긴 있지만 안정적이지 않고 물이고 우유고 과일, 야채 할거 없이 다 집에서 한 15분 걸어가야 나오는 슈퍼에 가서 사 와야 한다. (한국의 배달문화 좀 여기에 이식했으면 좋겠다.)


다행인 건 우리 집 길 끝에 잡화와 신선식품을 대체적으로 갖춘 구멍가게가 있어서 웬만한 필수품은 거기서 살 수 있다. 근데 이런 가게들도 그나마 5-6년 전부터 다양한 이민자들이 많아지면서 확산되었고 그전에는 아예 없었다 하니 이래저래 사람이 시기를 잘 타야 하는구나. (관운이나 재물운도 아니고 가까운 식료품 가게도 시운을 타고나야하다니.) 이래저래 한국서 직감적으로 사 온 돌돌이 장바구니가 이탈리아 생활의 가장 큰 효도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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