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탈리아 와서 약 5개월 가량 대중교통으로 버티다가 결국에는 작은 경차를 중고로 구매했다. 간혹 한국 음식을 보충하러 시내에만 있는 한국식품점에 장을 보러 가거나, 아이들이 친구 집 파티에라도 초대를 받아 가끔 데려다 줘야 하거나, 주말에 하다못해 조금 편안히 외식이라도 하려면 쓸 수 있는 차가 아무래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주말에만 주로 쓰겠다는 다짐을 하며 샀지만 역시 습관은 편안한 쪽으로 길들여지는지라 주말 운전은 두어달 정도 밖에 유지되지 않았다. 점점 편하고 빠른 자가 출퇴근의 매력에 그만 빠져버려 이제는 매일 자동차를 끌고 다니게 된지 어언 8개월이 훌쩍 넘어간다.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면서 차의 크기, 브랜드, 청소 및 유지관리 상태로 평가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주차난이 심하고 구비구비 오래된 길이 좁은 것으로 유명한 로마에서는 일단 덩치가 큰 차를 몰고 다닌다는 것은 내 스스로 엄청난 제약을 거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최대한 작은 차가 가장 각광을 받는다. 가장 좁은 곳에도 어떻게든 낑겨 넣어 주차를 할 수 있는 차가 가장 주인에게 효도하는 차다. 그리고 이탈리아 사람들의 배포랄까 창의성이랄까가 가장 잘 발현되는 때가 하루 중 주차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공간이 있다 싶으면 아무 곳에나 그 어떤 각도로든 밀어넣고, 이도저도 안되면 참 대책없이 이중주차도 잘 해놓는다.
극심한 주차난에 늘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만약 내가 혼자 사는 사람으로 차를 사용하는 거라면 정말 당연히 스마트를 선택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스마트가 이탈리아용 차량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바지만 로마에서 곳곳에 가로 주차된 스마트를 매일 지나가며 볼 때마다 정말 저 차는 암팡지게 잘도 만들었구나 싶다.
차량이 작을수록 좋은 건 둘째치고, 정말 오래된, 그리고 간간히는 이제 그만 도로에 다니면 안될 것 같은 외관을 한 차도 참 자주 보이는 곳이 로마다. 단지 차량 연식이 오래되고 구형 모델인 것을 떠나서 일체 관리가 안된 것 같고 하도 부상이 많아 정비소에 급히 가야 할 것 같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털털거리며 시내를 돌아다니는 차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도심을 벗어나 약간의 산길을 거쳐야 집에 도착할 수 있는 동네에 살았던 한국에서는 간혹 좁은 길을 다니다가 나뭇가지에 차 옆면이 살짝 긁힐 때도 있고 돌담에 살짝 부딪혀 아주 약간, 눈에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미세하게 구부러져 들어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나보다도 내 주변의 이웃들이 그 사실을 먼저 알아채곤 했다. 어쩌다가 긁었느냐, 이건 얼른 덧칠해주지 않으면 금방 색깔 변하고 부식될지 모른다와 같은 첨언과 함께. 그리고 그와 흡사한 차량 파손이 난 이웃들은 모두들 참 부지런하게 정비를 하러 가고 수리를 하러 차를 맡기곤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그 부지런함에 늘 감탄을 하곤 했다. 내 몸 고치러 병원 가는 것도 이렇게 짐스러운 일상에서 자동차 고치러 이렇게 열심히 가다니... 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로마에 오니 적이 안심이 되었다. 역시 세상엔 나같이 게으른 사람이 많은 것이었다. 아니 그것보다도 여기서 나는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 축에 속할 수 있었다. 백미러가 한쪽이 떨어져 나가도, 차량 뒷 범퍼가 다 떨어져서 뒤에 질질 끌고 다녀도, 한쪽 창문 유리창이 다 깨져도 그냥 비닐과 테이프로 대충 휘감아 붙여 다니는 차들이 너무나 자주 보여서 처음엔 흠칫흠칫 놀라던 광경에도 이제는 제법 무덤덤하게 지나갈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차량 종류들과 정말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를 보면서 가끔은 공공의 교통 안전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옷차림, 외관, 소유한 차량의 브랜드, 가격 등으로 평가를 하는 사회보다는 현실적으로 실속적이고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쓸모없이 평가를 하지 않는 이 곳에서 일정 부분의 자유로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