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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Mar 19. 2018

[로마의 평일 6] 모르는 사람에게 대화를 당하다

모르는 사람에게 대화를 당하기 참 쉬운 곳이 바로 이탈리아다. 버스나 트램 같은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다 보면 생전 모르는 사람들끼리 어쩌면 저렇게 급작스럽게 대화를 시작해서 내릴 때까지 세상 제일 친한 친구들처럼 떠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도 다양하다.  

버스가 급정거를 해서 불안하게 서있던 사람이 넘어질 뻔하면 모두 어어! 하고 손을 뻗쳐 잡아주려고 한다. (인간적이야..) 그렇게 잡아주고 나면 상황에 대한 민망함과 얼마나 간발의 차로 넘어지지 않았는지, 여러 가지 경험과 느낌을 공유하며 대화 시작.


할머니 한 분이 여기가 어딘지 파악하지 못하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나는 어느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는데...라고 읊조리신다. 그때부터 주변에 있는 4-5명이 할머니에게 어디를 가길래 거기서 내리느냐 등등의 질문을 이어가며 내리는 정거장에 대한 대화를 시작.


내가 타고 다니는 버스가 큰 병원 앞을 지나가기에 가끔 휠체어 탄 장애인이 타기도 하는데 한 번은 술을 많이 자신 상이군인 같은 사람이 타서 고래고래 욕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매우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내 앞에 앉아있던 할머니 두 분은 그 술 취한 사람 발음을 들으며 분명히 로마 사람은 아니고 한 분은 나폴리 출신이다, 또 한 분은 시칠리아 출신이다를 가지고 겁나 큰 소리로 옥신각신한다. 물론 두 사람도 서로 처음 보는 관계. 그러다가 휠체어 탄 술 취한 주인공이 다 틀렸고 난 어디 출신이야! (어딘지 못 알아들었음)라고 소리를 지르길래 아.. 이제 두 할머니 다 엄청 욕보시겠구나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다 같이 대화 시작. 정말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난 그나마 딱 봐도 외국인이고 첫 한두 마디 이후에 이태리어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많이 진행되는 편은 아니지만 간혹 대화를 당하는 경우에는 공짜로 이탈리아어 강습을 받기도 한다. 간간히 버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에게 말을 건 후 내가 버벅거리며 한두 마디 애를 써서 이탈리아어로 대답하면 그때부터 단어도 가르쳐주고 문장도 고쳐주고 죄다 선생님이 되어 내릴 때까지 쉬운 질문으로 구성하여 대화를 이어간다. 내가 대중교통 타는 구간이 15분 남짓이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한 시간 두 시간씩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주워섬기느라 힘들 뻔했다.


스쳐 지나가는 길에서 만나는 인연들과 이럴진대 단골로 가는 가게나 카페 같은데서는 어떻겠는가. 가게에서는 물건 사는 시간보다 가게 주인과 신변잡기적인 안부를 주고받는 게 훨씬 더 오래 걸리고 그래서 계산할 때도 뒤에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끝없이 대화를 한다. 카페 사장님은 내가 봤을 땐 드라마에 나오는 심리 상담사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공짜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의 고충과 인생사를 들어줄 순 없다. 심지어 길에 고정적으로 앉아있는 구걸하는 사람이랑도 비쥬 하며 한동안 떠들더니 몇 유로 손에 쥐어주고 떠나는 사람들.


여기서 오래 있고 열심히 이탈리아어를 배워두면 낯선 사람과도 친근하게 대화하는 친화력이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 같다. 참 인간적이야. 내 평생에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본 적도 별로 없는데 참 좋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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