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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Mar 11. 2018

[로마의 평일 5] 자갈돌 길바닥 Sanpietrini

로마의 분위기를 잡아주는데는 지대한 역할을 한다지만 내 모든 신발의 앞코와 밑창을 다 들어내는데 가장 지대한 역할을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알고보면 이탈리아 신발 경제를 지탱하는 도우미인지도 모른다. 다니다보면 중간중간 숭숭 구멍도 많아서 하루에도 몇번씩 발목이 꺾이고, 바닥 자체가 오르내림이 많아서 길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도 힐은 아주 가끔만 신었지만 여기 와서는 단 한번도 신지 않았다. 하지만 편편한 밑바닥이면 다 괜찮은 것도 아니다. 하도 바닥 평면의 굴곡이 심해서 서울서 주로 신던 얇은 밑창의 플랫신발들은 한나절 신고나면 발바닥이 너무 아퍼서 못신는다. 결론은 두꺼운 밑창의 운동화밖에 남지 않는다.   


차 타고 저 길바닥 위를 지나다보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1. 소리가 너무 커서 

2. 너무 울퉁불퉁하여 골이 흔들려서. 

차는 곧 바퀴가 떨어져나갈거 같아서 걱정이 배가되고 버스의 경우는 사면에 달린 창문들이 와장창와장창 다 떨어져나갈거 같이 요란하다.


비올때 걸으면 너무나도 미끄럽다. 걷다가 맨들맨들해진 돌바닥에 휙휙 발이 헛도는 사람들 꽤나 많이 봤다.

로마의 관광용 시내는 아직도 다 길바닥이 코블스톤으로 만들어져있다. 역사도시 경관과 질감을 유지하는데 가장 적합해서라는데 여러가지 기능에도 불구하고 정말 너무 불편해서 가급적이면 주요역사지구만 제외하고는 아스팔트로 교체되고 있는 중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시내의 끝자락에 있어서 내 신발 쇼핑 욕구가 가실 날이 없다. (물론 아스팔트 바닥도 이렇게 엉망으로 유지되는 곳도 찾기 어렵다. 로마시장 뽑히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도로 노면 유지 공약이다.)



원래도 회사동네 하수도, 상수도 배관에 문제가 있어서 여름내 비가 거의 안오는데도 불구하고 길이 침수되어 도로공사를 간단히 몇번 했었다. 한 달 전부터는 아예 한쪽 길을 막고 본격적으로 파제끼길래 저 길바닥 돌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는 깊게 들어가지는 않는다. 16세기에 바티칸 베드로 성당 마당에 가장 처음 깔려서 sanpietrini (또는 sampietrini)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그전에 사용하던 벽돌보다 월등히 마차 및 말굽에 대한 내성이 강하고 돌과 돌 사이의 공간이 확보되면서 전체적인 길의 안정성 유지에도 좋아서 그 뒤로 로마 전체에 급격히 퍼졌다고 한다. 게다가 지진 화산 많은 이탈리아에 쌔고 쌘 검은 현무암 (basalt)으로 만드니 재료도 풍부.  



파제끼고 2주가 지나니 어제는 공사가 마무리 단계다. 몇몇 사람들이 다시 돌을 까는 모습이 보이길래 양해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바닥 아래를 모래나 흙으로 한켜 깔아 편평하게 고르고 거기에 꼭 모내기 하듯이 실로 줄자리를 낸다. 줄에 맞춰 일일이 돌을 골라 손으로 자리잡아 꽂아넣고는 망치로 적당히 두세번 머리를 쳐서 박는다. 기술자의 면모는 얼마나 적합하게 돌머리를 쳐서 눈대중으로 평면을 이루는지와 열과 오를 맞춰서 삭삭 적합한 돌 모양을 골라내서 바닥을 만드는지에 달린거 같다. 다 깔고 나면 돌 사이사이에도 모래를 채워넣어서 길바닥 완성.







안좋다 안좋다 위에서 갖은 이유를 다 꼽아봤지만 이 길바닥이 로마의 역사도시 면모를 제일 잘 보여주는 존재인건 틀림없다. 로마라는 도시의 전체적 그림과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적어도 30프로 이상은 바닥 면적에서 먹고 들어간다 생각한다. 그리고 떨각떨각 돌바닥 위를 걷다보면 내가 어딜 걷고 있는건가, 이 아래에는 뭐가 있었을까 하고 자연스레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는 나 신발 더 많이 사서 신을테니 회사 동네나 역사도심은 적당히 저 바닥이 유지되었으면 좋겠고 아마도 유지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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