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운동하는 사람, 그게 나라니.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부지런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늘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꾸준한 사람들. 그중에서도 높게 사는 건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나이가 한 살씩 많아질수록 주변에 운동을 안 하는 사람 찾기가 더 어렵다. 일상적으로 헬스를 다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것 같고, 러닝, 테니스, 골프. 각자 본인에게 맞는 운동을 한다.
성실하게 루틴을 지켜나가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 중 고르라면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나는 이런 나의 모습을 좋아하지만 내가 가질 수 없기에 대단하게 여겨지는 사람들은 전자의 사람들이다. 가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몇 년간 매일 일기를 써왔다던가, 매주 일요일마다 풋살을 한다던가,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그걸 몇 달간 기록해 왔다던가 하는 꾸준한 사람들을 마주한다. 요사이 나는 성실하고 생산적으로 매일 루틴한 일상을 보내는 것에 꽂혔다.
기적 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지난번 글에서도 나라는 사람이 무려 '계획적'으로 살고 있다는 이야길 했었는데, 지금의 내 모습은 더 놀랍다.
내가 가장 꾸준히 하지 못하는 것은 운동이다. 나는 운동의 필요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 절실히 공감한다. 정신뿐만이 아니다. 체력이 좋아야 다정할 수 있다. 피곤하면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이기 때문에 쉽게 지치고 짜증 낸다. 몸의 건강함은 몸과 마음, 정신을 모든 것을 관장한다. 그렇지만 나는 태생적으로 귀찮은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체육시간이 싫었고, 미술이나 음악시간이 좋았다. 앉은자리에서 하는 일들이 참 좋았다. 그렇게 운동을 등지고 살면서 낙엽인간이 되었다. 낙엽인간은 자라면서 나름의 시도는 했었다.
나의 운동의 역사를 짚어보자면, 나름 유구한 역사가 있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자녀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었다. 그래서 나는 집 앞 수영장에서 어린이 수영도 배우고 (나름 다이빙까지 배움, 근데 지금 수영 못 함) 어린이 농구 같은 것도 잠시 배웠고, 가장 오래 배운 건 태권도였다. 검은 띠를 따서 품증도 있다. 그렇지만 그 운동들은 나의 흥미를 자극하지 못했고, 나에게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없다. 그렇게 어릴 때 잠시 배우다 한참 체육시간을 싫어하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내 선택으로 시작한 첫 번째 운동은 '이소라 다이어트'였다. 고3 수험생 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책상 앞에서 공부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체중이 불어났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대학생이 되기 전에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운동이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나름 굉장한 체중 감량을 했다.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후로는 헬스장에서 피티도 받아보고, 필라테스도 해보고, 발레도 배워봤는데 어느 하나 정착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정착하기에 나는 너무 예민했다. 나도 정착해서 꾸준히 운동하고 싶었다. 최근에 동네에 헬스장이 새로 오픈하면서 오픈 이벤트를 하길래 덜컥 예약했다가 3개월 동안 딱 한번 갔다. 다시는 헬스를 안 끊겠다고 다짐했다.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루종일 밥 먹고 구직 활동만 하다 보니 몸이 무거워지는 것 같다. 이대로는 몸이 망가지겠다, 싶었다. 러닝을 해보려고 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운동이니까. 그런데 여름이 왔다. 지독하게.
우연히 어떤 직장인의 브이로그를 봤다. 퇴근하고 매일 30분씩이라도 러닝머신을 타고 온다고 했다. 갑자기 나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날도 더우니까 헬스장에서 시원하게 딱 30분씩만 매일 러닝머신 타고 오면 부담도 덜 되고 왠지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때부터 헬스장을 서치 하기 시작했다. 러닝머신만 탈거라 기구들이 좋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다고 너무 싸면 줄 서서 러닝머신 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며칠을 찾다가 집에서 5분 거리에 지상 헬스장을 찾았다. 집에서 2분 거리 헬스장도 있는데 거긴 오피스텔 지하인데 굉장히 크고 사람이 많아서 뭔가 가기 싫었다. 나는 뭔가 한산한 아늑함이 필요했다. 새로 알아본 헬스장은 비교적 새 헬스장이고 기구도 많았다. 그리고 창밖으로 사거리가 보이는 점이 가장 좋았다. 그런데 백수라 그냥 헬스를 등록하기엔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었는데, 마침 짐을 정리하다가 전에 쓰던 아이폰을 발견했다. 후면이 깨졌지만 고장도 없었고, 마침 박스도 가지고 있었고, 번들을 다 가지고 있었어서 당근마켓에 올렸다. 너무 싸게 올렸나 보다 연락이 미친 듯이 왔다. 다음날 만나서 거래를 했다. 알고 보니 후면이 깨진 휴대폰들을 사서 중국에 팔아넘기는 업자였다. 연락 온 사람들, 다 업자일 거라고 했다. 애플 포맷으로 전부 포맷하긴 했지만 그래도 약간 찜찜했는데 뭐, 어쩔 수 없었다. 그 사람한테 받은 돈 그대로 쥐고 헬스장에 가서 약간의 금액을 더해서 헬스장을 등록했다. 조금 충동적이었다.
다음 날이 되었다. 헬스 등록의 첫날이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7시 반에 헬스장을 갔다. 아침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서 너무 좋았다. 기구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러닝머신만 타다가 왔다.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다음 날은 주말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7시 반에 헬스장에 갔다. 문이 닫혀있었다. 검색해 보니 주말은 늦게 연다. 아..... 그대로 집에 갈 수 없어서 한강 러닝(이지만 걷는 시간이 더 많은) 운동을 했다. 너무 더웠다. 그다음 날은 시간 맞춰 헬스장을 갔다. 문이 닫혀있었다. 격주 일요일 휴무였다. 아.... 또 한강을 갔다. 너무 더웠다.
회원권에 포함된 피티로 기구도 배우고 루틴을 정했다. 매일 아침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헬스장으로 출근한다. 지금 12일째 매일 헬스장에 가고 있다. 살면서 헬스장을 이렇게 알차게 이용해 본 적도 처음, 어떤 운동이든 매일 해본 것도 처음이다. 운동 강도는 높지 않지만 성취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래서 사람들이 운동을 하는구나 싶다. 처음 며칠은 근육통에 시달렸다. 낙엽인간 몸이 놀랐나 보다. 그러다 이제는 근육통도 없다. 안 가면 불안하다. 약속이 있으면 준비할 시간을 쪼개서 30분이라도 하고 간다. 러닝만 뛰려고 등록했던 건데, 기구 근력 운동에 푹 빠졌다. 운동을 매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 덕분에, 취준으로 낮아졌나 싶었던 자존감이 많이 채워진다. 작은 성취감들이 쌓여서 자존감을 채워준다. 나도 꾸준히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네. 다시 또 알아간다. 6개월 등록했는데, 솔직히 6개월 내내 매일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약속이 있는 날도 있을 거고, 거르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꾸준히 해냈으면 좋겠다.
취업준비는 서탈과 최탈의 연속으로, 분명 정신적으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모처럼 새로운 나를 알아가는 시간들이다. 오히려 회사를 다닐 때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건강해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버전의 나를 느끼고 있다.
2024년 8월 말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