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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주 Jan 26. 2023

자유주의자 김수영 : 눈

김수영은 1957년에 탈고한 「눈」에서 개인과 민족의 갈등을 제시한다. 화자는 눈이 살아 있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런데 여기의 눈은 “떨어진 눈”이고, 그것도 자연적인 공간인 산이나 바다가 아니라 현실적인 생활공간인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이다. 그가 살아 있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는 눈은 정신적인 공간에 있는 눈이 아니라 물질적인 공간에 있는 눈인 것이다. 그래서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라는 말은 산이나 바다가 아니라 마당 위에 떨어진 눈‘도’ 살아 있다는 말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가 “젊은 시인”을 호명하면서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고 주문하는 것도 “몰락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살아 있는 눈 같은 존재에게 ‘나도 살아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늙은 시인들처럼 눈으로 상징되는 초월적 정신과 함께 마당으로 상징되는 물질적인 생활도 중시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인이라고 해서 현실적인 돈을 부정하면서 초월적인 정신만 추구하지 말고, 자본주의 시대에 필수적인 돈을 벌기 위해서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 시대에는 시인도 개인적 생활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자유주의자인 것이다.


이어서 그가 말하는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는 “스스로 존재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있는 좀비 같은 상황”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의 다원성을 실천하지 못하고 영혼만을 추구하는 젊은 시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인이라면 “죽음 위에 죽음 위에 죽음을 거듭”하는 구라중화(「구라중화」)처럼 육체의 시간인 낮에는 영혼의 죽음을 통해 물질적 생활을 추구하고, 영혼의 시간인 밤에는 육체의 죽음을 통해 정신적 예술을 추구해야 되는데, 이러한 죽음을 잊어버리고 낮이나 밤이나 정신적 예술만 추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눈이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는 말은 순수성을 상징하는 눈은 밤이나 낮이나 모두 살아 있다는 뜻이 된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영혼이 추구하는 정신적 예술과 육체가 요구하는 물질적 생활이 모두 눈처럼 순수한 것이므로 정신적 예술만이 아니라 물질적 생활의 순수성도 긍정해야 한다는 것을 젊은 시인들에게 얘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눈은 새벽이 지나면 살 수가 없다’라는 반대의 진술과 비교하면 보다 분명해진다. 만약 그가 밤의 시간이 상징하는 정신적 예술이 낮의 시간이 상징하는 물질적 생활보다 더 순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에서 그는 젊은 시인들에게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를 마음껏 뱉으라고 주문한다. 여기서 ‘가래’는 “현실에의 분노”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밤새 민족 정신만 추구하다가 생긴 더러운 찌꺼기를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영혼의 시간인 밤에는 민족적 정신을 추구하다가도 새벽이 되면 그 찌꺼기를 뱉어내고 육체의 시간인 개인적 자유를 추구하라는 뜻이다. 가래를 뱉어내는 기침은 바로 영혼의 죽음과 육체의 자유를 실천하는 상징적 행위인 것이다. 


물론 김수영은 이 시에서도 「달나라의 장난」, 「폭포」 등과 마찬가지로 낮에 일하고 밤에는 글을 읽는 주경야독(晝耕夜讀), 즉 낮과 밤의 다원적인 시간의 기술을 통해 개인적 자유와 민족적 정신 사이의 긴장을 추구했던 다원주의자이다.



「눈」(1956)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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