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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Apr 03. 2022

‘발행’ 버튼을 마구 누를 수 있는 용기

우연히 지나가는 한 마디가 마음을 움직인다

그럴 때가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 앞에 적힌 한마디에 마음이 ()하고, 시간을 때우려 재생한 영화 대사 하나에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는다. 우스갯소리만   같은 희극인의  마디에 하루 종일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시시하게만 보였던 소설이 어느 순간 인생 작품으로 느껴지고, 오래전 써놓은 일기장의  구절에 괜히 마음이 짠해진다.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아닙니다.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깜짝 놀랐다. 일절 기대하지 않았고, 전혀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아이와 함께 낄낄거리며 개그 유튜브를 멍하니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뜬금없는 대사 하나에 예상치 못하게 펀치   얻어맞은  같았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말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을 온통 헤집어 놓았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 생각만큼 풀리지 않는 , 모든 것이   같지 않은 지금이 내게는 마치 폭풍우가 지나가는  같았다. 나는 빗속에서 우울해하고만 있었다. 감히 비를 즐길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과거에 나는, 마음을 움직이는 말은 특별해야 한다고 믿었다. 유명해야 하고, 지식이 풍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시절엔 소위 지식인의 책만 찾아보았다. 책 선택의 기준도 인지도에 비례했다. 많은 이에게 인정받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가방 끈이 길어야 신뢰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의 책은 은근히 무시했다. 팔리지도 않을 책을 그저 출간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거라 생각했다. 읽을 가치도 없다며 폄훼했다.


말과 글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식견도 없는 주제에, 오직 유명세가 전부인 것처럼 굴었다. 유명인의 글에는 무조건 고개를 끄덕거리며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의 글은 어떻게든 비판할 거리를 찾아내었다. 술자리에서도 나는 유명인의 글을 인용하며 좀 더 나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우쭐거렸다.

(내가 봐도  재수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랬 싶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어찌 유명세에 비례할  있을까. 게다가 유명하다는 사람들 역시 누군가의 말을 가져오거나 꾸며내는 경우도 많다(대필도 많다). 지금껏 얼마나 많은 유명인이 우리의 뒤통수를 휘갈겼는지, 머리가  얼얼할 지경이다.


사람의 마음과 감정, 그리고 처한 상황은 모두 제각각이다. 같은 글을 읽고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슬픔으로 다가오지만, 누군가에게는 담담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씁쓸하게만 보인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정, 상황, 장소, 타이밍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글이 되고 영화가 된다. 유명하고 인지도 있는 글이 모두에게 이로울 거라는 생각은 오만이다. 때로는 아이의  한마디, 개그맨의 지나가는  한마디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가끔  시간 가까이  놓은 글이, 진심으로 하찮게 보일 때가 있다. 도무지 ‘발행버튼을 누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쉬어간들  어떠냐 싶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내게는 하찮고  볼일 없는 이야기라도,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후벼 파는 이야기가   있다.   명에 불과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가  이야기로 인생이 바뀐다면 그것만큼  가치도 없을 테니까.


그러니, 멋지고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 내는 데 집착하지 말자. 무릎을 탁 치는 비유, 주제에 어울리는 재미난 경험, 물 흐르듯 읽히는 문장과 문단의 구조에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자.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진심이 담긴 꾸밈없는 글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다. 소소하고 가볍고 흔한 소재에 불과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글귀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그러니 발행 버튼을 누르는 것에 괜히 겁먹지 말자. 눈 딱 감고 그냥 눌러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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