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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Mieum Mar 10. 2022

16. 동성애는 옮는다

사실 후천적이냐 선천적이냐 논란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호모포비아(퀴어혐오자)들의 가장 흔한 주장 중 하나는 “동성애는 옮는다”이다. '성적 지향성이나 젠더 정체성이 선천적이냐 혹은 후천적이냐'는 논쟁은 페미니즘계나 학계에서도 꽤 오래 이어져 온 주제이기도 하지만, 호모포비아들의 저 주장은 약간 결이 다르다. 우선 성적 지향성이 옮으려면,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어야 하며, 추가적으로 사람과 사람 간에 어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이어야 한다. 주로 호모포비아들은 이러한 동성애 전염의 도구가 (흔히 잘못된) ‘쾌락’이라고 말한다. 즉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이라면 선천적으로 절대 알 수 없을만한 어떤 궁극의 어둠의 쾌락을 동성애자들이 퍼트리고 다니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한 ‘정상인’들이 이에 휩쓸려 동성애자가 된다는 논리다. 그렇기에 "레즈비언/게이 친구랑 놀지 마라, 너도 옮는다” 라는 말이라든가, 차별금지법을 '우리 소중한 아이들을 동성애로부터 지켜줄 수 없는 법안'이라 여겨 반대한다든가 하는 말들이 등장하게 된다. 성적 지향성이 절대적이며 선천적인 어떤 것이라 느낀다면 이런 말들이 어불성설일테다. 하지만 한 편, 성적 지향성이라는 것은 또 개인의 노력 등으로 바꿀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닌 것인데 정말 영향을 주거나 옮기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성애는 옮는다’.  

 단, 개개인별로 한 명이 한 명에게 옮기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영향을 준다.  


  나는 어릴 적, 흔히 이성에게 관심이 생기는 시기라고 불리는 사춘기 시절부터 20살까지 디나이얼 시기를 거쳐왔다. (* 디나이얼(denial) : ‘부정’이라는 의미. 스스로의 정체성을 무시하거나 모르는 척 부정하고, 종종 혐오하기도 하는 퀴어 당사자)

 디나이얼로 살았던 배경에는 물론 다양한 경험과 원인들이 있었지만, 주로 항상 모범생, 착한 아이, 장녀, 말 잘 듣는 딸이자 학생 등으로서의 정체성이 너무 강하여 스스로의 모든 욕망과 주체성 등을 누른 채 살았던 배경이 크다. 지금의 나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볼 줄 알고, 내가 원했지만 하지 못한 것과 할 수 있던 것들을 분리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 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른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고 정상성으로의 회귀욕구가 너무 강했다. (이상한 딸, 이상한 학생이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랬기에 여성인 성별을 가진 사람에게 끌렸던 여러 번의 감정 경험은 내게 당혹감을 가져왔고, 뭔가 정상적이지 못한 감정을 가졌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일기장에서조차 크게 비웃기까지 했다. 그저 장난으로, 한 때의 감정으로, 이상한 ‘고장’으로 치부하며 넘겼다. 


 그리고 스무살이 되어 대학에 갔고, 당시 몇 년에 거쳐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왔던 남자인 친구 하나가 내게 커밍아웃을 했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성애자 패싱을 했던 친구가 사실은 나와 친구로 지내 온 그 시간 내내 게이라는 정체성으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내겐 꽤 큰 혼란이었고, 동시에 커텐이 쳐져 있던 내 세상 일부를 확 열어 제끼는 경험이기도 했다. 그 ‘어떤 한 사람’이 게이인게 충격인게 아니었다. 나와 학창시절 내내 웃고 떠들고 뛰어 다니던 친구가, 가끔 여자친구도 사귀었다가 금세 헤어지곤 했던 그 친구가 게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만 정상성으로의 회귀감정이 강한 거였지, 사회적으로 성소수자를 부정하거나 혐오하는 건 또 아니었으므로 쉽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긴 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내게 곧장 어떤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아니,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비가 날갯짓을 한 공기의 작은 바람이 커다랗게 태풍이 되어 몰아친 건 이듬해였다. 우연히 듣던 전공 수업에서 팀플레이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고, 우리 팀의 주제 가운데 ‘퀴어’가 있었다. 막막했던 팀 회의 중 그냥 지나치듯 말한 나의 “근데 나도 여자 좋아했던 적 있는데….” 라는 말이 씨앗이 되었고, 우리의 다큐멘터리 주제는 나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사랑에도 고민이 필요해>가 되었다. 


 나는 당시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가 있었다. 20대 초반, 연애라는 정상성 수행을 위해 만났던건지는 모르겠다. 해당 팀플 과제를 위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나는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인건지’에 대해 끊임없이 진지하게 알아가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았고, 많은 시도를 했다. 그 과정에서 예전에 중고등학생 시절 썼던 일기장도 담아 냈고, 내가 좋아했던 친구의 이야기를 담아 내기도 했다. 그렇게 과제를 하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나는 스스로를 ‘퀘스쳐너리(Questionary, 스스로의 성정체성을 빈 칸으로 두고 있는 퀴어들.)로 정체화했다. 앞으로 내가 만날 연애의 대상 후보목록을 ‘남성’으로 한정짓지 않는, 작은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10년 가까이 흐른 시간 동안, 스스로를 조금 더 상세하게 정체화하고 다양한 연애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여전히 알아가는 중이다. 확실한 것은 난 여성애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이었고, 놀랍게도 이 생각의 씨앗은 스무살 친구로부터 들었던 커밍아웃이었다는 것. 난 아주 어릴 적부터 여성에의 끌림을 느꼈지만, 이는 충분히 무시할 수 있을만한 경험들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겁이 나거나,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흔히 여겨지는 것들로부터 멀어지려 하는 힘이 생각보다 강하다. 만약 내가 스무살에 그 친구가 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나의 정체화는 조금 더 많이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요즘은 20~30여 년 전에 비해 성소수자들이 매체에서 많이 다뤄지고 주변에도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늦게라도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분명 가졌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것이 그냥 ‘사회에서 다뤄지는 성소수자의 모습’이 아닌 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더 영향이 크게 왔다는 사실이다. 


 그 게이 친구가 사실 나의 정체화 이후 작은 걱정을 내비친 적이 있다. 자기가 괜히 ‘멀쩡히 살고 있던 너’한테 영향을 줘서 애가 이상해 진 건 아닐까 하고 걱정된다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야, 너가 게이라는 얘기 듣고 상당히 놀랐던 것도 맞고, 그걸 눈치 못 챘던 내 자신에게 화가 났던 것도 맞는데, 잘 생각해보니 나는 나 자신도 눈치 못 채 온거더라고. 그걸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오히려 된 거니까 너한테 고맙지.”  


 단지 사회에서 많이 보이는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누군가 가까운 존재가 퀴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면 그 다음의 질문은 ‘나’ 자신에게로 넘어간다. 나는 우리 대학생 시절 다큐멘터리 제목처럼, 뼛속까지 이성애자인 사람들도 사실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과연 진지한 고민 끝에 스스로가 이성애자라고 정체화한 것인가? 사실 이런 질문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 고민끝에 스스로를 이성애자라고 정체화 한 이성애자들은 많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회는 그것을 ‘기본값’으로 놓고 생각조차 해 볼 기회를 주지 않으니까. 마치 스무살 이전의 내 모습처럼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이성애규범적 사회기 때문에, 동성이라면 ‘사랑도 우정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이성이라면 ‘우정도 사랑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쉽다. 사랑? 우정? 이 두 차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조차 해 보지 않았다면, 스스로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성애규범적인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 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면 좋겠다. 너무도 쉽게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딨어’ 라는 말을 주워넘기는 사람들은 이러한 상상력의 빈곤으로, 이성애규범을 재생산하며 살아온 것이다.  


 동성애는 그렇기에 전염된다.


 그 누구도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해 말하지 않고 쉬쉬하는 사회, 매체나 미디어에서도 성소수자가 다뤄지지 않는 사회, 계속 커밍아웃은 음지의 것으로만 남아있고, 오픈리 퀴어(공개적인 퀴어)의 수가 너무도 적은 사회, 성적 지향에 대해 교육의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회라면, 정말 적은 비율의 극도로 예민한 사람들만이 본인의 성 정체성을 남 몰래 깨닫고 살아갈 것이다. 퀴어 포비아들이 “요즘 한국에도 레즈, 게이들이 점점 늘어난다! (말세다!)” 라고 말하는데, 사실 우리나라도 20~30여 년 전에 비해 확실히 많이 가시화 되었고 긍정적인 보편화를 조금씩 이루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다. 옛날 같았으면 학창 시절 짝사랑했던 여자친구를 그저 ‘단짝 친구’로 기억하며 시집 가서 애기 낳고 살게 됐을 사람들이, 이제는 ‘내가 그 친구를 좋아했던 거구나, 난 여성을 좋아할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는 뜻이고, 그 과정에는 다른 성소수자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것이다. 본인의 마음과 정체성에 대해 자세히 톺아보고 느껴보는 건강한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무조건 덮어놓고 모른 척 하고, 모두가 그저 그렇게 태어난 이성애자라고, 그냥 무조건 그게 순리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살라는 것이 오히려 더 음침한 세력같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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