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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쟁 Sep 04. 2023

삼남매 엄마가 계절을 기억하는 방법

출산에 의한 계절 기억법

 얼마 전에 첫째 아이 생일이었다. 일곱살이 된 아이는 하필 자기가 일곱살이 된 해에 나이를 세는 나라법이 바뀌어서 동생 나이가 됐다며 못마땅해했다. 천장까지 하늘색 풍선을 달고 언제 꽂아도 좋은 생일 초에 불을 붙이고.. 올해 들어 다섯 식구 우리 가족 벌써 네번째 생일이지만 첫째 아이의 생일은 특별하게 느껴진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잔뜩 기에대 부푼 아이의 표정에 나도 덩달아 즐거워진다. 나와 남편은 6년 전 오늘, 힘을 다해 세상에 나와주고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를 대견하게 바라본다.

 첫째 아이의 생일인 8월 26일이 지나고나면 항상 비가 왔다. 6년 전 그날도 다음날 아침 비가 내렸었다. 그리고 언제 여름이었냐는듯이 선선해진다. 출산 전날까지도 몇킬로씩 걸으며 운동하던 나는 여름의 끝에서 해산을 앞둔 몸 만큼이나 더위를 힘들어했었다. 그런데 몸조리하러 조리원에 들어갔다가 2주만에 나올 때는 긴팔을 입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첫아이 출산이라 몸조리에 더 각별하느라 긴팔을 입은 탓도 있지만 그만큼 8월 말에서 9월 초의 날씨 변화는 컸다. 마치 아이를 낳기 전과 낳은 뒤 만큼이나... 출산의 기억은 어쩔 땐 절기보다 더 정확하게 날씨와 계절을 명중한다. 올해도 첫째 아이의 생일이 지나고 어김없이 비가 왔다. "완전 가을 날씨네?" 높아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원한 바람에 감탄하는 남편의 말에 마치 나는 내가 여름 더위를 무찌르고 가을을 가져온것마냥 으쓱하며 말한다. "내가 말했지? 이 생일 지나고 비가 와, 그럼 가을이야."  

 우리집 막둥이 셋째 생일은 시월 말이다. 우리 가족은 세 아이를 낳는 동안 여섯번의 이사를 했는데 그 시기가 매번 출산을 앞둔 때였다. 셋째 아이 출산예정일을 보름 앞두고 이사를 했었다. 이사 간 동네엔 멋진 갈대밭이 있었는데 배가 남산만한 나는 아직 어린 첫째, 둘째 아이와 갈대밭을 찾아서 예쁜 사진을 남겼다. 그때 사진을 보면 나는 모헤어 소재의 가디건을 입고 있고 아이들도 긴팔 차림이다. 셋째 아이를 출산하고 집에서 몸조리를 하는 동안 겨울의 긴 저녁과 밤에 나는 아픈 몸에, 잠들지 않는 아이를 안고 많이 울었다. 그래서 나는 시월이면 겨울 해가 길어지는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 셋째 아이 생일이 다가오면 겨우내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생활방식을 바꾸려고 많이 노력한다. 물론 셋째가 태어나기 전 9월 말부터 시월초까지 2주간 더없이 좋은 날씨에 첫째, 둘째 그리고 남편과 함께했던 멋진 강원도 여행도 기억한다. 추석도,양가 어른들의 생신도 지난 그 계절은 여행 비수기라 어딜가든 한적하되 짧은 가을 날씨를 만끽하기에 좋다. 우리 가족은 강원도에서 시간을 보내며 곧 태어날 새 식구를 기다리며 얇은 옷과 두꺼운 옷들을 뒤적여가며 전에 없던 계절을 만끽했었다. 그 후로도 우리 부부는 매해 이시기가 되면 여행을 계획한다. 마치 우리만 아는 여행 최적기인듯 비밀스럽고 뿌듯해하면서 말이다. 아직 어린 영유아 세명을 데리고 짐을 꾸리고 나서는 일이 쉽진 않지만 우리는 안다, 지금이 우리에겐 가장 여행하기 좋은 때라는 것을. 그렇게 구월 말에서 시월초는 우리 가족만의 여행절기가 되었다.  

 첫째는 아들, 둘째는 딸인데 나는 둘째가 딸이라는 소식에 무작정 분홍색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전에 없이 레이스나 프릴달린 옷을 입고, 임부복도 첫째 아이 때보다 더 갖춰입게 되었다. 그리고 둘째 딸의 출산예정일은 3월 말이었는데 나는 그날도 아직 때이른 것 같이 보이는 하얀색 프릴 원피스를 입었다. 아직 추위가 덜 가신 봄이었지만 곧 태어날 아이와 나만의 접점이랄까, 여자들끼리의 출산 드레스코드랄까. 벗고 나오는 아이는 뭘 입지 못할테니 나라도 입어야겠단 생각이었던것 같다. 교회 갔다가 집에 가는 길에 출산이 임박해져서 남편에게 알리자, 옷 갈아입어야되지 않냐는 말에 "이거 입고 낳을거야." 하고 웃었다. 그리고 그렇게 예쁜 아이가 나왔고 아이가 태어난 뒤 조리원 창문 밖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해 딸 아이의 생일부터는 온갖 예쁜 봄꽃들을 기대하게 되었다. 마치 아이가 나에게 와준 날이 내 인생의 첫번째 봄이었다는 듯이.

  삼남매 엄마인 나는 그렇게 내 출산의 기록에 의해 계절을 기억한다. 앞으로 남은 날들 동안에 아이들을 만난  첫날을 잊지 말라는 듯이 창조주는 내게 특별한 계절읽기를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더위가 꺾인 팔월 말, 해가 길어지는 시월 말, 봄꽃이 숨어 기다리는 삼월 말 전에 없이 특별하고 개성있는 계절들을 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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