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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Dec 08. 2023

어떤 손님

우리 집 앞에 큰 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정확히 집 문을 나서면 한쪽에 우뚝 서 있는 거고, 거실 테이블에 앉으면 정면으로 볼 수 있다. 집이 타운홈의 끝집이라 이 나무 한 그루가 '전망 좋은 집에 한몫을 한다.


나무 앞으로  오솔길이 나 있는 작은 언덕이 있고, 그 키는 이층인 우리 집보다 더 크다. 이 나무는 거실과 나란히 들어선 부엌 창을 통해서도 볼 수 있고, 그 옆으로 자리 잡고 있는 내가 글을 쓰는 데스크에서도 볼 수 있다. 크기도 하지만 창너머 보이는 이 나무는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고, 운치가 있다.


아침이면 나무 틈 사이로 밝아오는 뿌연 오렌지빛의 하늘은 더할 나이 없이 예쁘다. 비가 오거나, 눈 내리는 날에도 분위기 잡기에 좋다. 기막힌 건 달이 나무 위에 들어서는 날은 환상적이다. 나무 한 그루가 그림과도 같다. 매일 이 나무를 보면 한 마디가 절로 나온다.


'세상에! 저 나무가 우리 집의 품격을 높인다 말이야.., 어쩜, 저곳에 큰 나무를 심을 생각을 했지?' 하며

타운홈의 매니지먼트에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뭐,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언젠가부터 이 나무를 사모하게 되었다. 좋아한다'는 표현은 좀 아쉽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늦가을이었다. 가지만 남은 나무에 새둥지가 있는 걸 보았다. (아마 여름 내내 가지가 무성한 나무사이에 있는 걸 보지 못했던 것 같다. )


그것도 나무의 꼭대기다. 금방 눈에 띄었다. 둥지는 제법 크고, 튼튼해 보였다. 멀치감치서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아기새들의 머리만 보이는 때도 있었다.


새둥지는 그 나무에 장식처럼 붙어서 나무의 친구가 된듯했다. 나는 이때부터, 나무에 찾아온 새둥지를 함께 사모하게 되었다.^ 매일 나무와 새둥지를 보는 것이 나의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작년 가을쯤이었나? 며칠간 폭풍이 연이어 심하게 불었다. 곳곳에 나무가 부러지기도 할 정도의 매서운 바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디 ~ 쟤들 잘 있나?" 하고 새둥지를 살폈다. 강한 바람에도 잘 버티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며칠간의 모진 비와 바람으로 새둥지가 조금씩 무너져가는 듯했다. 급기야는 조그만 흔적만 남긴 채 사라졌다.


'어머! 어떡해~ 새둥지가 날아가버렸어!'

나는 남편이 듣든 말든 혼자서 잠깐 법석을 떨었다. 그는 '무슨 새둥지 가지고 이 여자가 난리람?' 하는 눈초리를 하면서 위로 비슷한 말을 던졌다. "뭐~ 새들은 둥지 뜬곳에 다시 온대쟎아~"


"글쎄, 그럴까?.."


한동안 나무는 벗을 잊어버린 듯  썰렁해 보였다.

나는 그저 나무만 열렬히 사모하게 되었다.^ 다시 나무 위에 찾아 올 새 손님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번 여름이 지난  어느 늦가을 아침이었다. 무심코 바라본 나무 위에 새둥지가 자리 잡은 것이 보였다!. 얼마 전까지는 보이질 않았는데 그사이 둥지를 튼 것이다. 그것도 꼭대기다. 아마 작년 집을 잃은 새 패밀리들이 찾아온 것이 아닐까?.. 그런 것 같다.


나는 너무 반가워 무슨 일이 일어난 듯. 소리를 확 질렀다.

"어머! 새~새둥지가 생겼어!, 걔들이 돌아왔나 봐~"


평소에 정서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남자(남편)는 '무슨 일이라고?' 하는 눈초리다. 뭐 그러든 말든 나 혼자 좋아라 했다.


아마 그 새둥지와 나무는 서로를 받쳐주고, 버텨주면서 함께 바람 속에 견뎌온 친구가 아니었을까? 나는 다시 나무와 새둥지를 사모하게 되었다. ^


매일매일 그들을 올려다보고, 살펴보면서 멀리 길 떠난 친구가 돌아온 느낌이 들어 흐뭇하다.


나무 위에 다시 찾아온 손님이다. 아! 우리 집의 손님이기도 하다.손님이란 이렇듯 반가운 일이다.


새둥지가 새로 자리 잡은 걸 보니 뭐, 좀 좋은 일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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