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 Moon Apr 08. 2024

착한 일을 합니다만 팁을 받습니다

나에게 일종의 공식 같은 게 있다.


누군가에게 심부름을 시키면 팁을 준다.

가령, 이럴 때다. 우리 부서는 종종 커피나 드링크를 오더 해서 먹는다. 딜리버리를 해 주지만 스토어나 드링크 종류에 따라 누군가 픽업을 가야 할 때가 있다.


주로, 신참이 픽업을 가는 일이 많다. 각자 더치페이다. 보통은 픽업을 가는 직원에게 살짝, 그녀 몫의 커피 값을 얹어주거나 거스럼돈을 받지 않는다. 별거 아니지만 그녀의 픽업일에 괜히 힘‘ 하나를 보태는것처럼 보인다.


내가 이런 공식을 만든 데는 나름 배경이 있다.


어릴 때, 아마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였지 싶다. 나는 아버지의 잔 심부름꾼이었다. 딸 셋 중에 막내라, 아버지의 심부름은 항상 나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나름 합리적인 방식을 따르는 사람이었다. 심부름이란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라 그 댓가가  있어야만 한다고 여기신 것이다.


그런 아버지는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돈을 줬다. "자~옜다 , 거스럼돈은 너 맛있는 거 사 먹어라. “ 심부름값은 따로 주실 때도 있었고, 거스럼돈이 될 때도 있었다. 일종의 팁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팁 받는 재미가 붙었고, 열심히 아버지의 잔심부름을 했다. 음.. 심부름을 하면 돈이 오는 거네?.. , 그러니 심부름값은 당연한 거지 뭐~하며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가끔은 아버지가 심부름값을 외상으로 할 때가 있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 때다. 심부름값을 주는 일을 잊어버린 척, 모른 척하고 넘어가려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맹랑한 나는 당장, 이마를 찡그리고 손을 내민다.  '아버지 돈!' 하며 무슨 빚쟁이 닦달하듯 심부름값을 당당히 요구한다.


아버지는 '야~야~ 담에 주꾸마! 외상 달아 놔라 마~' 한다. 그때 속으로 ‘어? 이 가시나 보소!’ 하며 막내딸의 싸가지를  알아차렸을 테다.


상대가 만만치도 않았지만 아버지는 경상도 사나이답게 심부름값을 떼먹지도 않으셨다.  순순히 그 외상값을 잘 갚으셨다. 다음번 심부름값에 외상값이랑 더블로 얹어주셨다.


심지어, 아버지는 안마를 부탁해도 돈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 울 아버지 나름 근사했던 것 같아. 아무튼, 팁은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도 아신 거고.


돈 받고 하는 심부름은 마치 나의 용돈 벌이처럼 알뜰한 것이었다. 직업으로 치면, 맡은 임무를 척척 야무지게 잘해 냈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가족끼리 소문이 났던지, 나의 용돈 벌이는 외가댁까지 소문이 퍼졌다.


외할머니도 나에게 잔 심부름을 시키기 시작했다. 지금으로 치면 외가댁은 우리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는 엄마와 외할머니사이의 급한 심부름꾼 역할을 했다. 엄마가 나를 외가댁에 보내면 외할머니가 뭘 쥐어주면서 꼭 심부름값을 주셨다. '이거~ 엄마 잘 갖다 줘~'하고. 생각해 보면, 엄마 심부름에도 팁을 주는 사람은 늘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팁은 꽤 두둑했다. 할머니는 나의 용돈벌이에 가장 큰 헌신쟁이셨다. 울 할머니도 꽤 멋진 분이셨다^심부름도 심부름이었지만 시키는 일마다 앗쌀~하게 해내는 어린 내가 어여뻤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어린 내가 심부름값으로 받는 팁이란 열심히 하려는 욕심을 가지게 하는 그 무엇이었다. 당연히 받으면 나도 얹어 주는 것과 같은 평등함의 대가라고까지 생각했다.


그이후로 내가 돈을 버는 어른이 되었을때 부터다. 나도 누군가의 서비스를 받을 땐 조금씩 팁을 주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혹은 누군가의 심부름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기꺼이 주는 약간의 팁도 마다하지 않는다. (참고로, 아버지한테처럼 팁 내놔요! 라고 싸가지를 부리지는 않는다) 이런 팁은 마지못해 주는 돈이 아니다. 주고 싶은 돈이다. 그저, 기분 좋게 받는 게 상대방을 해피하게 만드는 일이다.


재미있는 건, 결혼을 하니 팁을 주는 사람이 또 있다. 시어머니와 그녀의 자매들이다. 시어머니는 젠틀하게 '팁' 고수다. 뭐든지 본인을 위해서 서비스를 하면 약간의 팁을 준다.


원칙이 있다. 가족에게는 캐시를, 주변인들에게는 선물을 안겨드린다. 불행히도 며느리(나)는 제외다. 며느리는 그녀의 가사도우미로 정부에서 돈을 받으니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심부름값처럼 팁이다. 정부가 주지만 어머님 때문에 받는 돈이다. 좋은 일을 하는 척하면서 돈을 받으니까.. 뭐, 간접적인 팁은 팁인셈이다.


작년에 시어머니 옆집으로 여동생이 입주하셨다. 시어머니에 이어 이모님도 심부름값을 치르는 걸 적절하게 잘하시는 분이시다. 어째, 이것도 집 안 내력인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애리조나에서 온 조카가 며칠 있으면서 소일거리를 해 주었다. 어머니의 귓띰으로는 이모가 팁을 후하게 주셨다고 했다.  다 큰 어른에게 맛있는 거랑 옷 사 입으라는 명목으로.


이모님은 자녀들이 모두 다른 주'에 살고 있다. 평소에 사소한 것들은 이모님이 직접 하신다. 근처 그로서리를 간다거나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가는 일등이다.


가끔, 제법 시간이 들고, 거리가 있는 샤핑이나, 무거운 장보기등 도움이 필요한 것들은 우리 (남편과 나)가 번갈아서 도와드린다. 약간의 팁이 따라온다.  참고로 남편은 한사코 받지 않으려 한다. 그가 부담 없이 받는 것은 주로, 식사 한 끼 정도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이라고는 , 음식을 해서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이다. 최근엔 시력도 많이 나빠져서 혼자 하시기 힘든 일이 생겼다. 주로 전화기에 온 메시지를 확인하고, 세금 고지서를 첵업해드리는 일들을 해 드린다.


어느 날, 이모님이 나에게 부탁 한 가지를 하셨다. 스페셜 안과 닥터를 만나는데 함께 가 달라는 일이었다. 시 어머님도 아니고 , 조카며느리라 이모님도 어렵게 꺼낸 말씀 같았다.


아파트에서 제법 떨어진 거리란다. 시간은 대충 3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그러고서 대뜸 '야! 개스 값 줄게!" 하셨다.


그 말씀에 잠깐 웃음이 나왔다. 퍼뜩 속으로 ‘어? 이모님이 내가 팁 좋아하는 인간인걸 아셨나? "라는 말이 내 입 속에서 맴돌았다.


'호호 이모님! 개스값 가지고는 안 돼요~  저, 제대로 팁 받겠습니다!" 했다.


"오케이~ 좋아!  내가 팁 제대로 얹어주지~~‘라고 이모님도 바로 맞장구쳤다. 이건 그냥 하시는 소리가 절대 아니다.


이모님은 워낙 계산도 정확하고 , 재치가 있으신 분이시다. 나와는 대번에 의견(?)이 맞아떨어졌다.  이모님은 안과 방문 후, 적절한 심부름값인 팁을 주셨다. 식사를 사셨고,  개스값이라고 하며 캐시봉투를 건넸다.


아~ 시어머님같았으면 단번에 받아챙겼다. 한건너 뛰어넘은 시이모님이라 좀 다른 느낌이 든다. 살짝.. 뒤로 뺐다. 아닌척, 모른척, 공손한척하면서.


"저, 이모니임~ 외쌍 괜찮아요..^^"


“ 뭐? 외상이라고 호호호~나 그런 거 안혀! 그냥 받아!” 했다.


팁이란 재밌는 일이다. 부모 가족에게서 무슨 팁? 하며 받는 일을 이상하게 또는 무례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릴 때 아버지가 항상 심부름 값을 챙겨 준 것은 나에게 용돈이랍시고, 고마워! 심부름 잘해! 하며 돈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처럼, 어른은 그런 일로 작은 돈을 쓰고 싶다. 그런 맛으로 심부름을 시키고 , 심부름시키는 어른은  아직도 용돈을 줄 수 있는 것에 재미를 가지기도 하고 푸듯해 한다. '음, 내가 아직까지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거다.


사실, 어른이기 때문에 하는 일이고, 어른이 주는 것이기에 또 받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이 내미는 심부름값인 팁은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게 장땡이다.





이전 09화 내 주름, 깡다구로 버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