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이스 강 Aug 26. 2024

노인들에게도 태교를 권하며

나이 먹는 것이 벼슬은 아니므로

첫아이를 가졌을 때 제일 미친 듯이 당겼던 음식은 신 것도, 단것도 아닌 생쌀이었다.

결혼 전에는 서울을 떠나서 가장 멀리 가 본 지방이 대구였다. 여름방학에 대구에 사는 친구( 서울로 유학 온)의 본가를 가 본 적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대구보다 더 먼 울산으로 가서 살 줄이야.

현대 자동차에 근무하는 신랑을 따라서 내려간 울산 염포동 주공 아파트에서 잠깐 울컥했다.  내 집을 떠나서 정체 모를  남자와 외딴곳에서 산다는 정체 모를 외로움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라서 연탄 배달도 힘들게 받았고 장 보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겨울에 수돗물이 얼면 물 자동차가 와서 배급할 때 무거운 배를 안고 물동이를 5층까지 날랐다는.

그것도 결혼 후 나의 첫 생일에.

외로움에 서러움까지 더한 지역(징역 아님)살이에 된서방 만났었다는.


친구들 중에서 졸업한 해의 5월에 결혼해서 제일 먼저 취집한 내가 신기해서 서울에서 친구들이 줄줄이 놀러 와서는 방 두 칸 13평 주공 아파트의 비좁은 방에서 시시덕거리며 놀다가 자고 갔다. 방 한구석에는 친정 엄마가 바느질하라고 사 준 앉은뱅이 재봉틀이 있었는데 곰손인 나는 생전 쓸 일이 없었을뿐더러 친구들이 화장품 파우치를 펼쳐놓고 화장대로 쓰다 가곤 했다.


어릴 때, 이불 홑청을 뜯으면 삶고 빨아서 널면 빨랫줄에서 돛단배의 돛같이  펄럭이던 흰 옥양목,  꾸덕꾸덕할 때 접어서 다듬이질을 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눈처럼 백옥 같은 청을  요란한

공작무늬빨간 양단이나 공단 본판을 삥 둘러 이불을 감싸서 바느질을 했다.

나야  '돼지 불알 얽어매듯'( 농사짓는 친구에 의하면 돼지들의 포경 수술 시 대충 꿰맨다는) 엉성한 솜씨라서 바느질은  아예 시키지도 않지만 실을 바늘귀에 넣는 일은 꼭 나를 시켰다.

내가 '밭으배기'(이북 사투리로 가까운 데만 보는 근시)여서 바늘구멍에 실은 한 번에 잘 끼웠다. 그래서 재봉틀? 나에겐 유명무실한 제품일 뿐.


또다시 울산, 연탄 아파트라서 물 솥은 아궁이에 걸어놓지만 밥이나 반찬은 원통형의 석유곤로에 해 먹었다.

결혼 전엔 쌀도 한번 안 씻어 보았다.

 에 돌이 많아서 조리로 살살 걸러내지 않으면 부친이  식사하다가 와지끈 리를 내면  쌀을 제대로 씻은 죄인이 되는 시절이 있었다. 신부수업이라고 한 번은 잡채를 하라고 했는데 당면의 반은 개수대로 흘러가서 수채구멍이 막... 힐뻔.


임신한 새댁이 쌀을 씻으며 계속 엉성한 조리질을 하다가 한 번은 조리에 붙은 몇 알의  쌀을 털기가 귀찮아서 입에다 털어 넣었다. 물기 있는 쌀을 오독오독 씹을 때 입안에 남겨진 밋밋하면서도 고소한 맛에 이끌려서 그다음부터는 쌀 씻을 때마다

생쌀을 먹었다. 나의  입덧 시 먹은 괴랄한

생쌀이여.


첫아이 때는 커피 한 방울도 안 마셨다.

커피 마니아라서 학생 때도 집에서 맥스웰 인스턴트커피와 가루크림인 카네이션 브랜드의 커피 메이트를  구비해 놓고 먹었다.

커피가 태아에 나쁘다고 해서 절대로 안 먹고 우유만 먹고 좋은 생각 하며 나름 활자 중독자라서 늘 책을 접하면서 부모, 형제, 친구들과 떨어진 울산의 유배생활을 그렇게 조신하게 보냈다.

첫 아이를 낳고 나의 첫마디는 '손가락, 발가락 다 있어요?'


둘째 때는 해이해져서 커피도 마구 마시고 가고 싶은데 다 가고 겁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방종한 임신기를 보냈다.

 첫애는 24시간 진통, 둘째는 서너 시간 진통 후에 낳았는데( 속으로 갈수록 쉽네라고 까불면서) 헉, 아기 얼굴 오른쪽 뺨에 큰 나무 잎사귀 모양의 붉은 점이 뺨의 을 차지.

금방 떠 오르는 것이 커피, 커피, 커피였다.

그때야말로 낳아달라고도 안 한 아기에게 미안을 넘어서 죄송한 엄마가 되었다.

의사들과 어른들을 붙잡고 물어보았더니 크면 다 흐려진다고. 절대 믿을 수 없는 소리라고 의심을 하면서도 벌차고 장난이 심한 두 아들 육아의 미친 세월이 지나감과 동시에 작은 애의 점도 흐려져갔다.


 잘한 태교, 못한 태교도 있지만 어쨌든 임신을 하면 태교에 신경을 쓴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람을 배태했기 때문이다.

생명의 귀함은 알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노인이 되면 호르몬도 떨어지고 죽음 즉, 소멸로 가기 때문에 무기력해지고 삶에 대한

애착이 약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강해지기도 한다.

그와 더불어 활동력이 줄어드니 스크린 타임만 점점 늘어나는데....

드라마나 넷플릭스 영화나 어쩌면 하나같이 폭력에다 복수극인지, 사이코패스를 하도 보니 나에게도 저런면이 있네 하면서 화들짝.

교도소 탈출부터 도박 사기, 범죄 수법을 너무나도 친절하게 알려주는 영화와 드라마를

매일 7~8 시간  시청하다 보면?

평범한 사람도 없던, 아니 잠자고 있던 시집,친정 식구들과의 불화 내지는 불평등 뿐만 아니라 배신한 지인들에 대해 억눌러 놨던 분노가 폭발할 것 같다.

또 먹방은 어떤가?

식욕이 떨어진 환자들에겐 대리 만족이요,

식성 좋은 사람들에겐 더 미식을 찾는 여정이란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소화가 안 돼서 먹지도 못하면서도 식탐을 내서 먹고 나서 트림에 꺽꺽거리는 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나중엔 안쓰럽게 느껴지게 한다나, 참.


생명과 관계된 단어는 참으로 경외스럽고 엄숙하다. 그래서 탄생과 사멸도 같은 선상에서 존엄하기만 하다.

비록 새 생명을 잉태하진 않았지만

지금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과정 속의 거의 끝자락에 있다 해도

좀 더 품위 있게 의연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태교 할 때처럼 아름다운 말과 생각을 하면서 어른이 되어서 겪은 경험과 인내로 좀 더 완숙한 인격을 장착하고서.


매일 인간사의 작은 단면인 복수극이나 보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좀,

우리가 이 땅에  복수하려고 태어난 것은 아닌지 않나?


나이 들면 행동은 굼떠지고 느려지는데

반대로 말은  짜증 나고 비난하는 쪼의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빨리 나오는지

참 언밸런스하네.....

 할머니들이 꽃 사진 찍는 것은 국룰

피는 꽃과 지는 꽃도 자연의 이치





 

작가의 이전글 이빨의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