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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 수집가 Jan 29. 2021

쓰레기 버리는 날

신입 제로웨이스터의 일기장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우리 집은 쓰레기가 많이 나왔다. 이 작은 집에 겨우 두 명 사는데 배출되는 쓰레기 양만 보면 4인 가족 저리 가라다. 샛별 배송과 로켓 배송을 사랑했고,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지라 식재료에서 나오는 포장 쓰레기 또한 만만치 않았다. 집마다 흔하게 있는 비닐 / 종이 /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통' 은 비우기가 무섭게 차오르기 바빴다. 



그렇게 일주일이면 꽉 차서 뚜껑도 안 닫히던 재활용 쓰레기통이 이제는 제법 느리게 채워져 간다. 일회용 비닐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만 제외하면 거의 발생되지 않고 있고. 극적인 변화는 없지만, 그래도 내 속도에 맞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요즘은 쓰레기도 정성스럽게 버리고 있다. 눈길도 안 줬던 분리배출 표시를 확인하게 되었고, 잘 떨어지지도 않는 라벨 스티커를 굳이 물에 불려가며 떼어내고 있다. 소스 통 뚜껑은 아주 힘차게 잡아당기면 빠진다는 것도 새롭게 알았고, 우유팩은 동사무소에 가져가면 종량제 봉투나 휴지로 바꿔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음료 병에 붙은 종이 라벨 스티커를 살면서 처음 떼 봤다. 어지간히 안 떨어진다 진짜. 반나절 물에 불려놓고 수세미로 벅벅 밀어서 겨우 벗겨냈다. 이게 뭐라고, 깔끔해진 병이 뿌듯해서 기념으로 사진을 남겼는데, 사진을 보니 또 뿌듯해서 이번 주 분리 배출했던 쓰레기들을 기록해놓기로 했다.





내 최에 유제품이다. 뚜껑 부분이 플라스틱이어서 구매를 망설였는데 하필 세일 중이어서... 으 - 이래서 마트를 가면 안 된다 진짜. 결국 또 미각이 승리해버렸다. 좋아하는 맛과 세일 앞에서는 제로 웨이스트보다 혀의 욕망이, 주부의 속사정이 먼저 앞서고 만다.



그러니 잘 버리기라도 해야지. 우유팩과 혼동해서 절대 '종이' 로 홀라당 버리면 안 된다. 몸통은 종이의 피가 흐르고 있을 지라도, 머리에는 고약한 플라스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칼이나 가위를 이용해 입구의 플라스틱 부분은 잘라내고, 종이팩은 씻어서 말렸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종이팩의 경우 모아서 동사무소에 가져가면 휴지로 교환할 수 있다. 



뚜껑과 뚜껑 밑에 달린 링도 분리해서 잘라냈다. 링을 자르지 않고 그냥 버리면, 호기심 많은 새들의 머리가 끼는 사고가 발생한다고 한다. 부리와 머리가 끼어버린 아기 새의 사진을 본 후로, 잊지 않고 꼭꼭 잘라주고 있다.



너는 내가 지킨다





"정말이지 플라스틱처럼 판타스틱한 재료가 어디 있어요. 다만 모든 곳에 존재하니 문제죠."

- 케냐의 비닐봉지 금지법을 이끌어낸 활동가 제임스 -



몇 년 전 남편과 < 플라스틱 판타스틱 > 이라는 전시회를 관람한 적이 있다. 전시회 속 작품들은 전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플라스틱이 표현해낼 수 있는 온갖 색감과 가벼운 무게, 형태를 보며 '와 진짜 플라스틱은 판타스틱하다' 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때도 지금도 '플라스틱은 판타스틱하다' 라는 말에 100% 동의한다. 다만 그 '판타스틱' 의 이유가 달라졌을 뿐.



생각보다 잘 떼져서 놀라웠던 이 스티커조차, 분리배출 표시를 보니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라벨이었다. 진짜 플라스틱은 판타스틱이다.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 문득, 쓰지도 않고 고이고이 모셔두기만 할 거면서 예쁘다고 사들였던 스티커들이 스쳐갔다. 지금도 서랍 안에 고이고이 모셔져 있다. 저렴하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플라스틱은 어딜 가든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그러는 사이 지구는 자꾸만 소외된 것 같아 더욱 미안한 마음이다.



그동안 절대 빠질 리 없다고 생각해왔던 소스 통의 뚜껑조차 분리배출의 대상이었다. 엄청난 힘으로 빠악 잡아당기면 쑥 하고 빠진다. 통과 뚜껑은 같은 플라스틱으로 보이지만, 서로 다른 플라스틱이 미묘하게 섞여있어 따로 배출해야 한다. 참 복잡한 플라스틱의 세계다. 





역시 참기름보다는 들기름이 맛있다. 들기름만 먹다가 최근 참기름을 얻어먹었는데, 역시 향이나 풍미가 들기름만 못했다. 그 맛이 좋아서 요리마다 들기름을 과소비하게 된다.



풍미 좋은 들기름도 버릴 때에는 품격을 갖춰줘야 한다. 재질이 다른 뚜껑과 병을 분리하고, 병 속에 남은 기름을 깨끗하게 세척해야 하는데, 기름이다 보니 깨끗한 세척이 다소 어렵다. 나의 경우에는 집에 있는 재료에 따라 세척 방법이 달라지는데



1. 커피가루

카페에서도 구할 수 있고, 집에 커피머신이 있다면 커피 내리고 남은 가루로 해도 좋다. 기름병 안에 커피가루를 잔뜩 넣고, 병 안에 가루가 골고루 묻을 수 있도록 잘 흔들어준다. 그런 다음, 젓가락으로 안 쓰는 천 조각이나 키친타월을 넣어 내부를 닦아낸다. 마지막으로 따뜻한 물을 이용해 한번 더 내부를 헹궈내면 끝!



2. 계란 껍질과 베이킹소다

병 안에 잘게 부순 계란 껍질과 베이킹 소다, 따뜻한 물을 넣어 잘 흔들어준다. 간단하기도 간단하고 제일 뽀득하게 세척되는 방법이라, 주로 이렇게 세척해서 배출하고 있다.





쓰레기를 버리다가 우연찮게 살림살이도 얻었다. 매번 저 유리그릇에 각종 양념장을 만드는데, 만들고 나면 늘 애매하게 남아서 버리지도 못하고, 결국 랩을 씌워 보관하곤 했다. 얼마 전 다 먹은 요거트 통을 씻다가 '어? 이거 사이즈가 비슷한데?' 싶어서 맞춰보니, 사이즈가 찰떡이다. 이젠 비닐 랩도 안녕이다 -



2020. 5, 12. 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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