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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 수집가 Feb 05. 2021

나의 제로웨이스트 장보기 아이템

신입 제로 웨이 스터의 일기장




쓰레기 없는 삶을 위해 제일 먼저 바꿨던 건 '장 보는 방식' 이었다. 플라스틱과 비닐 없이, 포장재 없이 구매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습관을 제대로 들이고 나면 제로 웨이스트가 훨씬 쉬워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쓰는 제로 웨이스트 기록에서 유독 '장보기' 에 관련된 글이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다. 가장 많이 씨름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환경문제에 있어서 '과대포장' '불필요한 포장' 만큼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고군분투했던 나의 장보기 경험담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쓰레기 없는 장보기' 에 대한 흥미가 생기길 기대하는 마음도 있다. 





이전에도 장바구니는 들고 다녔었지만 이것만으로는 장 보기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막을 순 없었다. 알다시피 대형마트에서는 포장되지 않은 식자재를 구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 같았고, 운 좋게 포장되지 않은 식자재를 발견해서 계산대에 가져가면 "흙 떨어지니까 다음번엔 비닐에 담아오세요" 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그래서 챙기기 시작한 게 '프로듀스 백' 이었고, 대형마트보단 동네 식자재 마트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식자재 마트에서는 대부분의 채소가 포장되지 않은 채 진열되어 있어서 포장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가져간 프로듀스 백에 채소를 담아 무게를 측정하려 하면 "비닐에 담아오셔야죠!" 라며 불쾌한 표현을 들어야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현재는 대부분의 장을 전통시장에서 보는 중이다. 처음엔 뭐가 필요할지 몰라 장바구니 안에 프로듀스 백이며 밀폐용기까지 불필요하게 많이 챙겨갔는데, 정작 장바구니 안에 구입한 식재료를 담을 공간이 없어 난감한 경우도 왕왕 있었다. 쓰레기 없이 장보기 4개월 차인 지금은, 나름 나만의 방식도 생겼고 한결 수월해진 느낌이다.





장 보러 갈 때 가져가는 아이템들은 대충 이렇다. 플라스틱 포장 없이, 일회용 비닐 없이 물건을 산다는 건 꽤나 힘들다. 채소 과일을 담아올 프로듀스 백, 해산물이나 육류를 담아올 밀폐용기, 내 하루 에너지를 책임져줄 커피를 담아올 텀블러까지 - 일회용 비닐과 테이크아웃 용기를 대체할 무언가를 꼭 챙겨가야 한다. 



가짓수야 적어 보이지만 저걸 다 가져갔다간 장바구니가 터지고 말 거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게 '장 보기 목록' 이다. 뭐가 필요한지 정확하게 체크해서 용도에 맞게, 필요한 수량만큼만 챙겨간다.





01_밀폐용기



예전의 나는 스테인리스 제품에 별 관심이 없었다. 플라스틱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무지했는데, 플라스틱에서 발생하는 환경호르몬이 내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오죽했을까 - 반찬통이며 보관 용기까지 신혼살림을 전부 플라스틱으로 구매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들고 다녔었다. 가볍고 밀폐도 잘 되니 불편함은 없었다. 요즘도 필요에 따라 종종 챙겨가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다만, '뜨거운 식품' 을 테이크아웃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예를 들어 나의 최애 음식 떡볶이를 포장해온다거나, 갓 만든 뜨끈뜨끈한 음식을 담을 때에는 플라스틱에서 나올 환경호르몬이 걱정되었다. BPA FREE 라고 표시되어 있긴 했지만 어쨌든 플라스틱이고, 주의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두부나 해산물 담아올 때는 가벼워서 좋다.



02_스테인리스 용기



그래서 구입하게 된 스테인리스 밀폐용기다. 내가 사용하는 제품은 뚜껑까지 스테인리스 재질로 되어있다. 말 그대로 '올 스테인리스' 다. '으 무거워' 정도는 아니지만 플라스틱만큼 가볍진 않다. 묵직하다. 그래도 환경호르몬 안 나오는 게 어딘가? 심지어 관리만 잘해주면 플라스틱 밀폐용기보다 더 오래, 몇십 년은 거뜬히 사용할 수 있다.





스테인리스 용기에는 대체로 뜨거운 음식이나 신선한 해산물, 프로듀스 백에 넣었을 때 지저분해질 수 있는 식재료를 담아온다. 견과류나 보리차는 프로듀스 백에 담을 경우 자잘한 껍질이 들러붙어 귀찮은 뒤처리가 필요하다.



뜨거운 음식을 담았을 땐 용기 자체가 굉장히 뜨거워지기 때문에 손수건을 필히 챙겨간다. 얼마 전에 분식집 아주머니가 "엄청 뜨거울 텐데 가져갈 수 있겠어요?" 하시길래 "괜찮아요~" 하며 덥석 잡았다가 나도 모르게 "아 뜨거!!!!" 를 외치고 웃음바다가 된 적이 있다. 진심 뜨거웠다. 그 후로는 뜨거운 온도를 묵묵히 감싸줄 손수건을 꼭 챙긴다.



스테인리스 제품을 구입할 시, 스테인리스에 크롬 18퍼센트와 니켈 8~10퍼센트를 섞은 것으로 가장 안전한 배합비인 304 재질을 선택한다. STS 304 / 18-10 / 18-8 / 27종이라는 표시는 모두 304 재질을 뜻한다. 그리고 꼭! 연마제를 제거한 후 사용한다. 



03_여러 가지 프로듀스 백



나는 프로듀스 백을 전부 만들어 사용 중이다.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지만, 나는 워낙 일을 사서 하는 편이기도 하고, 한때 홈패션과 바느질이 취미였던지라 천이 어마어마하게 많았기에 직접 만들었다. 당시에는 몇 개가 필요할지, 사이즈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 몰라 엄청 많이 만들었던 것 같다. 집에 있는 프로듀스 백만 10개는 족히 넘는다. 몇 달 사용해본 결과 쓰는 것만 쓰지, 저거 다 안 쓴다.





알록달록 예쁜 천으로 만든 프로듀스 백들은 애석하게도 손이 잘 안 간다. 재질 특성상 삶아 빨기 어려울뿐더러, 마트에서 계산할 때 화려한 무늬에 가려져 바코드 찾기가 어려웠다.



현재 제일 많이 사용하고 있는 프로듀스 백은 이케아 키친 크로스로 만든 것들이다. 몇 년 사용하니 얼룩이 많이 생겨서 버리려고 빼뒀던 키친 크로스로 만든 건데, 반으로 한번 접어 만든 큰 사이즈와, 반으로 잘라 두 장을 만든 뒤 또 반으로 접어 만든 작은 사이즈. 이렇게 두 가지다.



처음 만들 땐 이렇게 큰 사이즈가 필요할까 싶어 큰 사이즈는 하나밖에 안 만들었는데, 의외로 큰 걸 제일 많이 사용 중이다. 무엇보다 팔팔 끓는 물에 삶아도 되니 마음 놓고 사용한다.





빨래망은 마트에서 개수로 계산할 때 사용하면 편하다. 나의 경우 보유하고 있는 프로듀스 백은 많은데, 속이 보이는 투명한 프로듀스 백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과 개당 990원 / 레몬 개당 1000원처럼 개당 가격으로 파는 식품을 살 때마다, 계산대에서 일일이 펼쳐 보여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네트망을 사야 하나 싶었지만 새로운 소비보다는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을 찾아보자는 마음에 사용했던 게 빨래망이다. 속이 훤히 보이니까 계산하면서 일일이 열어보지 않아도 되니 유용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아무래도 빨래망이다 보니 부끄러움은 내 몫이다.





그러다 최근 야채망이 생겨 만들게 된, 빨래망을 대신해 줄 나의 무기가 생겼다. 매실망과 옥수수망으로 만들었는데 가는 곳마다 다들 예쁘다고 해주셔서 괜히 어깨가 으쓱으쓱 해진다. 이왕이면 예쁜 아이템을 사용하는 게 제로 웨이스트 실천에도 재미를 붙여준다.



04_텀블러



장 보고 오는 날은 종종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온다. 밥 대신 커피를, 치킨보다 커피를 더 좋아하는 나에게 주는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주는 선물이다. 그냥 들고 가면 장바구니 안에서 더러워지기 때문에 파우치에 담아 간다. 담아 갔던 파우치는 커피 홀더를 대신해 시린 손을 보호해 준다. 집으로 돌아와 마실 때에도 저렇게 두면 테이블에 물자국 안 생겨서 좋다.





나에게는 3개의 텀블러가 있다. 2개는 지인에게 선물 받은 거고 이건 내가 직접 구매한, 완벽한 보냉을 선보이는 스테인리스 텀블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텀블러는 잘 안 들고 다닌다. 보냉이 완벽해서 얼죽아인 나에게 찰떡인 텀블러인데 문제는 입구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카페마다 사용하는 얼음의 크기가 다르다 보니, 얼음이 들어가지 않아 난감했던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한 카페에서는 얼음이 들어가지 않는다며 나의 의사를 묻지 않고, 테이크아웃 컵에 얼음을 따로 주신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 텀블러를 들고 가는 날에는 "혹시 여기 얼음이 들어갈까요?" 하고 꼭 물어봐야 한다. 보냉은 완벽하지만 나의 커피 스타일에는 현명하지 못한 소비였다.





여러 번의 불편함을 겪으며, 새로 사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환경을 위해 구입하는 텀블러도 1000번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환경을 망칠 수 있다는 기사를 접했던 터라 많이 망설여졌었다. 생산, 세척 단계에서 사용되는 자원이 환경부담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그래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라도 한동안 얼음이 작은 카페를 기억해둬 가며 사용했었다. 그러다 불현듯 친정에 있는 내 텀블러들이 번쩍! 하고 생각이 난 거다. 마침 사이즈도 큰 거, 작은 거여서 돌아가며 잘 사용 중이다. 요즘은 대용량 커피 전문점이 많아져서 왼쪽 텀블러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텀블러를 구입할 계획이라면 평소 커피 스타일에 맞는 ( 얼음 사용이 많다던가, 대용량을 마신다던가 ) 제품으로 신중하게, 1000번 이상 사용한다는 마음으로 구입하기.



05_브레드 백



나름 야심작이었는데 사용하기 어려운 브레드 백이다. 우리 집 주변에서는 포장하지 않은 빵이란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마르쉐 장터에서 겨우 발견해 처음 사용했었다. 외국 빵집처럼 그냥 알맹이만 진열해놓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일단 내가 장 볼 때 사용하는 아이템들은 이 정도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많았고 마트에서 프로듀스 백을 내밀었다가 불쾌한 소리를 듣기도 했었다. 바쁜데 괜히 나 때문에 번거로운 건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들어 혼란스럽기도 했다.



요즘도 밀폐용기나 프로듀스 백을 내밀면 당황스런 눈빛으로 이상하게 바라보는 상인분들이 많다. 예전엔 그런 눈빛 하나에도 상처 받고 위축됐었는데 요즘엔 아무렇지 않게 "제가 비닐 사용을 안 하고 있어서요" 라고 말한다. 그럼 신기하게도 상인분들의 눈빛이 달라지며 응원의 말을 하신다. 오히려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분도 계시고 아주 가끔 덤을 얹어 주시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즐겁게 '일회용 포장재 없는 장보기' 에 도전해보자는 말을 조심스레 건네 본다.



2020. 7. 11. 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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