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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 수집가 Feb 02. 2021

전단지는 거절합니다

신입 제로웨이스터의 일기장






만약 우리 집이 아파트였다면 광고 홍보물, 그러니까 '전단지' 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웠을까?



관리인도 경비 아저씨도 안 계시는, 내가 사는 오래된 빌라는 벽마다 전단지 천지다. 외부인 출입이 자유롭다 보니 유독 더 심한 것 같다. 더군다나 우리 집은 1층이어서 전단지의 좋은 타깃이 되곤 한다. 하루는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문 앞에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공인중개사, 부동산, 인터넷 가입, 에어컨 설치까지 종류도 천차만별이었다. 솔직히 저렇게 붙여놓으면 "와 - 이런 것도 있구나?" 하면서 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있다면 몇이나 될까? 신경질적으로 팍팍 떼서 구겨버리거나 쭉쭉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나? 아 물론 내가 괴팍해서 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는 혼자 집에 있는데 갑자기 현관문 밖에서 비밀번호 삐빅거리는 소리가 났다. 남편 퇴근시간은 한참이나 멀었는데 누구지? 순간 진심으로 겁이 났다. 찍소리도 못 내며 인터폰 화면으로 바깥 상황을 살펴보니, 어떤 아저씨가 문고리에 세일 전단지를 끼우면서 난 소리였다. 전단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더 깊어지게 된 계기였다.



외관상 지저분해 보이기도, 무언의 두려움으로도 다가왔던 전단지는 알고 보면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다. 전단지의 '지' 는 한자로도 '紙:종이 지' 자를 사용하며 겉보기에도 당연히 '종이' 이지만, 종이로 버려서는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코팅된 종이' 가 그 경우인데, 문제는 대부분의 전단지는 코팅되어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단지 속 알록달록한 잉크들을 제거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종이라고 다 같은 종이로 버려지는 게 아니며, 생각보다 재활용품인 '척' 하는 쓰레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인스타그램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았다. 우편함에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가정입니다. 홍보물을 넣지 말아 주세요" 라고 붙였더니 실제로 전단지가 줄었다는 거다. 우리 집에 당장 필요한 조치였다. 그래서 나도 당장 이면지에 적어서 쾅쾅 붙여놨다. 현관문 옆에 하나, 우편함에 하나.



뭔가 실험을 시작한 기분이다. 메모를 본 남편은 "이렇게 한다고 효과가 있겠어? 붙일 사람은 다 붙일걸" 이라며 미적지근한 반응이다. 작은 메모 한 장에 불과하지만, 이 작은 메모가 아깝게 낭비되는 종이들을 막아주길 바래본다. 그래도 붙인다면 그때는 주황색 종이에 엄청 크게 써 붙여야지!



2020. 7. 19. Sun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다. 과연 우리 집은 전단지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옆집
우리 집



같은 날 찍은 옆집과 우리 집의 모습이다. 처음엔 '3장 붙을 거 2장만 붙어도 나름 선방한 거다!' 라는 생각으로 메모를 붙였었다. 전단지 딱 한 장만이라도 아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생각이었는데, 예상외로 작은 메모는 엄청난 효과를 불러왔다. 감사하게도 많은 업체에서 우리의 뜻에 동참해 주셨다.



아쉽게도, 여전히 문고리에 붙이고 가시는 분들이 있다. 아무래도 문고리에 붙이다 보니 벽에 붙은 메모를 보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문고리에도 붙여놓으려 한다. 메모의 힘을 또 한 번 믿어봐야지 -






독일의 경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붙여지는 전단지를 쉽게 거절할 수 있다고 한다. 그저 우편함에 'KEINE WERBUNG' 이라고만 표시해 놓으면 된다. 전단지를 받지 않겠다는 단호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표현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저 문구를 무시하고 전단지를 붙이거나 발송할 경우, 법의 조치를 받기 때문에 철저하게 지켜진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전단지 강국이자 왕국이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2020. 10. 12. Mon






쓰레기 제로는 더 많이 재활용하자는 운동이 아니다. 불필요한 쓰레기에 대해 조치를 취하고 애초에 우리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자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광고 우편물을 우편함에서 꺼내 곧장 재활용함에 갖다 넣는다. 하지만 이 간단한 행동이 집약되어 매년 1000억 통의 광고 우편물의 발송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광고 우편물은 삼림 파괴에 기여하며 귀중한 에너지 자원을 소모한다.
-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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