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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불짜리 빗자루를 살 용기

by 미스블루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엘에이나 뉴욕만큼 물가가 비싼 곳은 없는 것 같다.

고물가 앞에 화들짝 놀라 지갑은 조개처럼 입을 닫고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주말이 되어 맛있는 것도 먹고 휘적휘적 돌아다니다 오려고 나갔다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돈을 쓰고 올 때가 많다.

물가 앞에 위축된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너 꼰대니?'하고 괜히 심술을 부린다.

일 년 전쯤 그날도 자주 있지 않은 휘적거리며 돌아다니던 날이었을 것이다.

엘에이에 있는 꼭 서울에 삼청동 같은 예쁜 샵들이 즐비한 거리가 있다.

그중에 한 가게에 들렀었는데 어느 물건 앞에 넉을 잃고 서 있는 남편을 보았다.

그 물건은 빗자루였다.

정확히 말해 빗자루와 쓰레받기 세트였다.

가게 측에서 손님이 빗자루질을 해볼 수 있도록 샘플을 풀어 놔두었는데 남편이 그 빗자루로 가게 바닥을 한번 쓸어보더니 더욱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뭐랄까 외제차 딜러샵에서 포르셰를 한번 운전해 본 그런 사람의 얼굴이랄까...

'지~인짜 잘 쓸어진다~~~'남편이 말한다.

'얼만데..? 빗자루 지가 하면 얼마나 하겠어하는 얼굴로 내가 묻는다.

'100불..'남편이 말한다

'100불????' 내가 말했다.

놀라 자빠질 금액이었다. 전기 빗자루도 아닌 내 힘으로 쓸어내는 손 빗자루의 가격이 100불 이라니...

100불이면 한국 돈으로 13-14만 원 정도 될 텐데 꼭 100만 원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너무 했다.. 가자!!'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가게를 나왔다.

길을 걸어가며 남편이 말한다.

'저 빗자루만 있으면 고양이들 모레를 아주 속 시원하게 쓸어낼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세워놔도 모양이 보기에도 좋을 테고 말이야..

남편은 물건의 편의성도 중요하지만 물건의 아름다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또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고양이의 화장실 모래 치우기가 참 힘들다는 것을..

우리 집은 고양이들의 모래통을 집안으로 들어서는 통로인 세탁실에 두었기 때문에 집안을 들락거릴 때 밟히는 모래 때문에 맨날 이리저리 발을 털며 다닌다.

청소기로 자주 하지만 모래가 고와서 코드까지 꽂아서사용해야 하는 강력한 청소기를 꺼내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모래를 치워내기는 힘들다.

빗자루를 사용하면 더 싹싹 쓸어지므로 손 빗자루를 세탁실에 두었지만 쭈그리고 앉아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또 잘 손이 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100불짜리 이 빗자루는 손잡이가 길어서 쭈그리고 앉아서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하냐고 남편은 말하지만 나는 그때 100불을 주고 빗자루를 살 마음의용기가 없었다.

100불짜리 빗자루를 사려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 후로 일 년의 시간이 지났다.

남편이 사고 싶다는 물건을 못 사게 했으니 뭔가 마음이 좋지 않아서 비슷하고 가성비가 좋은 빗자루를 찾아 모든 인터넷 스토어를 다 뒤졌지만 '그 100불짜리 빗자루세트'와 비슷한 물건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오늘, 또 그런 날이었다.

늦여름에 마지막으로 휘적휘적 돌아다니고 싶은 날.

어디를 갈까 하다가 남편과 그 삼청동 비슷한 거리에 가서 놀기로 했다.

우리는 오늘도 그 가게를 방문했고, 얄밉게도 '그 100불짜리 빗자루 세트'는 일 년 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남편은 또다시 그 자리에 서서 황홀한 눈으로 빗자루 세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사자!' 내가 말했다.

'진짜?' 남편이 놀라 반문한다.

그래 이 빗자루 하나 산다고 우리 집 가정경제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같이 사는 이 남자가 그렇게 바라는데 이게 뭐라고 그렇게 못 사게 하나.. 그런 마음이었다.

가게 점원은 창고에서 새 빗자루를 내어 왔고 우리는 무슨 값비싼 도자기를 사는 것처럼 빗자루를 들고 이리저리 꼼꼼하게 살폈다.

혹시 빗자루의 털이 한 오라기라도 빠진 것은 아닌지 보고 또 보고 부들부들 손을 떨며 값을 치렀다.

빗자루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길을 걷는 남편의 발걸음이 그렇게 신나 보일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 빗자루를 풀어 벽에 세워놓으니 괜히 멋져 보이는 게 무슨 예술작품을 사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편에게 빗자루가 참 멋지다고 지나가며 한 마디 하니 남편이 정말 환하게 웃는다.

같이 사는 사람이 좋으니 나도 좋다.

이 빗자루는 대를 물려 사용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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