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은 가볍게! 엉덩이는 무겁게!
계속해서 영화 리뷰를 쓰고 있다. 리뷰를 위해 개설한 브런치였는데 근 6개월을 외면하고 살다 최근 두 개의 리뷰를 업데이트했다. 아무래도 데일리한 글보다 시간도, 품도 많이 드는 작업인지라 심적인 부담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지만, 게으름이 가장 큰 이유라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세상엔 좋은 영화들이 너무너무 많기 때문에 어떤 영화를 택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거의 하지 않는다. 다운 받아놓은 영화 목록만 훑어보아도 눈에 밟히는 것들 천지인 데다 언제나 신작 개봉 소식이 들려오고 있으므로 마르지 않는 샘을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써야 하는 순간이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쇼트 분석, 의미 해석, 어휘력과 문장력, 인문/ 사회학적 고찰 등등 여러 가지가 부족하다고 느낌에도 뭐라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자책하는 심경에 무게를 더한다.
특히나 요즘은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걸 써야겠다고 정해놓았는데,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첫 문장에 막혀 며칠째 고전 중이다. 언어능력을 상실한 사람처럼 멍하니 시간만 흘려보낸다. 정말 괴롭다.
"행동하는 중에 알게 된다."
"꾸역꾸역 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니스 해변가 카페에서 비키니를 입고 앉아/ 융프라우 산악열차 안에서 도톰한 털모자를 쓴 채로/ 구엘공원의 벤치에 기대어 늘 무언가 쓰고 있는 스스로를 꿈꿨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망상이었음에도 쓰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현실의 글쓰기는 무너짐의 연속이었다. 매번 무능한 스스로를 느껴야 했고, 어떤 것을 비료 삼아 어디로 이동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늘 막다른 길에 다다랐고, 되돌아 나오느라 또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 사이 30대가 되었고, 사회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커져갔다. 불안은 지속을 독려하는 원료가 되기도 하지만, 침체를 견지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나의 경우, 후자의 영향이 매우 커서 회복하는데 또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그럼에도 나의 일방적인 애정공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어서 오늘도 꾸역꾸역 앉아있는 고역을 반복하고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공들여하는 게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게 바로 사랑이지!
실천의 자리는 언제나 현재에 있고, 초조를 감내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것이 미완일지라도 매일 하는 씀이라는 행위가 완성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