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화의 오류
좋은 영화를 보았을 때 세계에 대한 믿음이 더해진 기쁨을 느낀다. 마치 석가처럼, 스스로 완전히 내려놓고, 비워내야만 그 공간에, 세계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는다. 그래야만 세계에 대한 믿음이 더해진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쁨조차 자기의 것이 아니다. 그 감정은 아주 개인적인, 또는 이기적인 이타심이다.
서평: 박진권, 제호: 세계에 대한 믿음, 저자: 김홍중, 출판: 문학과지성사.
인간은 사랑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해서 아직도 분분하다. 누군가는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사랑이고, 그다음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정 또는 의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정과 의리도 결국 사랑의 테두리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 단계라는 게 있듯, 사랑도 마찬가지다. 겉모습에 이끌려 육체를 탐하다가, 결국에는 내면까지 바라보는 것이다. 육체를 탐하는 욕구도,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도, 지키고 싶어 하는 욕망도,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것이라는 착각도,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희망도, 결국 혼자가 되는 절망도, 죽음 이후의 만남을 기약하는 체념 섞인 사색도 모두 사랑이다. 이렇듯,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경험은 어쩌면 비표상적인 정동 경험의 가장 진한 예라고 볼 수 있다.
득 없는 고통을 피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과 유사하다. 인간은 고통을 경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고, 첫인상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성급한 감각이 발달한 것이다. 관계에서 오는 고통은, 더 지혜롭게 행동하면 면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가장 확실한 방법은 관계를 멀리하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관계의 고통은 아주 빠르게 사라지겠지만, 외로움의 덫에 걸릴 가능성은 올라간다.
더러운 외관에 불쾌한 언행을 듣고도 그 사람의 내면을 파악하려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화상 입은 사람이 평생 요리하지 않는 경우, 사고를 당한 사람이 그것과 비슷한 것에 가까이하지 않고, 공포감을 느끼는 것 모두 일반화의 오류다. 사실 이득 있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공부하고, 운동하는 것,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괜찮은 공간에서 적절한 행복을 만끽하는 것 모두 교육받아서 아는 게 아니다. 미리 살아본 것도 아니다. 그저 생존 본능일 뿐이다.
p.30 잠긴다는 것, 즉 침잠은 바다에서 태어나 진화해 온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소유하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감각이다. (중략) 우리의 핏속에는 바닷물이 고여있다. 우리는 피부에 감싸인 채 활동하는 물방울들이다. 식물은 푸른 가지를 뻗어가는 물방울들이며, 곤충은 변신하는 물방울들이다. 우리는 분화된 바닷물, 분열된 대양이다. 갈라져 나온 바다의 분신이다. 육지로 올라와서 잠깐 살아가고 있지만, 죽음을 맞이하면 다시 외피가 깨지고, 우리 안의 물방울들은 대지에 스며들 것이다. 증발하거나 결국 다시 바다로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