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머리말
개인의 생각을 말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이 설령 다수의 의견에 반하는 내용이더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옳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듯,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옳다고 믿습니다’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진리는 없다. 세상에 결점 없이 순결한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누군가를 믿고 따르는 것, 그의 선언을 경청하고 발자취를 따라 걷는 건 개인의 자유지 진리가 아니다. 즉, 개인이 걷는 그 길은, 정답도 오답도 없다. 오롯이 개인의 사상과 의견만 있을 뿐이다.
글 박진권, 제호 자유론, 저자 존 스튜어트 밀, 번역 김만권, 출판 책세상
양비론이 틀렸다는 사람은 극단주의자일 뿐이다. 중도를 주장하는 사람은 양시론도 펼칠 수 있다. 또한,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다. 중도를 혐오하는 것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작용한다. ‘우리 편’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극단주의자는 항상 ‘나라’를 걱정한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타인을 이해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 인간들이 올바른 나라를 생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념이 다른 다수의 국민을 완전하게 배척하고, 무시하는 태도의 사람이 순국열사인 척 유세를 떨 뿐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이들과 현대의 극단주의자들과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현재 외세의 침략을 받고 있나? 그들은 어디를 향해 울부짖는 것인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과의 외교가 단절되었고, 한 나라의 수장이 일본 불매를 외치는 바람에 일본과의 외교가 단절되었다. 중국을 비난하는 것은 우매한 행동이고, 일본을 비난하는 것은 애국심이라고 말한다. 일본은 무조건 적으로 옹호하면서, 중국인은 무차별적으로 혐오한다. 이것에 애국심이 어디 있나, 이 행태를 지식인이라고 말할 수 있나? 나는 부끄러워서 그저 책 속으로 숨었다. 창피함에 이렇게 글로나마 적어낼 뿐이다.
한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제강점기를 잊으셨나요?’ 절대, 잊을 리가. 기원전 109~108년 한 나라의 침공으로 한반도는 국가를 잃었고, 이후 삼국 시대까지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598~668년, 약 70년간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공이 이어진다. 993년, 1010년, 1018년에는 세 번의 거란 침략이 벌어진다. 그뿐만인가, 1231~1270년 약 39년간 몽골의 무자비한 침략을 6번이나 버텨내야 했다. 당신은 1592~1598년 일어난 임진왜란, 정유재란만 기억하고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이후 1627년(정묘호란) 후금이, 1636년(병자호란) 청나라가, 1866년(병인양요) 프랑스가, 1871년(신미양요) 미국도 조선을 침략한다. 이후 모두가 알다시피 1894~1905년 청일,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우리는 약 35년간 일제강점기를 겪는다. 나에게 질문했던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과 말투로 되물었다. ‘그래요, 전쟁이 많았던 것은 알겠지만 일제강점기가 가장 참혹했고, 길었죠. 더욱이 가장 최근이잖아요.’ 제정신은 아닌 듯 보였다. 광복 이후 5년 만에 우리는 참혹한 전쟁을 겪는다. 1950~1953년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적군으로 참전한 것은 다름 아닌 중국군이다. 이후 현대에 들어서 1999년, 2002년 연평도 해전, 2010년 천안함 피격, 2010년 연평도 포격까지, 적국의 도발은 현재 진행 중이다. 다행히도 그의 입을 닫는 데 부족함 없는 자료였다.
과거의 지도를 보라. 뭉치지 않은 한반도는 늘 침략당했고, 국권을 잃고 국격을 상실했다. 좌파와 우파, 전라도와 경상도, 남자와 여자는 우리의 주적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주적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북쪽의 독재자고, 중국과 일본은 경제적으로 함께 가야 할 이용 가치가 높은 못마땅한 나라일 뿐이다. 과거의 침략 사례로 반목하려면 우리는 아시아에 있는 모든 나라와 유럽의 강대국과 척져야 한다. 현대판 통상수교거부정책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말도 안 되는 궤변일 뿐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는 서로를 혐오해서는 안 된다.
38쪽,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려 마땅한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박탈하지 않는 한, 타인의 자유를 얻으려는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자유를 의미한다. (중략) 39쪽, 고대 국가들은, 국가가 모든 시민의 신체적, 정신적 훈육 전반에 깊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공적 권위를 통해 개인이 하는 사적인 행동 모두를 규제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근대 세계에서는 정치 공동체의 규모가 커졌고, 무엇보다 정신적 권위와 세속적 권위의 분리(인간의 양심을 지도하는 권한이 세속적 문제를 통제하는 손으로부터 분리)가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개인 생활의 세부적 사안에 법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도덕적 감정을 형성하는 데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종교는, 거의 항상 모든 인간 행위를 통제하려는 계층적 야망이나 청교도적 정신이 지배해 왔다. -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