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주인공 히라야마가 조카의 부탁을 거절하며, 다음을 기약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다. 지금 당장 바다에 가자는 조카를 만류하고, 다음으로 미루지만, 그다음의 명확한 날짜는 말하지 않는다.
히라야마는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반복되는 일상에 완벽하게 녹아들었고, 그곳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았다. 하지만,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고, 심해처럼 깊은 고독이 느껴진다. 유독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하고, 그런 날엔 반드시 지하상가 음식점에서 레몬사와를 마신다. 화창한 날엔 반드시 세탁소 앞 단골집에 방문해 또 레몬사와를 목구멍으로 넘긴다. 수집에 열정적인 히라야마는 자생 묘, 헌책, 오래된 카세트, 하늘을 배경으로 한 나무 사진처럼 표출하지 않는 자신만의 우정과 사랑을 간직한다. 그 누구보다 소유에 집착하지만, 그 누구도 소유하지 않는다. 오롯이 자신의 마음속에만 담아 둔다.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뜻을 남겨두지 않는다. 그나마 히라야마의 고독이 외부 요인 때문이 아닌 내부에서 기인한 자발적 외로움이며, 스스로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의 고독인 점을 미루어 보면, 일정 부분 행복이라고 할 수도 있다.
히라야마의 하루는 완벽하지 않다. 영화는 초반에 가장 이상적인 하루를 보여주고, 이후 여러 요인을 통해 가장 불쾌한 하루도 내비친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조카 덕분에 특별한 하루까지 그린 후 흑백의 꿈을 꾼다. 말이 거의 없고, 화도 내지 않으며 슬픔도 없을 것 같은 히라야마도 소중한 일상이 깨지면 분노를 표출한다. 그리운 가족을 보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사랑하는 조카에게는 무거운 입술을 들어 올린다. 그렇게 이상적인 삶이 무엇인지 다시금 떠오르자, 그의 채도 없는 꿈이 잦아진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전체적인 배경의 채도를 낮췄다. 보편적인 인간의 삶이 영화처럼 아련하거나, 과하게 도회적이지 않음을 표현한다. 히라야마라는 주인공은 완벽한 하루를 대변하는 장치가 아니다. 혼자 동떨어진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외로움을 인정한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조금도 알지 못하는 무지였음을, 연민에 빠지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이 연민 그 자체였음을 이해한다. 히라야마는 늘 흑백 꿈을 꾸고, 그 꿈과 같은 사진을 찍는다. 사진이 먼저인지, 꿈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색이 없어서 단순한 명암마저 찬란해 보인다.
추적추적 기분 나쁘게 내리는 비에 히라야마는 미소 짓는다. 세상의 모든 빛이 씻겨 나가고, 덕분에 자신도 씻기길 염원하는 듯하다. 과거를 잊고, 현재를 보내며, 미래를 기약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를 수집하는 히라야마는 오늘도 캔 커피를 뽑고 청소차에 올라타 오래된 카세트를 삽입한다.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속으로 크게, 아주 크게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