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선택

권성욱_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_열린책들

by 박진권

약자의 선택


글·사진 박진권

도서 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

저자 권성욱

출판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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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에게 묵념하지 않을 한국인은 없다.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돌을 던질 수 없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진 고문 끝에 동료의 거취에 대해 실토한 독립운동가는 어떠한가? 그들은 독립운동가들에게 버림받고,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가담의 정도에 따라 숙청당했다. 나와 같은 일반인은 그들에게조차 돌을 던질 수 없다. 생계형으로 일본에 붙은 순사는 또 어떠한가. 당시 민중에게 순사 제복을 입은 남성은 사신 그 자체였다. 그러나 하급 순사는 부모와 형제자매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조선인의 몇 없는 직업 중 하나였다. 그러나, 여러 매체에서는 당시 일본 순사를 간악무도한 일본의 앞잡이로 그린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동포를 팔고, 괴롭히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천인공노할 죄인일 뿐이다. 2,000년대 초반엔 되려 조직폭력배들을 독립군으로 둔갑시키고, 일제의 폭압으로부터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보호비를 강제로 받은 것을 미화하는 드라마가 흥행하기도 했다. 당시 교사들은 교권을 놓고 떠나거나, 퇴직을 하기보다는 일본어로라도 계속해서 수업 하기를 선택했다. 약자들은 나름의 저항을 굴종의 자세로 택한 것이다. 그것이 배신자처럼 보인다고 해도 말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도 처지가 다르지 않았다. 독일과 러시아의 침공에 끝까지 저항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자국민 안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동조한 국가도 있다. 대한민국도 이러한 역설에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도 침략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곳에 다녀온 사람에게 전쟁영웅이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나라에서는 훈장을 사사했지만, 당시 베트남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곳에서의 행적에 대해 당당하게 외치는 것은 무지한 인간의 발악에 가깝다.


선택지는 적지만, 약자에게도 선택할 권리는 주어진다. 그중에서도 분명 최선은 존재한다. 하지만, 최악의 수를 선택했다고 해서 그들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당장 개인의 하루도 최선과 최악의 선택을 반복하는데, 복잡한 세계정세를 완벽하게 읽고, 그에 따라 완전무결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지도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그것에 대해 편협하다거나 무지하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울어있는 사상을 부정하고, 중립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제1차, 제2차 세계 대전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글자로만 접한 현대인은 전쟁의 참상과 약소국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미래를 내다본 게 아니라면 우리는 결국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으로 인해 최악의 결과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최선의 결과를 얻을 방법은 오롯이 균형밖에 없다. 중국과 일본을 분별력 없이 혐오하기보다는 협력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닌 중립을 택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리적 위치상 정확하게 중립이 될 수 없다. 또한 명백하게 휴전 중인 국가이고, 주적은 중국도 일본도 아닌, 단연 북한이다. 그들은 더 이상 한민족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되겠지만 만약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진다면 북한의 총구는 대한민국의 청년에게 겨누어진다. 그렇게 젊은 넋이 사그라들면 나머지 총탄은 대한민국의 노약자에게 빗발칠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라는 초강대국에 비할 바는 아니기에 무엇보다 외교가 중요하다. 중국과 척지면 유사시에 북한과 중국이 손잡을 것이고, 일본과 척지면 북한이라는 복병을 뒤에 두고 초강대국을 상대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미국의 횡포에도 주둔지 철수를 시행할 수 없고, 일제의 만행을 알면서도 웃는 얼굴로 악수해야 하며, 삼국시대부터 여러 차례 수모를 줬던 중국과의 끈질긴 악연을 이어 나가는 이유다. 2026년 3월 20일 요즘같이 숭숭한 세계정세에 우리나라는 조금 더 냉정하게, 어쩌면 이기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서로를 향한 혐오의 칼날을 뒤로한 채 화마와 같은 분노를 잠시 멈추고, 한민족이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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