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에 회의적이고, 삶의 의미나 목적 그리고 가치를 낮게 판단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타인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들은 본뜻을 곡해하고,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거나, 무관심이라고 쉽게 단정한다. 그렇게 수동적 허무주의에 빠져 냉소적이며, 무기력한 상태를 현실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삶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부정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게 더 쉽고, 편하다. 모든 긍정의 말에 부정을 끼얹으면 논쟁에서 수월하게 이길 수 있다. 근심, 걱정, 불안, 우려, 분노, 질투, 의심 등 모든 부정을 완벽하게 반박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긍정뿐이지만, 그러한 긍정을 반박할 수 있는 것 또한 개인의 부정이다. 자신의 긍정이 단단하면 타인의 부정에 쉽게 물들기 어렵다. 반대로 부정이 깊숙이 박혔을 땐, 타인의 긍정마저 아니꼽게 바라보게 된다.
가족이 영면에 들어도, 남은 사람들은 살아간다. 아무리 작은 기업도 나 하나 빠진다고 망하진 않는다. 작은 모임, 단체, 어떤 구성원 속에서 개인은 조금 큰 먼지와 비슷하다. 후 불면 날아가 기억에서 금방 잊힌다.
달 표면에 발을 딛고 화성에 탐사선을 보냈지만, 정작 지구 면적의 약 70%나 차지하는 바다, 그중에서도 심해는 정복하지 못했다. 그뿐인가? 작디작은 뇌조차도 완벽하게 알아내지 못했으며, 고작 302개의 신경세포를 가진 예쁜꼬마선충조차도 인류에게는 여전히 연구 대상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살아간다. 나는 기꺼이 아침을 맞이한다. 우리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인다. 세계는 그렇게 돌아간다. 세상엔 미생물도, 해충도, 쓰레기를 헤집는 까마귀와 고양이도 필요한데, 당신이라고 쓸모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