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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우 Mar 03. 2021

굳세어라 송은이, <셀럽파이브>

송선배가 일군 무대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를 거치며, '여성 예능인'의 입지는 크게 줄었다. 방송가의 성차별이나, 여성 예능인들의 능력부족이라는 단편적인 이유보다는 몸을 쓰거나 망가지는 모습을 리얼하게 담아내는 것에서 웃음을 창출하곤 했던 리얼 버라이어티의 장르적인 수요가 남성 예능인들의 그것과 더 부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걸식스>나 <무한걸스>와 같은 여성 예능인들로 구성된 프로그램들의 성공을 본다면, 그조차 변명처럼 들리는 것이 사실이었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정형돈, 이수근 등의 걸출한 차세대 예능인들을 길러내는 동안, 그만큼 여성 예능인들, 특히 개그우먼들이 활약할 수 있는 방송의 폭은 줄어들고 있었다.


여성 예능인들의 줄어든 입지


이러한 위기는 개그우먼 송은이에게도 닥쳤다. 박미선과 더불어 개그우먼으로서 가장 활발한 활약을 하며 입지를 다져온 송은이에게조차 방송이 쉽사리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의 뛰어난 진행실력은 이따금씩 패널로 출연한 방송에서 흐름을 매끄럽게 하는 용도로 쓰였고, 걸출한 입담과 연기력을 비출 프로그램은 드물었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활동했음에도, 여전히 출중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설 무대가 없다는 현실을 마주한 그녀의 선택은 직접 무대를 세우는 일이었다. 자신을 위한, 자신처럼 능력은 있으나 기회가 없는 동료와 후배를 위한 방송을 만드는 기획자로의 변신이었다.


전설의 시작,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셀럽파이브>에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여성 예능인들의 현실과 맞서며 여전히 웃기고 싶은 개그우먼 송은이의 의지가 담겼다. 신봉선, 안영미, 김신영, 김영희. 공개 코미디에서 날고 기며 실력을 보여줬지만,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는 쉽게 보기 힘들었던 멤버들의 면면에서 그러한 점이 더욱 짙게 드러난다. <셀럽파이브>는 춤과 음악을 무기로 하는 '걸그룹'이었지만, 멤버들은 <셀럽파이브>를 발판삼아 출연한 각종 버라이어티에서 개그우먼으로서 자신들의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셀럽파이브


<셀럽파이브>는 웹예능 <판벌려>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는 <무한도전>이나 <남자의 자격> 등의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흔히 보았던 프로젝트 기획과 닮아있다. <셀럽파이브>는 TV예능이라는 제도권 밖에서 가장 그들과 닮은 형태로 성공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여성 예능인의 '쓰임'에 대한 불신을 보기좋게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여성 중심의 예능의 효용의 문제가 아닌, 그러한 것들을 시도하고 기획하려는 의지의 문제였음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언니들의 슬램덩크>의 성공과 더불어, <셀럽파이브>가 한바탕 휘저은 예능판은 '여성 버라이어티'와 '개그우먼'들의 버라이어티적 가능성을 입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언제고 든든한 송선배


송은이는 그녀가 활동한 시간과 능력에 비해, 늘 낮고 부족해보이는 자리와 무대에서도 몇 배의 몫을 해내며 웃음을 만들어내던 묵묵하고 씩씩한 개그우먼이었다. 그녀에게 그런 작은 무대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때, 자신만큼 뛰어난 후배들이 합당하지 못한 이유로 기회를 잡지 못해 스러질 위기에 처했을 때, 주저앉거나 기다리지 않고 직접 방송과 무대를 만드는 능동적인 기획자이기도 했다. 현실에 불만을 갖고 안주하지 않으려는 태도, 안타까운 후배를 향한 진심어린 마음, 그리고 시대과 사람을 읽을 줄 아는 기획력까지. 송은이는 뛰어난 개그우먼이자, 기획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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