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공개코미디는 KBS <개그콘서트>, SBS <웃찾사>에 비해 늘 아쉬웠다. <개그콘서트>는 말할 것도 없고, 후발주자였던 <웃찾사> 역시 신드롬에 가까울만큼 성공적인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으나, 정작 코미디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MBC는 공개 코미디 시대에 접어들며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전작 <코미디하우스>, <웃는데이> 등에서 다양한 형식의 비공개코미디를 선보이며 MBC코미디만의 색을 보여주는 듯 했으나, '공개 코미디'라는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개그야>가 출범하면서 방송 3사를 대표하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모두 탄생했다.
개그야의 인기 코너들. 최국의 별을쏘다(좌), 주연아(우)
이렇게 방송 3사 중 가장 늦게 공개 코미디에 뛰어들며, <개그콘서트>와 <웃찾사>의 색깔과는 다른 독창적인 MBC만의 코미디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개그야>에는 당시 특채로 들어왔던 김미려라는 걸출한 개그우먼이 있었다. 견고한 공채 시스템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며 '메이저'로 불리던 KBS, '컬투'와 '박승대 사단'의 신구조화가 적절히 이뤄졌던 SBS와는 달리, 급하게 프로그램을 런칭하는 과정에서 외부 특채를 수혈하며 공채 출신과 긍정적인 시너지를 기대해야 했던 MBC였다. 특채를 향한 높은 기대값, 김미려는 이를 몇 배로 부응하며 <개그야>의 전성기를 열었다.
<개그야>는 쉴새없이 말소리가 채워지고, 슬랩스틱이 난무하며 관객의 귀와 눈을 사로잡아야 하는 공개 코미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느림의 미학을 내세운다. 답답하리만큼 적은 말수와 늘어지는 말투로,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던지는 말과 행동으로 '빵' 터뜨리는 방식이 <사모님>의 주된 개그코드다. <사모님>의 느림과 멈춤은 관객들을 지루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숨죽이고 다음 '펀치'를 기다리게 만드는 데 유효했다. 대사와 행동이 비어있는 구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뒤바꿔, 관객들을 긴장시키고 기대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개그코드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개그의 '행간'을 여유있게 비워놓는 이 영리하고 참신한 전략이 관객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어갔다.
<사모님>이 보여준 '느림의 미학'이 돋보이는 또 한가지 이유는 이 코미디에 엿보이는 풍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모님>은 부잣집 사모님 특유의 고풍스럽고 우아한 외형에 우스꽝스럽고 때론 멍청해보이기 까지하는 언행을 대비시키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통해 상류층의 허례허식을 관객들과 함께 비웃는 풍자가 돋보이는 코미디다. <사모님>의 느린 호흡과 여유는 아이러니의 토대가 되는 극 중 '사모님'의 우아함을 돋보이게 만들어, 확실한 캐릭터성을 부여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불시에 목소리를 높이거나 슬랩스틱에 가까운 행동을 하게 된 사모님이,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우아함'을 지키기 위해 다시 조신한 모습으로 "김기사, 운전해"를 외치는 모습은 단연 이 코미디의 백미다.
능청스러운 연기로 <사모님>의 신드롬급 인기를 견인했던 김미려의 가치는 단연 돋보였지만, 김미려의 존재 외에도 <사모님>은 장점이 많은 코미디다. '느림'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참신했고, 그것을 효율적인 풍자의 도구로 썼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뛰어나다. 아이템, 연기, 분장 등 코미디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 상대적으로 무겁게 다뤄지지 않았던 코미디 연출의 가치가 특히 돋보이는 드문 코미디다. 몇 마디 대사도 없이, 대단한 분장과 소품도 없이, 말과 행동의 행간을 이용한 분위기 연출을 개그의 주 무기로 삼았다는 점은 특이하고 뛰어나다. 기록할만한 코미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