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와 캐릭터의 힘
형형색색의 등산복과 제각각의 손가락 하트, 그리고 촌스러운 폰트로 무장한 썸네일이 범상치 않다. 대화 내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통에 이어폰의 음량을 평소보다 두 키는 낮춰야 하지만, 저마다의 고집과 투정, 속이 좁은 마음과 행동으로 ‘생짜증’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일요일 밤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네 남자가 있다. 이름하여 <한사랑 산악회>
<한사랑 산악회>의 힘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디테일, 그것을 능청스럽게 보여주는 네 사람의 연기력에 있다. 말끝마다 ‘열정’을 강조하는 경상도 사나이 김영남 회장. 커다란 목소리와 욕, 불같은 성격으로 언제나 귀 밑을 박박 씻어내는 이택조 부회장. 유학파답게 영어를 섞어 쓰며 늘 침착하고 신사적인 배용길 회원. 허리가 좋지 않아 늘 산행에 뒤쳐지는 고등학교 물리교사 정광용 회원까지. 등산길에서, 술집에서, 혹은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에서 한 번쯤은 본 듯한 중년의 캐릭터들을 <한사랑 산악회>에서 발견할 수 있다. 등산복과 선글라스, 바가지와 두건과 같은 의상과 소품은 물론이거니와 산등성이를 보며 간첩 ‘김신조’ 일화를 늘어놓거나, 기껏 찍은 셀카에 얼굴만 둥둥 떠다닌다거나 하는 모습과 행동들은 ‘창작’이 아닌 지독한 ‘관찰’의 산물이다. 당장이라도 산에 오르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만났던 기억이 날 것만 같은 캐릭터들을 보고 있자면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한사랑 산악회>를 위해 이들이 관찰하고 고민했던 시간의 깊이가 느껴져 감탄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들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연기해, ‘마치 빙의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농담 섞인 댓글을 이끌어 내는 네 명의 코미디언들의 연기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개그맨’을 넘어, 이들을 ‘희극 배우’라고 부르는 것에 누가 이의를 달 수 있을까.
<한사랑 산악회>의 초반부가 중년 아저씨들의 디테일 묘사에 중점을 두면서 인기를 끌었다면, 캐릭터가 확립된 지금은 이를 토대로 한 스토리텔링과 콘텐츠 확장이 돋보인다. 아버지의 고충과 애환, 소소한 에피소드를 엮어내는 스토리텔링은 10분 내외의 분량의 영상임에도 그 완성도와 메시지에 있어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 캐릭터들의 개성을 바탕으로 확장하는 콘텐츠들에서 보여주는 기획력은 압권이다. 고등학교 물리교사라는 캐릭터의 직업을 활용한 수능 감독 스트리밍과 ASMR, 음악에 조예가 깊으며 LP 바를 운영하고 있는 배용길의 특성을 살리는 골든팝스와 같은 스핀오프를 보면 이들이 캐릭터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이런 캐릭터 확장과 활용을 보고 있자면, 오늘날 예능 콘텐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캐 놀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영리하게 소화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한사랑 산악회>는 언뜻 유튜브 예능 시장에서 새롭고 신선한 콘텐츠를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전통적인 코미디 문법으로 승부하고 있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디테일과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콩트인 <한사랑 산악회>는 사실 이전의 공개 코미디에서, 특히 <개그콘서트>에서 주로 시도하고 성공해왔던 웃음 코드를 활용하고 있다. 전통적인 콩트 문법을 시공간적 한계가 사라진 유튜브 플랫폼에서 새롭게 다듬었다는 것이다. <개그콘서트> 폐지 이후로 전통적 코미디의 방식과 코드에 대한 회의와 조롱이 이어지고, 그것의 무용론이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던 때에 <한사랑 산악회>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가장 성공적인 콘텐츠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보편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 기획, 디테일한 대본과 연기. 오랜 기간 코미디를 지탱해온 ‘콩트’ 장르는 tv라는 좁은 무대를 벗어나고서, 더 자유로운 무대에서 역시 그 가치를 드러낼 수 있음을 <한사랑 산악회>는 몸소 증명해내고 있다.
이미지 출처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 한사랑 산악회
https://www.youtube.com/channel/UCGX5sP4ehBkihHwt5bs5wv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