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우당탕탕 하지 말자
2015년 스물여섯 살 가을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첫 만남에 우린 서로에게 빠져들었고 우리의 성격처럼 큰 고민 없이, 세세한 계획 없이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당시 신입사원 1년 차였던 나는 통장 잔고가 거의 0에 가까운 상태였지만 어차피 오늘도 돈은 없을 것이고 내년이 되어도 상황은 비슷할 거라는 아내의 말에 다행히도 결혼을 미루지 않았다. 그나마 사회생활을 나보다 일찍 시작한 아내가 모아뒀던 몇 천만 원으로 신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입사 후 동기들이 하나 둘 새 차를 사니 그게 부러웠던 건지 '결혼하려면 최소 중형 세단은 있어야지'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그 몇 천만 원 중 3천만 원을 차 사는데 썼던 철없던 나의 과거는 지금 생각해도 뼈저리다.
결혼 준비, 가진 돈 모두 끌어 모아 전셋집 마련
일단 먼저 신혼집은 마련해야 되니 우리가 가진 돈을 모두 정리해 보았다. 차 사는데 들어간 돈 제외하고 아내가 갖고 있는 돈과 내 통장에 있는 얼마 안 되는 돈, 그리고 엄마가 어릴 때부터 내 앞으로 넣어뒀던 보험을 해지하고 받은 돈을 모두 합치니 지금 내 기억에 6천만 원이 채 안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모님 세대로부터 '빚 지고 살면 안 된다', '대출은 나쁜 것이다' 등등의 세뇌를 강하게 받고 자란 우리는 없는 형편에 당연히 집을 살 생각은 아예 애초에 하지도 못했다. 특히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사택 입주를 신청해 두었기에 그전까지만 잠시 지낼 목적으로 1억 언저리 오피스텔이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으로 발품을 열심히 팔았다. 1억이라 해도 대출을 추가로 받을 생각에 아찔했던 기억이 난다.
전세살이, 부동산 장님의 과오
그렇게 열심히 발품을 팔아 결국 찾아낸 동탄 1 신도시에 있는 전세가 9천만 원짜리 오피스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런 물건에 덜컥 계약을 할 수 있었는지 무식이 용감하다는 말이 우리를 보고 만든 말이 아닌가 싶다. 당시 우리가 계약했던 오피스텔에 잡혀있는 융자는 1억. 시세가 1.95억(최근 실거래가도 1.95억), 융자 1억에 전세가 9천이니 말도 안 되는 계약이다. 지금도 부동산에 대해서는 까막눈이지만 그땐 거의 장님에 가까운 수준이었기에 가능했던 계약인 것 같다. 부동산 사장님 왈, 융자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걱정할 이유가 없는 게 혹시나 집주인이 상황이 안 좋아 경매로 넘어가게 되면 그걸 우리가 받으면 된단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우리는 덜컥 계약서에 사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들어간 오피스텔은 준 신축에 가까운 컨디션이었지만 유흥가 바로 옆에 위치해서 밤이면 블라인드를 쳐도 네온사인이 번쩍였고, 실 평수 8평 남짓의 크기였지만 25평대에 맞먹는 관리비가 나오는 그런 곳이었다. 오피스텔은 용적률이 낮아서 실평수 대비 관리비가 비싸다는 것도 당연히 몰랐다. 9월에 전세 계약, 10월에 결혼, 이듬해 5월 첫째 출산을 거치며 아내 몸조리를 위해 처갓집에서 첫째를 100일까지 키우고 왔으니 우리가 그 오피스텔에 직접적으로 거주한 기간은 한 6개월도 안 되는 셈이다.
1년 후 전세 만기가 도래하기 전에 사택 입주 순번이 돌아와서 전세금 반환을 요구했으나 그 과정 또한 당연히(?) 순탄치 못했다. 계약 시점에 우리랑 부동산에서 만나 사인한 사람은 실질적인 집주인이 아니라 아들 명의를 빌려 투자를 한 아버지였고, 계약 만료 시점에 아들(집주인)과 아버지의 사이가 틀어져 전세금 반환은 명의자인 아들이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장 사택에 들어가야 하는데 전세금을 못 돌려받으니 오피스텔을 뺄 수도 없었다. 수차례 전화통화와 내용증명, 전세금 반환 확약서 등 집주인이 드러누워버리면 별 효력도 없는 것들을 주고받으며 2개월에 걸친 싸움을 이어간 끝에 결국 8천만 원을 먼저 돌려받고 나머지는 월 200씩 상환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우린 사택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히도 집주인은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 우리의 전세금을 모두 돌려주었지만 그 돈을 돌려받는데 들인 우리의 시간과 스트레스 등은 조금만 더 공부하고 알아봤으면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땐 왜 그게 안 됐는지 참 의문이기도 하다. 빌라왕 같은 뉴스를 보다 보면 마지막 1원까지 철저하게 돌려준 당시 집주인에게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택살이, 경제를 몰라도 한참 몰랐던 시기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1년간의 전세살이를 지나 사택에 입주. 20년이 훌쩍 넘은 17평 남짓의 작은 아파트였지만 회사에서 관리를 하기 때문에 컨디션이 나쁘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회사와 거리가 가까워 퇴근 후에 집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길다는 장점이 컸다.
어렵게 돌려받은 전세금 9천만 원이 통장에 찍혀있으니 심리적으로 여유가 상당했던 것 같다. 첫째가 돌이 지나고 태중에 둘째가 자라고 있던 17년도 여름, 우린 평생 언제 다시 가볼 수 있겠냐며 하와이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그다음 해에는 평생 언제 다시 해볼 수 있겠냐며 어릴 적 꿈이었던 카레이싱을 하기 위해 차도 한대 더 샀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경차로 할 수 있는 레이스를 찾았다.) 그렇게 '소비'에 쓴 돈이 약 3천만 원. 사택이라는 안정적인 보금자리에서 내 집마련을 위해 전략을 세우기도 전에 '소비'로 우리가 가진 돈 3분의 1을 썼다. 지금도 자본주의 경제에 관해 관심을 갖고 개념을 쌓아가고 있는 단계지만 그땐 경제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에 저질렀던 실수라고 생각된다.
사택도 거주 기한이 5년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착실히 모으고 공부해서 집을 사서 나간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갖고 있었지만 막상 어디에 어떤 집을 살지, 얼마를 어떻게 모을지 등의 상세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무서운 줄 모르고 두 건의 큰 소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 집마련, 34평 아파트 신혼특공 당첨
이렇게 살다가 사택을 탈출할 수 있을까? 사택에서 쫓기듯 나가서 또다시 전세살이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 집마련에 대한 뚜렷한 계획과 공부 없이 지내니 어느 날 덜컥 걱정이 되었다. 간간히 넣고 있던 청약은 하나같이 탈락.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구축이라도 매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우리 가족의 향후 계획 수립을 위해 유튜브와 네이버 블로그 등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정보를 모아보았다. 일단은 사택 이후 우리가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모르니 남들이 좋다는 지역과 우리가 신혼 생활을 했던 동탄을 먼저 알아보았다. 얼마 안 가 여러 매체들을 통해 내린 결론은 '입주 폭탄'으로 인해 시세가 많이 내려가 있었던 1 동탄.
그렇게 다시 찾은 동탄에서 무수히도 많은 집을 보러 다녔다. 처음엔 25평대로 시작해 나중엔 34평대까지. 한 20여 집을 돌아보고 최종적으로 계약을 하고 싶어서 협상에 들어갔던 집의 가격은 34평에 3억 5천이었다. (나중에 이 아파트는 21년 말에 7억을 찍고 다시 시세가 내려와 가장 최근 실거래가는 4.5억이다.) 여기서 5백만 원을 더 깎기 위해 부동산과 연락을 이어가던 중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곧 청약 접수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1 동탄 구축 매수는 잠시 미뤄두고 우리의 청약 조건을 따져보니 신혼 특공으로 넣어서 노려볼 만한 점수. 결혼과 동시에 출산을 연달아하면서 2자녀 조건과 신혼 조건(결혼 7년 이내)을 만족하여 꽤 높은 점수로 청약을 넣었고, 결과는 당첨. 그렇게 '우리의 첫 자가'를 마련했다.
약 2년 반의 공사 기간을 거쳐 잔금 납부를 앞두고 대출을 알아보니 외벌이 4인가족이었던 우리는 디딤돌 대출 조건이 성립되어 분양가의 60%의 돈을 1.XX의 금리로 빌릴 수 있었다. 대출을 일으키기 직전 해에 회사 성과급이 대폭 축소되어 원천징수가 줄어든 것도 타이밍이 아주 적절하게 작용했다. 요즘 금리를 생각해 보면 거의 공짜에 가까운 수준이라 월급날에 빠져나가는 원리금이 감사하게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이다. 입주 기간이 6개월만 늦어져 해가 넘어갔으면 원천징수가 디딤돌 상한을 넘어 못 받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주택도시기금과 회사에 절이라도 해야 하나 싶다.
결과적으로 돌이켜보면 그때 우리가 알아보던 1 동탄 구축을 매수했더라도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입지는 조금 떨어질지 모르겠으나(일단 시세는 더 높다.) 주변에 공원과 근린 시설이 꽤 괜찮게 형성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신축이라는 점에 있어 우리가 가진 조건(통장 잔고, 원천징수 등등)에서는 최고의 결과물이었다고 판단된다.
내 집마련 이후 다음 스텝은?
부모님 도움 없이 시작해서 첫 째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우리 힘으로 자가를 마련해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조건을 완성시킨 점에서 현재까지 우리 가계의 점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제는 다음 스텝을 구축할 단계이다. 거의 무이자에 가까운 대출을 가지고 현재 내 집마련을 해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 대출은 포기하기도 힘들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대출이라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 집과 이 대출을 유지하면서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지, 대출을 포기하더라도 더 나은 계획이 있는지 판단을 해야 한다.
굳이 이 집을 팔거나 세를 주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할 이유는 아직까지는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재에서 더 나은 삶을 구축하고 아이들에게 더 좋은 여건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답은 없다. 하지만 없는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 나의 숙제이다.
내 브런치의 끝에 내가 찾은 답을 남겨 놓을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