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 혐오자의 출퇴근길
나는 대중교통을 싫어한다.
시내버스, 광역버스, 지하철 등등.. 모든 대중교통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특히나 꽉 막힌 지하 통로를 오가는 서울의 지하철은 싫다 못해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대중교통은 막히는 도로에 비해 비교적 출발/도착 시간이 정확하고 특히나 우리나라의 좁은 땅덩이에 특화된 교통수단으로 힘들게 운전하고 주차장 찾아 헤맬 필요 없이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난 학생 신분이던 뚜벅이 시절부터 대중교통을 타는 데 있어서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후에 집에 내려가기 위해 강남 고속터미널에 갈 때면, 지하철로 30분이면 갈 거리를 버스를 타고 꾸역꾸역 서울 구경을 하며 1시간 넘게 다녔던 나이다. 지금의 회사에 합격한 4학년 2학기, 덜컥 10년이 다 되어 가는 수동 변속기 달린 중고차를 구입해 서울 시내를 휘젓고 다닐 정도였으니 대중교통에 대한 내 감정은 이 이상 말 안 해도 충분할 것 같다.
중학교 시절, 나는 매일 아침 만원 버스에 타기 위해(정확히는 버스에 얹히기 위해) 300미터 달리기를 해야만 했다.
한참 잠 많을 성장기에 아침마다 우리 집은 출근, 등교 전쟁이었다. 우리 가족은 지방 중소도시, 그것도 시내를 살짝 벗어난 외곽에 살았는데 더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아빠를 제외하고 엄마와 우리 두 형제는 아침마다 회사로,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아파트에서 내려오면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다니는 대로가 있는데, 그곳까지 거리가 약 300미터 정도 되었다. 등교 시간에 딱 한대 있는 그 버스를 놓치면 지각을 피할 수 없기에 우리 형제는 조금 늦는 날이면 토 나올 만큼 그 길을 뛰어야 했다.
길 건너편에서 회사 셔틀버스를 타는 엄마와 인사도 못하고 허겁지겁 버스에 오르면 장에 나가는 할머니들과 나처럼 학교 가는 중고등학생으로 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어떤 날은 버스에 탈 자리가 없어서 뒷문으로 겨우겨우 올라타 문에 매달리다시피 해서 학교에 가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전쟁을 치르고 학교에 가면 아침 1교시까지는 정신이 없다. 자고 일어나 뇌가 제일 깨끗하고 에너지가 넘칠 시간에 버스에다가 많은 에너지를 쏟고 나니 당연할 터. 시내에 살면서 걸어서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저녁에도 9시면 마지막 버스가 끊겨 고등학교에 가서는 야자가 끝나고 집에 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기숙사 생활을 했다. 매일 늦게까지 일하는 엄마, 아빠에게 픽업을 부탁할 노릇도 없으니 말이다.
특별활동이 있는 토요일이면 오전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한참을 또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어플로 내가 탈 버스가 언제 오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것이 없으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가 뜨겁건 춥건 버스정류장에서 한 시간에 한 두대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중학교 3년을 그렇게 만원 버스에 시달리다 보니 어느새 나는 대중교통 혐오자가 되어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고등학교 3년은 기숙사에서, 대학교 4년은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어서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연애를 하면서 내가 대중교통을 뼛속 깊이 싫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차가 생기고 난 후로 가까운 거리도 당연히 차를 타고 다니던 나였는데 문득문득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데이트를 하다 보니 그게 참 어색했던 것 같다. 요즘도 아내는 가끔 애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가게 되면 버스나 지하철을 제안하곤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애들을 데리고 그 고생을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 제안을 수락한 적은 0에 가깝다.
사람들은 막히는 길을 싫어하고 주차가 걱정되어 운전하는 것을 꺼려하지만 나는 막히는 길과 주차에 대한 걱정이 없다. 나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걸림돌이 되는 건 ‘남이 정해놓은 시간에 나를 맞추는 일‘이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버스 시간표에 맞춰 내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고, 나의 목적지를 누군가가 정해놓은 노선에 맞춰야 한다는 게 심리적으로 압박이 되는 것 같다.
대중교통 혐오자인 나는 오늘도 해뜨기 전 6시,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회사로 향한다.
출퇴근 셔틀은 심리적으로 매우 불편하다. 집에서부터 회사 까지는 편도 1시간의 거리로 아침 출근을 위해선 6시에 버스에 몸을 실어야 한다. 그 시간에 버스를 타면 사람들은 모두 잠을 잔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이 된 것 같은 불편한 기분이 든다. 그 불편함에 남들은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유용한 그 출근길이 나에겐 유튜브와 각종 즐길거리로 겨우 버텨내는 고행길이 된다. 퇴근할 때도 마찬가지로 정해진 시간에 버스를 타려면 수십대의 셔틀버스 중에 우리 동네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고, 사무실에서 3분만 늦게 나오면 그 마저도 놓쳐버리고 만다. 이런 사실들이 나로 하여금 셔틀버스에 대한 불편함을 유발하게 하는 것 같다.
얼마 전 출근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회사 동료의 부고문을 받았다.
우리 회사에는 수만 명의 직원들이 있다 보니 심심치 않게 부고문이 온다. 늘 웃음을 잃지 않고 회사일에 열심히였던 아무개 책임이 어느 날 암을 선고받아 투병생활과 회사생활을 병행하며 열심히 치료받았지만 끝내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는 부고문이 대부분인데, 어느 날 받은 부고문에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 부고문에는 새벽에 출근버스를 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 신호위반 차량에 치여 마흔이 안된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름 모를 동료의 안타까운 소식이 적혀있었다.
남일 같지 않았다. 그 부고문을 받은 이후로 출근할 때마다 문득문득 얼굴도 보르는 그분이 떠오르곤 한다. 그분도 나처럼 새벽같이 일어나 회사에 가기 위해 억지로 잠을 깨고, 동트기 한참 전 살갗을 파고드는 찬바람을 뚫고 길을 나섰다가 안타까운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남일 같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난 오늘도 셔틀버스에 몸을 싣기 위해 길을 나선다.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회사로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싫어 새해에는 기상 시간을 좀 더 앞당겨 ‘미라클 모닝’을 실천 중이다.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고) 알람을 미루고 미루다 겨우겨우 이불 밖으로 나와 허겁지겁 씻고 셔틀버스 시간에 딱 맞춰 나가는 인생에서, 새벽에 일어나 커피 한잔과 함께 느긋하게 독서와 글쓰기를 하고 여유롭게 씻고 원래 타던 곳 보다 조금 더 먼 셔틀버스 출발지까지 걸어 나가 빈 버스에 내 마음대로 자리를 골라 타는 인생으로 노선을 갈아탄 것이다. 이렇게 하니 셔틀버스에 대한 심리적 불편함이 조금은 줄어든 것 같다. 아직은 겨울이라 깜깜한 시간에 버스가 회사에 도착하기 때문에 1시간 동안 유튜브로 경제 방송을 듣거나 너무 피곤한 날은 졸면서 가기도 하지만 날이 풀려 해 뜨는 시간이 당겨지면 그 시간도 독서하는 시간으로 활용해 볼 생각이다.
모든 선택지를 두고 내 취사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삶. 지금은 비록 출퇴근 기름값이 이까워 셔틀에 몸을 싣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은 그런 것이다.
대중교통은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적어도 나처럼 대중교통에 대한 편향된 견해를 갖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대중교통과 친해지기 위해 차를 두고 버스를 이용하는 횟수를 늘리고 싶지도 않다. 나부터 대중교통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하면 해소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여 극복해 낼 것이다. 일단은 출퇴근 셔틀버스부터..
연착륙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어떤 것이든 새로 배우는 것들은 급하지 않고 부드럽게 우리 아이들에게 다가올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세상 모든 것들이 너무 힘들게 기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