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 페스토 - 낯선 땅에서, 낯선 음식과의 첫 만남

스페인에서 처음 마주한 온정

by 최환석


2011년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처럼 나는 한국을 떠나 스페인으로 향했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온전히 혼자 해외에 나가는 건 처음이었다.

끝없이 눈물을 훔치던 엄마, 나보다 더 긴장한 얼굴로 걱정을 감추지 못하던 아빠.

그 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그렇게 떠났다.



막연히 해외에 가면 다 잘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환승지인 이스탄불 공항에서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넓고 낯선 공항 한가운데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고,

직원에게 서툰 영어로 물었지만 돌아온 유창한 답변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말은 걸었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답답함에 입이 무거워졌다.


우여곡절 끝에 마드리드행 카운터를 겨우 찾아냈지만,

긴장이 풀리는 순간 오히려 더 깊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앞으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말도 안 통하는데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에 간다며 자랑 반, 허세 반으로 떠들던 그 입은

이제 무겁게 침묵했다.

이미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산세바스티안에 도착했고

짐을 찾고 밖으로 나오자

픽업 오기로 한 스페인 부부가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걸어갔고,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단 두 마디였다.

“헬로, 땡큐.”


하지만 그 짧은 인사말 뒤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스페인어.

나는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한 채, 그들의 차에 올랐다.


숙소로 향하는 길, 차창 밖으로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고, 도로엔 차도 드물었다.

간판은 모두 스페인어였고, 익숙한 아파트 대신 낮고 낯선 건물들이 이어졌다.

이 모든 것이 너무 현실 같지 않았다. 지금 이게 진짜인지 모르겠는, 마치 인지 오류가 날 것 같은 순간.



1시간 뒤, 숙소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 했지만, 한국과는 달리 너무 작아서

나와 짐들만 겨우 탈 수 있었다.

함께 온 스페인 부부는 계단으로 올라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미 다른 어학원 학생 한 명이 있었다.

부부는 내 방을 안내해 준 뒤, 그 학생과 한참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더니

나에게 뭔가 말하고는 열쇠를 건넨 채 돌아갔다.


그리고 곧 하우스메이트가 된 그 친구가 나에게 영어로 무언가 말했지만,

나는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했고

내가 못 알아듣자, 그는 뭐라 중얼거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겨진 나는 방에 들어가 조용히 짐을 풀었다.



정리를 마치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공중전화기를 찾아 25센트 동전을 넣고,

미리 사둔 국제전화카드 번호를 눌러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은 새벽 2시였다.

그런데도 엄마는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군대에서도 울지 않았던 내가

울컥하고 말았다.


기내식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엄마가 걱정할까 봐 “잘 먹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전화를 끊고 돌아와 샤워를 한 뒤,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비행기에서 한숨도 자지 못한 탓인지, 깨어보니 어느새 아침.

창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낯선 흙냄새가 묘하게 코를 찔렀다.


너무 배가 고파 환전해 온 20유로를 들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식당처럼 보이는 곳은 없었고,

보이는 건 ‘바(Bar)’ 몇 군데뿐이었다.


그때의 나는 ‘바’가 술만 파는 곳인 줄 알고,

결국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길을 헤매다가 숙소 아니 이제는 집이라고 불러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전날엔 보지 못했던 세 명의 하우스메이트가 있었다.

각자 인사를 나눴고, 나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봐서 “코리아”라고 대답했다.


지금이야 K-pop을 비롯한 한국 문화가 많이 알려졌지만,

그때만 해도 “코리아” 하면 열에 아홉은 “남한? 북한?”을 먼저 물었다.


남한에서 왔다고 설명하고,

영어를 잘 못한다고 서툴게 말한 뒤 방으로 돌아와 다시 자고 일어났더니 오후였다.

여전히 이 비현실 같은 현실과, 덜 깬 꿈의 경계 어딘가를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집엔 와이파이도 없어서 인터넷은커녕,

그전에 미리 받아 둔 한국 예능 몇 편만 반복해서 틀어놨다.


그러다 갑자기, 우당탕 하는 소리가 났다.

밖으로 나가보니 새로운 하우스메이트가 막 도착한 참이었다.


새로운 친구는 밝게 인사를 건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다른 친구들도 나와 한 마디씩 인사한 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저녁 7시쯤, 너무 오래 굶어서 이제는 배고픔조차 무뎌진 시간이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나가보니 한 친구가 저녁을 만들었는데, 같이 먹자고 했다.

나는 낯도 많이 가리고, 말도 안 통할 것 같아 정중히 거절했지만

“너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그런 표정과 손짓에 홀린 듯, 결국 거실로 따라나섰다.


거실엔 접시와 물컵이 세팅되어 있었고,

냄비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초록색 파스타가 담겨 있었다.


그 초록색은 나중에야 알게 된 바질 페스토였다.

당시는 그런 향도, 그런 음식도 처음이었다.


너무 낯선 향.

이걸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던 그 순간,

배는 고팠고, 초대받았는데 안 먹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고맙다고 말한 뒤 한 입 먹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야생 풀 같은 향과 짠맛, 그리고 꼬릿 한 치즈의 냄새.


지금은 바질페스토도, 그 꼬릿 한 치즈도 무척 좋아하지만

그땐 정말 낯설고 어색했다.

그래도 배가 고파 염치 불고하고 두 그릇이나 먹었다.

요리를 만든 친구는 웃으며 내 접시에 파스타를 더 덜어주었다.


시판 바질페스토와 파스타를 섞은 간단한 요리였지만,

나에겐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 만들어준 따뜻한 유럽식 한 끼였다.


부끄럽게도, 나는 스페인에 오기 전까지

컵라면 외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내가 요리학교에 들어가, 요리를 배우고,

결국 요리사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때였다.



지금도 가끔 바질 페스토 파스타를 먹을 때면

2011년, 그날이 떠오른다.


이국적인 땅에서, 서툰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던

서양인 외모의 어린 친구가 퍼주던 초록색 파스타와 치즈.


그날의 대화는 기억나지 않지만,

스페인 프로그램이 틀어진 텔레비전,

간접 조명으로 은은하게 빛나던 거실,

둥근 원형 테이블과 테라스,

밥을 먹고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며 바깥을 보던 그 순간까지

그 기억들은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 선명하다.


말 대신 건네진 초록색 파스타 한 그릇.

익숙한 건 아무것도 없던 그날의 나를 겨우 버티게 해 준 것은

음식에 담긴 말 없는 온기였다.

그날 밤, 처음으로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가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그날의 레시피: 바질 페스토 파스타


▪ 재료

- 바질 250g

- 마늘 300g

-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900ml

- 엔초비 120g

- 아몬드 120g

-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약간

- 파스타 120g (펜네, 푸실리 등 기호에 따라)


▪ 만드는 법

1. 아몬드는 프라이팬에서 노릇하게 볶는다.

2. 바질, 마늘, 엔초비, 아몬드, 올리브유 일부를 넣고 블렌더에 간다. 질감에 따라 나머지 올리브유를 천천히 추가한다.

3. 소금 넣은 물에 파스타를 삶는다. (물 1L당 소금 10g)

4. 익힌 파스타에 페스토를 적당량 버무리고, 치즈를 뿌려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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