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와 계란, 그리고 나
어학원 첫 등교날.
두려움 95%, 기대감 5%.
그 마음으로 어학원으로 향했다.
그땐 구글 지도 같은 게 없었다.
픽업 온 부부가 준 종이 지도 하나를 들고,
막막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다행히 하우스메이트들도 같은 시간에 나섰고,
그들과 함께여서 길을 잃진 않았다.
Urumea 강을 따라 걷는 길은,
믿기지 않을 만큼 유럽 스러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긴, 유럽이니까.
어학원에 도착해 이름을 말했다.
직원이 레벨 테스트가 있다고 했다.
잠시 기다렸다가 빈 교실로 들어갔다.
간단한 시험이라고 했는데
문제는 하나도 간단하지 않았다.
공부는 거의 안 했지만,
그래도 대학에서 2년 전공했으니
이 정도쯤은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의 나를,
지금이라도 가서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시험이 끝나고 회화 인터뷰가 이어졌다.
“Hola, me llamo Choi.
Soy coreano.”
준비한 건,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이어진 침묵.
부모님이 내주셨던 등록금이 증발해 버리는 순간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고,
굳이 뭘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러다,
복도를 지나 밖으로 나가는
다른 동양 남자애가 눈에 들어왔다.
학원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나 말고는.
말은 걸지 않았다.
그냥 따라갔다.
왜였을까.
다른 애들은 전부 서양인 얼굴이었다.
하우스메이트도, 수업을 같이 듣던 애들도,
지나가며 마주쳤던 사람들까지.
그중에서, 그 애만 조금은 덜 낯설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바에 도착했다.
그 애는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주문했다.
나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앉아, 똑같이 따라 시켰다.
또르띠야 데 빠따따, 그리고 콜라.
잠시 후,
무뚝뚝한 바 주인이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운 또르띠야 데 빠따따를 내 앞에 놓았다.
따뜻한 접시 위엔,
계란과 감자.
낯설지만 익숙한 재료였다.
포크로 조용히 잘라 한 조각 입에 넣었다.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계란과 감자는 서로를 덮지 않으면서,
조화롭게, 하지만 각각의 개성이 또렷하게 어우러졌다.
함께 나온 바게트 두 조각과도 잘 어울렸다.
그걸로 배가 찼고,
목이 막힐 즈음 콜라를 마셨다.
탄산의 따끔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위로나 감동 같은 건 없었지만,
맛있었고,
무엇보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 좋았다.
생각해보면, 그 애 입장에선 꽤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말도 안 하고 따라와선, 똑같은 걸 시키고 조용히 밥만 먹은,
공통적이라곤 동양인이라는 것 하나뿐인, 아직도 여기가 어색한 나를.
그날 먹었던 또르띠야 데 빠따따는
그 이후로도 내 삶 속에 자주 등장했다.
스페인에서 살 때 바에 가면 자주 먹었고,
요리학교에서는 가장 먼저 배운 요리였으며,
레스토랑 주방에서도 자주 만들던 메뉴 중 하나였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어느새 가장 익숙한 스페인 음식이 되어 있었다.
그날의 레시피: 또르띠야 데 빠따따 (Tortilla de Patatas)
▪ 재료 (2~3인분 기준)
- 감자 600g
- 계란 6개
- 양파 1개
- 식용유 (해바라기씨유, 카놀라유, 올리브유 등 중성적인 향)
- 소금 약간
▪ 만드는 법
1. 감자는 적당히 얇게 썰고, 양파는 채를 썬다.
2. 넓은 팬에 감자와 양파를 넣고 소금을 약간 뿌린 뒤, 재료가 잠길 만큼 식용유를 붓는다.
3. 중불에서 기포가 올라올 때까지 익히고, 이후엔 약불로 줄여 속까지 천천히 익힌다.
4. 감자를 눌렀을 때 부드럽게 으깨지면 불을 끄고, 감자와 양파를 건져낸다.
5. 볼에 계란을 풀고, 건져낸 감자와 양파를 넣어 골고루 섞는다.
6. 팬에 남은 오일을 약간 두른 후, 섞은 재료를 모두 붓는다.
7. 중불에서 아래쪽을 익히고, 접시나 평평한 뚜껑을 덮은 뒤 팬을 뒤집는다.
8. 반죽이 익지 않은 면이 아래로 오도록 다시 팬에 옮겨 담고, 속까지 노릇하게 익힌다.
▪ 팁
- 감자와 양파를 너무 바삭하게 익히지 않는다.
- 바깥은 살짝 노릇하고, 안은 촉촉하게 남아있을 때 불을 끄면 산 세바스티안식 식감에 가깝다.
- 감자 100g당 계란 1개라고 계산하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