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이제 어른이 될게" - 육아휴직 여행기
매일 아침 8시경 숙소에서 학교로 향하는 등굣길. 20분 남짓 천천히 걸어가는 헬싱키의 거리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생경한 풍경이 있었다. 바로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거나, 아이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해가는 아빠들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저출산 정책의 일환으로 '아빠 육아'가 유행처럼 번져서 주말이면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기는 하다. 하지만 평일 아침에, 그것도 엄마 없이 아빠만 홀로 유모차를 끌고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아직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핀란드에 오기 전에, 아빠 육아휴직을 하고 난 이후 마주한 신기한 풍경 중 하나가 바로 '유치원 등원 길'이었다. 아침 8시에서 10시 사이 엄마나 할머니의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향하는 아이들, 또는 동생이 탄 유모차 뒤를 졸졸 쫓는 아이들,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서 어린이집 셔틀버스 앞에서 울고불고 소리치는 아이들까지 모두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다.
평소 회사에 출근했을 그 시간에, 같은 시각 우리 동네에서는 이렇게 여자들과 아이들만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요즘은 어느 장소를 가도 적절한 성비가 갖추어진 공간에만 있다가, 이렇게 남자인 내 모습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공간에 있어 보기는 참으로 오래간만인 듯했다.
회사에 있을 때는 요즘 부는 페미니즘 열풍이 사실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가사의 중심'에 놓여보니,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가사와 육아는 '여성들만의 일'이라는 현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 헬싱키의 아침 풍경을 가능하게 한 이유가 궁금해져 갈 때 즈음, 학교에서 수업 중 'Cross cultural management and communication'이라는 강의에 참석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본교가 핀란드 헬싱키인 만큼 핀란드의 '양성평등'을 있게 한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소개도 있었다.
거의 매해 UN이 발표하는 '세계 행복 지수 보고서'에서 최상위권에 자리하는 나라, 핀란드. 올해도 어김없이 UN 산하 자문기구(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SDSN)가 발표한 '2018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핀란드가 세계행복지수 1위를 차지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핀란드는 1115년부터 1809년 까지 609년 간 스웨덴의 지배를, 1809년부터 1917년까지 108년 동안은 제정 러시아(1721-1917년까지의 러시아를 지칭)의 지배를 받았다. 그렇게 무려 700년이 넘는 오랜 식민 통치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핀란드는 불과 35년의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나라 보다도 월등히 '평등'이 근간에 자리를 잡은 사회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애초에 계급사회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들의 역사가 바로 그 이유라고 한다.
특히 1907년 제정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핀란드가 제정 러시아보다도 먼저, 또 유럽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도입한 부분에서 우리는 그들이 '평등'이라는 가치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엿볼 수 있다.
핀란드는 '양성평등'의 모범국으로도 손꼽힌다. 헬싱키 시의회 85명의 의원 중 과반수에 달하는 비율이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학교 기업 방문 수업으로 방문하게 되었던 세계 유명 여성 브랜드인 '마리메꼬(Marimekko)'에서는 임원 10명 중 9명이 여성 임원이라는 설명에 참석한 학생 모두들 많이 놀랐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비율에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여성 브랜드 회사에서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핀란드에서는 누구나가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받는다고 한다. 사람의 우열을 가리지 않고 각자가 지닌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갑질'이라는 단어가 유행어처럼 뉴스에 등장하는 우리나라의 요즘과 참 많이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교육에 있어서도 역시 핀란드는 경쟁을 거부한다. 그렇지만 어느 곳에나 명암은 있듯이 누군가는 그런 평등이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이미 가진 것이 많은 자(나라)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라고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도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요즘 더 이상 경쟁을 통한 효율성 추구는 경쟁력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자기 자신과의 경쟁과 다양성의 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가 경쟁력이 되고, 사회구성원들 간의 경쟁이 아닌 협업과 융화를 유도하는 곳만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헬싱키에서 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