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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지 May 04. 2022

떠나가는 사람의 마음

박준의 시, <인천 반달> 감상문


인천 반달


혼자 앓는 열이 

적막했다


나와 수간(手簡)을 

길게 놓던 사람이 있었다


인천에서 양말 앞코의 

재봉 일을 하고 있는데


손이 달처럼 자주 붓는 것이

고민이라고 했다


나는 바람에 떠는 우리 집 철문 소리와

당신의 재봉틀 소리가 

아주 비슷할 거라 적어 보냈다


학교를 졸업하면

인천에 한번

놀러가보고 싶다고도 적었다


후로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종이에

흰 양말 몇 켤레를 접어 보내오고

연락이 끊어졌다


그때부터 눈에

반달이 자주 비쳤다


반은 희고

반은 밝았다




 


비밀스럽게 친해지던 사람과 갑자기 연락이 끊겼던 적이 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다. 그리고 마음 한켠이 시큰하다. 좋아하던 마음이 혼자 남겨졌기 때문이다. 끊어진 인연에 대해 아쉬운마음, 떠난 상대방에 대한 잠깐의 분노,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연이어 찾아온다. 박준의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 실린 시 <인천 반달>은 인연이 끊긴 후의 적막감과 혼자 겪게 되는 아픔을 맑고 고요한 어조로 표현했다. 


 “혼자 앓는 열이 적막했다”고 말하는 화자는 문득 연락이 끊긴 누군가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 사람은 화자와 편지를 주고 받던 사이다. 그는 인천에서 양말 앞코의 재봉 일을 하고 있는데, 손이 달처럼 자주 붓는 것이 고민이라고 했다. 화자는 그 말에 “바람에 떠는 우리 집 철문 소리와 당신의 재봉틀 소리가 아주 비슷할 거에요.”라고 적었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면 인천에 한번 놀러가보고 싶다고도 적었다.  


 편지를 주고받던 상대방은 그 후로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종이에 흰 양말 몇 켤레를 접어 보내오고 연락이 끊어졌다. 그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가 화자였다면 갑작스레 끊어진 연락에 실망했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이 그 사람을 불편하게 했을지 곱씹었을 거다. 양말을 여무느라 손이 달처럼 붓는다는 그에게 “바람에 떠는 우리 집 철문 소리와 당신의 재봉틀 소리가 아주 비슷할 거”라는 말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쩌면 인천에 놀러가고 싶다는 나의 소망을 그는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에게 인천은 놀러가는 마음으로 오는 누군가를 초대할 장소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는 달처럼 붓는 다는 손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을 수도 있다. 그에 대해 아는 정보로 여러가지 추측을 하지만 그건 이미 공허한 메아리이고 그에 대한 실례일 수 있다. 그래서 그가 흰 양말 몇 켤레를 보낸 것이 아닐까. 그가 보낸 양말의 부드러움이 갑작스레 이별을 맞이한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니까. ‘네가 싫어서 떠난 게 아니’라고. 어떤 이유가 있어서 관계를 내려놓지만 너의 마음을 아프게 내팽겨치고 싶지 않다고.


 그 사람 때문에 자주 보게 되는 반달이 그의 배려 덕분에 희고, 밝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혼자 앓는 열은 적막하다. 그 열은 사랑했기 때문에 발화하는 뜨거움이다. 그와 닿았던 면이 식어가면서 남겨진 마음이 거치는 과정이다. 나도 누군가와 헤어지게 된다면, 양말을 선물했던 화자의 상대방처럼 온기를 남기고 싶다. 이별 후의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그동안 사랑했던 시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마지막 매듭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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