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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하면둘 May 14. 2023

가사노동의 미덕

    얼마 전 회사에서 팀원들과 잡담을 나누다 집안일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다들 화장실 청소라든지 설거지라든지 어떤 집안일이 가장 싫은가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다가,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 대리님 한분이 문득 집안일이 늘 하기 싫고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해 이목이 집중됐다. 그녀는 가끔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설거지나 빨래를 개곤 한다고 말했는데, 야심한 밤인지라 식겁을 한 남편에게서 무얼하느냐고 타박을 듣기도 했단다. 그런데도 대리님은 밤에 그걸 하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편안함이 느껴져 좋다고 말해주었다. 집으로 돌아가 그날 밤 청소기를 돌리다 문득 대리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주 최근에야 느끼는 것이지만, 요즘은 나도 이 귀찮디 귀찮은 집안일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안도감 같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취를 한 지 10년이나 넘었지만 가사노동이 좋게 느껴진 것은 정말로 최근의 일이다.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간 내 삶에서 차지하던 커다란 목표들이 슬슬 희미해지면서부터인 듯 했다. 그러니까 예전에 비해 뭔가 성취하고 싶은 것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반대로 집안일은 조금씩 더 좋아졌던 것 같다. 집안일이 너무 싫었던 대학시절엔 뭔가 하고 싶은 것과 되고 싶은 것이 가득이었다. 진행하던 공모전 같은 것에서 수상을 한다든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다든지 하는 작은 욕심에서부터, 크게는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훗날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런 목적과 무관한 일들은 마치 시간 낭비인냥 느껴졌었다. 집안일이란 대관절 미래에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취직을 하고 나름 안정된 생활을 하며 지내다보니 이제 그런 목적같은 건 조금씩 희미해져 간다. 딱히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먹고 사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고, 예전과는 달리 그런 큰 꿈을 이루는 것이 나의 행복에는 별 영향이 없다는 것도 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나의 행복에 끼치는 영향도만 봤을때 내년에 받을 인사고과 같은 직업적 성취보다도, 오늘 점심에 먹은 김치찌개에 들어 있는 고기 건더기의 갯수가 더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컨대, 큰 목표가 있던 학생이었을 때는 삶의 초점이 내가 만들어나갈 '미래'에 있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그것이 바로 지금 내가 사는 순간인 '현재'로 옮겨온 것이다. 서점 가판대에서 여전히 '끊임없이 노력하라', '안주하지 말라'며 외치는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자기계발서적의 저자들이 본다면 게으른 놈이라며, 나를 채찍질하실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도 할 말이 있다. 애초에 내 그릇이 작아서 간장 종지처럼 조그맣다면, 거기에 맞게 사는 것이 뭐 그리도 큰 잘못인가. 간장 종지에 간장을 담는 것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물론 모든 목표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어렴풋한 희망사항이랄까 하는 것들은 남아있다. 돈이 조금 더 있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과 만나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들. 그러나 이런 건 목적성을 가지고 덤벼든다고 한들 이룰 수 있을 지 없을 지 알 수 없는 것들이고, 없어도 그만이니 삶의 목표라고 보기엔 어렵고 그저 있으면 더 좋긴 하겠다 하는 보너스 정도가 아닐까 싶다. 대체로 이런 자세로 살다보니 조금은 무기력해져 가기도 한다. 삶이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기만 하고, 이것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느낄 때 왠지 스스로가 희미해져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니까 이런 순간에 집안일은 꽤나 도움이 된다. 우선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다. 어제 먹고 남은 설거지 거리들, 먼지 쌓인 책장, 수챗구멍에 가득한 머릿카락 같은 것들. 이들은 나의 존재감을 부각시켜 준다. '나'라는 존재의 해결사가 필요한 순간이다. 또, 희미해지는 내 앞에서 집안일은 일종의 생의 감각을 느껴지게 한다. 김치찌개를 끓이며 냄비 뚜껑을 열었을 때 서리는 김, 빨래에서 나는 체취, 책에 쌓인 먼지들. 이런 것들을 보며 나는 여기에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걸 느낀다. 내 손을 타 가지런히 정리돼있는 수건을 보면서는 마치 한석봉 어머니라도 된 듯 뿌듯하다. 그래, 너희가 늠름히 화장실을 지키고 있어주었구나하고. 그 순간 나는 우리 집안 모든 것들의 어머니이자, 아버지가 된다.


    그러고 보면 나같은 성인이 마주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더 이상 숙제가 없는 삶을 살아야되는 것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늘상 풀어가던 수학익힘책이나, 국어익힘책 같은 것이 성인에게는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숙제를 해갔을 때의 뿌듯함을 느낄 기회도 그만큼 없다는 뜻이겠다. 특히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않은 독신에게는 그런 하루 하루의 숙제가 부재하다. 물론 그런 것에 해방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네트 없이 치는 테니스'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다. 사람에게는 아주 작은 규율이나 숙제가 필요한 법이다. 혹시 아직 그런 걸 발견하지 못했다면 오늘 집에 가서 책장 위에 손가락을 한번 대보자. 당신의 손길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집안에는 꼭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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