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3 담임의 일기
‘저는 꿈이 없습니다.’ 연필로 꾹꾹 눌러썼다가 그보다 더 꾹꾹 눌러 지우개로 지운 흔적. ‘자기성찰 및 꿈 설계대회’라 이름 붙인 약 3,500자를 써야하는 자기소개서 대회에서 나는 멍하니 백지를 바라보는 아이의 허망한 눈을 생각한다. 꿈을 쓰라고는 하는데, 앞뒤옆 친구들은 사각사각 잘도 써내려만 가는데 뭐라도 적어야겠기에 펜을 들었지만, 숱한 문장들과 과거와 미래의 혼란 속에서 겨우 토하듯 적은 그 말을 아이는 이내 다시 지워버렸다.
꿈은 강요당할 수 있는가. 꿈이라 말하는 게 나의 꿈인가 타인의 욕망인가. 개인이 평생 같은 꿈을 꿀 리도 없고, 그 꿈의 모습은 각양각색으로 다를 텐데 모두가 똑같이 이 교실에 앉아 11시까지 수능특강을 푸는게 대한민국의 꿈인 것인가. 야자감독 중인 늦은 밤, 모의고사를 앞두고 공부하는, 공휴일인 내일에도 학교에 나와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책과 상념이 새삼스레 나를 찌른다. 나는 교육자의 이름으로, 교육을 하고 있지 않다.
2018.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