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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 Jun 19. 2018

대한민국 고3

그리고 담임


‘대한민국 고3’은 특별하다. 자부심을 가져야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단어이지만 고3을 수식할 때에는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느낌마저 든다. 물론 모든 고3이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기에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우려가 있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그 특수성은 ‘대한민국 고3’이라는 단어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아침 8시 즈음이면 학교에 와서 밤 11시까지 학교에서 ‘산다.’ 수능이라는 대명제 아래 기본적인 스트레스와 울분과 불안을 안고 지낸다. 학교생활기록부를 채워야하기 때문에 허울뿐인 각종 교내 대회에 나가야 하고, 수행평가를 해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주말마다 봉사활동도 가야한다. 그러니까 6월에만 아이들의 대회와 과제를 합치면 15개가 넘을게다. 내신을 놓치면 안 되기에 두 달에 한 번씩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친구를 밟는다. 한 문제 차이로 등급이 떨어지면 그저 우는 수밖에 없다. 심장이 없는 성적표 위의 숫자는 그 눈물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너의 노력이 부족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 등급에는 1부터 9까지가 있는데 이게 참 공평하지가 않다. 약 1/4 정도만 받을 수 있는 3등급대 정도는 되어야 실질적인 대학상담이 가능하다. 다시 말하지만 1/4이다. 그러니까 무려 39명이나 되는 우리반에 약 10명 가량만 그나마 웬만한 대학에 간다는 이야기다. 다들 목을 매는 in 서울은 더욱 심각하다. 낮게 잡아야 2점대 중반까지 노려볼만한데 그 숫자가 우리 반에 5명 정도다. 5명! 그런데 사람들은 서울대 연고대만 있는 줄 안다. 아니 서성한이, 중경외시, 건동홍숙, 국숭세단 정도는 되어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나머지 34명은 뭐라고 표현하는게 좋을까. 루저, 실패자, 들러리...로 만들어버리는게 지금 우리 교실에서 교육의 이름으로 매일 이루어지고 있는 말도 안 되는 폭력이란 말이다! 그럼 나머지 34명은 경쟁에서 일찌감치 제외되어 자유롭냐고? 아니, 아까 말했듯 더 큰 불안, 더 가혹한 패배의식을 가진 채 매일 학교에 11시까지 남아 공부를 한다. 핏기 없는 얼굴은 곧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고등학교 시간표가 기억나는가? 단언컨대 진공을 허락하지 않는 건 권력이 아니라 고등학교 시간표이다. 하루의 자갈밭을 지나고 밤늦도록 자리에 앉아 마음 놓고 졸지도 못한다. 학교의 몇몇 교사들은 여전히 자습 인원으로 담임의 열정과 애정을 평가한다. 아이 한명 한명의 인생과 인성은 보려하지 않는다. 그저 그 아이의 등급과 진학대학이 관심 있을 뿐이다. 공부를 안 하는 아이는 무책임하고, 한심하고, 말 안 듣는 대상일 뿐이다.   

이토록 감정적인 글을 쓰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되고 말았다. 나는 매일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 속에서 허우적대는 고3의 삶과 그리고 그 담임으로 살아가는 일도 만만치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월드컵이고, 정상회담이고, 선거고 간에 귀 닫고 입 닫고 매일 11시까지 남아 아이들을 잡아두어야 하는 간수의 역할이 문득 지겨워져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2주 밖에 안 되는 방학 일정을 회의하며 ‘고3’이기 때문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10시까지 아이들을 붙잡아두기로 결정했기 때문이 아니다. 

하루만 더 쉬자고 말했다가 ‘애나 담임이나 똑같아’라는 부장의 말을 또 듣게 될까봐 아니면 작년처럼 ‘너희반 담임은 너희를 포기했구나’라는 말을 돌려 듣게 될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 아니다.

나도 모르는 아이들의 미래를 볼모로 현재를 무자비하게 희생시키며 굳이 진흙탕을 구르게 한 뒤 어른이라는 무책임한 이름표를 주고 사회로 내보내는 공장노동자이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방법이 이게 맞나 여전히 확신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다. 나는 다 알면서도 아파만 하고 고치려 하지 않는다.      

내 짧은 교직의 절반 이상을 고3 담임으로 보냈다. 이렇게라도 가끔씩 토해내지 않으면 나는 괴물이 되고 말 것이다.

                                                                                                                                                       201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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