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유 없는 취미도 있다

by 콩딘


“이거 왜 배우려고 하세요?”


처음 무언가를 배우러 갈 때 늘 이 질문을 듣는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건 나에게 일상이나 다름없지만, 그때마다 마주치는 저 질문엔 여전히 말문이 막힌다. 내가 왜 배우려고 했더라. 99퍼센트는 거창한 이유가 없다.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느 날은 ‘피자...!’, 다른 날은 ‘떡볶이...!’라고 머릿속으로 어떤 초자연적인 계시(?)를 받듯이,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어쩌다가 계시를 받았을 뿐이다.


‘이걸 배워야겠다!’고.


물론 선생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왜 배우는지 물어보는 질문은 그저 스몰토크의 연장이거나 앞으로의 커리큘럼에 참고하기 위한 간단한 물음일 가능성이 높다. 부담을 가질만한 질문이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어쩐지 그럴듯한 대답을 내놓고 싶어진다. “그냥 재밌을 거 같아서요.” 이런 거 말고. 그래서 대체로 일단 취미에 발을 먼저 들이고, 배우려는 이유는 나중에 생각하는 편인데 이번엔 다행히 이유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할 필요가 없었다. 드물게도, 명확한 이유가 나를 그림의 길로 이끌었다.


여러 진로를 고민하던 중, 김해인 만화 편집자의 <펀치>라는 책을 읽고 만화 편집자라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됐다. 어렸을 때 한창 만화에 빠졌던 적이 있고 지금까지도 웹툰은 즐겨보는 중이지만, ‘출판만화’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체화할 정도로 빠삭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만화를 직접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때 작곡을 공부하면서 처음 써보는 악기는 가급적 잠깐이라도 먼저 배워봤던 것처럼, 만화를 직접 그려봐야 만화 편집일도 수월할 것 같았다.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이유도 명확하니 더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선생님을 찾아봤다.


첫째, 현역 만화가로 활동하는 분.

(만화 작법뿐 아니라 한국 출판만화 판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둘째, 디지털 드로잉 보다는 아날로그 드로잉을 가르쳐주는 분.

(좋아하는 작가님이 종이와 펜으로 그리신다는데 그게 멋져 보여서 따라 해보고 싶었다)


마침 딱 맞는 분이 계셔서 금방 선생님을 구할 수 있었고, 상담 날 당연하게도 이 질문을 하셨다.


“배우시는 이유가 뭐예요?”

“만화 편집일에 관심이 생겼는데, 만화를 직접 그려보면 나중에 편집할 때 더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

“아, 완전 도움 되죠.”

도움이 될 거라는 선생님의 말에 이 방향이 맞는 거 같다는 확신이 들어서 이렇게 첫 만화 수업을 듣게 됐다. 전에 받아본 미술 수업이라곤 초등학생 때 잠깐 다녔던 ‘김충원의 미술 교실’ 뿐이고, 그마저도 파르페와 생크림 토스트를 먹으러 그 옆에 있던 ‘캔모아’에 더 열심히 다닌 거라 바로 만화 그리기를 배울 수는 없었지만.


선생님은 만화 수업 전에 먼저 기초 드로잉을 2~3개월 정도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많이 지루할 거예요”라고 덧붙이시는 게, 뭔가 의사선생님이 말하는 “조금 아픕니다” 같아서 조금 걱정은 됐다. 저 말은 조금 아픈 게 아니라 ‘아주 많이’ 아프다는 말이니까! 많이 지루한 거는 도대체 얼마나 지루할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에는 이유가 있는 배움이니까 지루해도 좀 참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믿음이 있었는데...


드로잉을 배운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을 때, 그림을 배우는 이유가 사라졌다.






* 그림 수업 첫 날에는 선 연습을 했다.

이 사진처럼 하지는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