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도 금방 질려서 오래 지속하기 힘든데, 필요에 의해 해야 하는 일은 더더욱 끈기 있게 버티기 어렵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운동! 운동을 해야 하는 건 머리로는 잘 알지만, 몸이 영 따라와 주지 않는다. 건강에 심각성을 느껴 발레, 풋살, 러닝, 헬스, 수영을 비롯한 다양한 운동을 해봤지만, 모두 두 달을 채 넘기지 못했다. 그나마 오래 한 운동이 (약 6개월 한) 수영이었는데, 그마저도... 더 버티지 못하고 수태기(수영+권태기)가 와버렸다.
수영을 쉬니까 체력이 훅훅 줄어드는 게 피부로 느껴져서 (다시) 러닝을 도전해 봤지만, 여름이라 덥다는 핑계로 달리러 나가지 않다 보니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가을, 가을은 또 수영하기 좋은 계절이니까* 언니한테 부탁해서 악명 높은 수영 신규 등록의 벽을 뚫었다. 그렇게 다시 수영 시대 시작된다...싶더니만. 이번엔 내 치아가 문제였다.
수영이 참 재밌고 좋은 운동인데, 물에서 하다 보니 제약이 많이 생긴다. 생리 때에는 가기 어렵다든지(물론 탐폰/생리컵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 펌이나 염색을 하거나, 몸에 상처가 생기면 일정 기간 쉬어야 한다든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영 가기 전에, 미루고 미루고 미뤄둔 사랑니 발치를 해치우려고 치과에 가서 총 점검을 받았는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긴급 속보] 사랑니보다 충치 치료가 더 시급함.
충치 치료에 드는 시간 약 1~2개월, 충치 치료 이후 사랑니 4개 발치. 생리 때, 충치 치료 때, 사랑니 발치 할 때, 다 쉬면 수영 언제 할 수 있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한 달에 나갈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결국 수영 등록을 취소했다.(새벽에 일어나서 수영 등록을 해준 언니에겐 심심한 위로를...)
그럼...이제 무슨 운동을 하지?
오르막을 조금만 올라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체력이 쪼그라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수영이 아니더라도, 무슨 운동이든 해야 했다. 역시 큰 준비 없이 바로 뛰어들 수 있는 러닝밖에 없나 생각하던 차에, 이소 작가님의 <검도 – 몸과 마음을 쭉 펴는 시간>이라는 책을 읽게 됐다. 사실 책을 펼쳐보지도 않고 표지만 보고 나서 바로 머릿속에 “난 검도를 해야겠다!”는 계시를 받았는데, 책을 읽으며 검도 도장을 찾아보다 우리 집 근처에는 없다는 슬픈 소식을 알게 됐다. 하지만 난 이미 계시를 받아버렸고, 이미 도복 입은 내 모습(상상)에 취했다. 검도는 못 해도 비슷한 계열의 도복 운동을 한 번 해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검도 외에 합기도, 유도, 주짓수, 태권도 등등 도복을 입는 여러 운동 중, 가장 접근성이 좋은 태권도로 마음이 기울었고, 책을 완독한 다음 날 바로 집 근처 도장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도복을 입고 태권도장 날라다니는 학생들, 도복을 입고 상담을 해주시는 관장님, 상담실에 쌓여있는 흰 도복들. 눈앞에서 도복을 마주하니 다시 심장이 떨렸다. 도복이란 얼마나 멋진가.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데도 나의 ‘멋짐’에 취할 수 있는 취미는 귀하다. 악기 가방만 메도 어쩐지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타(혹은 베이스). 스틱의 팁이 삐죽 튀어나온 가방을 보기만 해도 뿌듯해지는 드럼. 그리고 태권도. 설사 하얀 띠라도 ‘도복을 입고 있는 나’는 그 자체로 폼난다!
이렇게 도복에 홀려 빠르게 도장 등록을 마쳤고, 이제 상상 속의 내가 아니라 현실의 내가 도복을 입고 태권도를 한다. 폼나는 운동 찾으시나요? 그럼 도복을 입으세요!
* 보통 여름이 수영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초보 수영인에게 여름은 오히려 수영 배우기 좀 힘든 계절일 수 있다. 다 같은 생각(여름엔 수영이지!)을 해서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 그래서 더위가 한 풀 꺾인 가을~겨울에 수영을 시작하는 게 좋다.
(저의 멋진 도복을 자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