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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쩨제 Mar 08. 2020

그렇게 3인칭이 됐다

-할아버지 엄마 아빠 언니, 그럼 나는?




이 일은 또리와 처음 숨바꼭질했던 날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한 번 숨어 있어 볼까?”

라고 언니가 물었고, 나는 “좋아!” 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또리를 사이에 두고 언니와 나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

내가 재빨리 장난감으로 또리의 시선을 돌린 사이 언니는 발 빠르게 방문 뒤로 숨었고, 또리를 위한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언니 어디 있어? 언니?”


하며 내가 바람 잡으면, 언니는 방문 뒤에서 “또리야~!” 하고 불러서 또리가 찾게 하는 놀이!

처음엔 또리둥절하며 이 방 저 방 서성였지만, 계속해서 “또리야!” 하고 부르며 힌트를 줬더니 결국 또리는 언니를 찾아냈다. 그럼 언니가 짠! 하며, “언니 여기 있지!” 하고 또리가 꼬리를 붕붕 흔들며 달려드는 것까지가 우리의 첫 숨바꼭질이었다.


이 모습이 너무 귀엽고 재밌어서, 엄마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뒤에도


“할아버지 어디 있어?”
“엄마 어디 있어?”
“아빠 어디 있어?”


하며 끊임없이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 하나, 또리가 나를 어떻게 찾게 할까?

나는 위치상 또리의 언니지만 우리 집에선 제일 막내다. 게다가 이미 또리에게 ‘언니’라는 이름은 이미 우리 언니로 인식이 되어서 나를 부를 때도 똑같이 쓸 수 없었다.


언제나 독창적인 별명을 만드는 할아버지로부터 작은 언니라는 뜻의 ‘쪼꼬 언니’를 받았지만 내 입으로 “쪼꼬 언니 여기 있지!” 하기가 민망하고 입에 안 붙기도 하고, 언니가 옆에서 “그건 쟤 별명으로 하기엔 너무 귀여워!”라고 딴지를 걸어서 패스.(하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종종 부르신다. “쪼꼬 언니 어디 있어?”)


그 이후로도 여러 별명들을 전전하다가, 결국 그중 가장 무난한 ‘성진이’가 되었다.

내 입으로 내가 나를 부를 때 내 이름을 부른 게 정말 까마득히 오래전이라, 이 또한 어색했지만 다른 별명들을 내 입으로 부르는 것보단 나았다.

그리고 또리와 숨바꼭질할 때, 또리를 내 쪽으로 부를 때, 또리가 잠자다 나와서 내 방으로 들어올 때, 등등 하도 "성진이, 성진이." 하며 부르다 보니 이제 ‘성진이’가 자연스럽게 입에 붙었다.


또리는 내가 익숙해졌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성진이'에 적응해서 누군가 "성진이!" 하고 부르면 나를 돌아봤다.





그렇게 나는 '성진이'가 됐다.
또리의 쪼꼬 언니 '성진이'.







또리와 성진이









덧.)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엄마가 또리를 안고 "성진이! 성진이!" 하며 내 방으로 들어왔고, 그에 나는 "성진이! 성진이"라고 화답하며 또리를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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