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모찌가 가려나 봐"
모찌가 우리에게 온 지 6주 그리고 5일밖에 되지 않은 아침이었다.
모찌는 우리 첫아기의 태명이다.
첫아이를 유달리 기다렸기 때문인지, 유달리 예민한 탓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6~8주 사이에 임신 사실을 눈치를 챈다지만 와이프는 모찌가 우리에게 온 사실을 임신 4주 무렵부터 알고 있었다. 나에게 임밍아웃을 하던 임신 4주 차에 사용한 테스트기가 이미 4개였다. 몸의 작은 변화에 기뻤고 하루하루 확신을 얻고 싶었던 와이프의 설레는 마음의 크기를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놀랍고 기쁜 일이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 육아에 대해 상상할 때면 막연히 어깨를 짓누르는 막중한 책임감 때문인지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보다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곤 했었다. 그럼에도 막상 와이프에게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두 눈이 번쩍 뜨이고 슬슬 올라가는 입꼬리가 잡히지 않는 것을 느끼며 한 생명이 우리에게 온다는 것은 이렇게도 크고 기쁜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예비 아빠들처럼 “내가 아빠다!!”라고 소리치면서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라기보다는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쁨으로 다가오기도 했고, 33살이지만 여전히 애 같은 내가 아빠가 됐다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일은 생각보다 낯 간지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친한 친구들과의 모임 자리를 굳이 만들어가며 아빠가 되었음을 흘리곤 했고, 임신 초기에는 임신 소식을 알리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말에도 아빠가 됐음을 말하고 싶어 간질거리는 입이 내가 아빠가 된 사실에 몹시 설레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부모가 될 준비를 하는 엄마와 아빠의 준비는 많이 달랐다. 와이프는 육아 백과사전을 매일같이 펼쳐 주수별로 아이에게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를 공부했고, 다양한 어플을 다운 받아 주수별 아이의 성장과정을 기록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나는 와이프와는 다르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입힐 옷, 태울 유모차, 용품들을 찾아보며 어떤 것들을 사주고 입혀야 우리 아기에게 가장 좋을지를 찾아보곤 했다. 백화점에 가면 평생 가지 않던 아동층에 꼭 한 번씩 들러 이것저것 만져보며 얼굴도 모르는 0.3cm의 태아와의 시간들을 기대하곤 했다.
준비하는 모습이 완전히 다른 엄마와 아빠였지만, 모찌를 보낼 때는 서로를 의지해서 부둥켜안고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는 어떻게든 자라고 태어난다고 생각했던 나와는 다르게 와이프는 늘 걱정이 많았다. 사소한 자극과 통증에도 불안해하던 와이프는 월요일이 되자마자 회사 앞 병원에서 처음으로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고 왔다.
“아기가 주수에 비해서 심장박동이 느리네요”
의사 선생님은 와이프를 한껏 불안하게 한 뒤 아직 6주밖에 되지 않아 태아마다 성장 속도의 차이가 있으니 아직 큰 걱정 할 단계는 아니라며 안심멘트로 작은 희망도 주셨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 주 금요일에 있었던 산부인과 진료에서는 5일 만의 진료임에도 심장박동이 여전히 느리고 아이의 크기도 크게 자라지 않아 불안하다는 진단을 했다. 그라나 이번에도 1주일 정도 안정을 취하면 좋아질 수 있으니 회사를 1주일만 쉬어보라는 안심멘트가 함께 처방됐다.
처방된 안심멘트가 허망할 만큼 병원에 다녀온 지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다음날 아침. 와이프가 하혈을 시작했고, 모찌가 우리 곁을 떠날 것 같다는 와이프의 말에 화들짝 놀라 무작정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여전히 심장은 뛰고 있지만 심박이 더 느려져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이번에도 안정을 취해보라며 안심멘트를 잊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의사 선생님도 엄마도 아빠도 모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괜찮다 괜찮다
끊임없이 되뇌며 돌아왔지만 집에 도착한 순간 와이프와 동시에 울음이 터져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모르게 서로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이틀을 내리 부둥켜안고 울고 나니 비로소 모찌를 마음에서 조금씩 보내줄 수 있었다.
주말을 내리 하혈을 하고 복통을 호소하던 와이프와 함께 월요일에 다시 산부인과를 방문해서 완전유산 진단을 받았다. 하나의 생명이 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새삼 깨달았다. 콩알보다도 작고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태아가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이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인지 몰랐다. 부모가 되면 철이 든다고 했던가. 아직 완전한 부모가 되기도 전에 자녀로 완성조차 되지 않은 태아를 생각하는 마음을 느끼며, 부모님께 받은 사랑은 가늠할 수 없다는 말이 새삼 가슴 깊이 다가왔다.
와이프는 모찌가 효자였던 것 같다고 했다.
유산 과정이 순탄치 못해 수술이나 약물을 통해 유산을 마무리하는 산모가 많은데 다행히도 완전 유산이 되어 수술이나 약물로 유산하고 갖은 고통을 견뎌내는 시간을 갖지 않아도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산으로 인해 엄마도 아빠도 긴 휴가를 얻게 되어 아주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더 의지하고 힐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7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 생명이 온다는 신비함과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모찌에게 한 번 더 감사했다.
모찌야 다음에는 더 건강한 모습으로 엄마 아빠에게 다시 와줘. 이번보다 더 훨씬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너를 위해 좋은 엄마 아빠가 될 준비를 하고 있을게.
고맙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