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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림 Dec 09. 2022

‘슈룹’이 찝찝한 이유에 대하여


슈룹은 작가의 창작권과 역사적 고증이 대립한 작품이다.


필자는 슈룹에 대해서 정말 재밌게 봤다. 주인공 화령의 캐릭터가 시원스러서 좋았다.


중전이 뭐가 저렇게 품위가 없냐고 하는 반응들이 일각에서는 있었지만 필자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화령의 캐릭터가 저렇지 않았다면 이 극이 저렇게 재밌지는 못했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배동선발이나 세자경합도 재밌게는 봤다. 다만 적서의 세계가 분명하지 않은 건 여전히 찝찝하다.


왜 그렇게 적서에 집착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여자도 왕이 되고, 성균관 학사도 되는 퓨전 사극이 나오는 판에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동북공정의 문제가 아니더도 필자에게 이 문제는 여전히 찝찝한 문제였을 것 같다.


연모, 성균관 스캔들과 슈룹은 아주 중요한 부분에서 차이를 지닌다.


그게 뭔지 알겠는가?


연모, 성균관 스캔들은 여성인 게 나중에 드러나면서 갈등을 빚고 문제가 된다. 그 시대의 가치관에서 벗어난 일을 한 나름의 대가를 치룬 것이다.


반면 슈룹은 어떠한가? 세자가 죽었어도 적자가 엄연히4명이나 있었다. 그런데 ‘택현’이란 제도를 주장한다. 그것도 다수의 대신들이 말이다.


‘그 시대의 가치관과 역행하는 데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 필자는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다. 슈룹은 확실하게 재밌는 컨텐츠다. 그렇지만 이 부분에서의 찜찜함은 잘 사라지지 않는 거 같다.


웹소설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슈룹 정도가 아니라 정말 더 심각한 일이었다.


주인공이 매국노였다. 근데 결말이 연인과 잘 먹고 잘 살았다.


그 당시에도 웹소설계에서는 작가의 창작권을 옹호하는 입장과 매국하는 글을 팔아야 하냐고 뜨겁게 달아올랐었다.


주인공이 매국노이고 연인과 잘먹고 잘사는 한줄의 스토리, 그 스토리를 읽었을 때 당신의 감정은 어떠한가?


열이면 열, 불쾌감을 느꼈을 거라고 본다.


주인공이 매국노이면 비참하게 죽는 결말이어야 한다. 연인과 잘 먹고 잘 산다로 가려면 중간에 회심을 하던가 뭔가를 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주인공이 매국노인데 잘먹고 잘 사는 것에 분노하는가?


현실을 봐라. 친일파의 후손들이 더 득세하는 게 현실이 아니던가.


하지만 글은, 이야기는 현실이 아니다. 최소한 독자의 신념, 가치관은 건드리지 않는 게 작가의 예의다.


모든 개인의 신념, 가치관을 건드리지 않을 수는 없기에 사회적으로 용인된 선 안에서 작업을 하는 거다.


그게 바로 사회적 통념이다. 그래서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는 주인공은 거기에 따른 대가를 치룬다.


대표적으로 불륜이 있다. 불륜을 하는 작품 치고 뒤끝이 좋은 경우는 거의 드물다.


불륜은 정말 인간이 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사실 매국노하고 비교하면 굉장히 개인적이다.


그러니까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불륜도 그렇게 난리를 치는데 하물며 매국노를 저렇게 그린다면 독자들의 저항이 있는 게 당연하다는 거다.


결이 다르지만 슈룹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제외하고서라도 이건 조선시대의 핵심 가치에 반하는 일이다.


거기서 본능적인 불쾌감을 느낀 시청자들이 꽤 있을 거다. (작품이 재밌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필자도 작가다. 작가의 창작권을 존중한다. 그러나 ‘권리’는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창작권이라는 창이 있다고 해서 시대의 핵심적인 가치관을 방패를 당연히 찔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찌를지 그냥 있을지 선택하는 건 물론 작가다. 그러나 찔렀다면 찌른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역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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