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영화관을 가는 것은 많이 주저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화관 팝업이 뜨고 어플에 들어가서 살펴보던 중...
부산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는 문구를 보고 예매를 했습니다.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호기심이 더 앞섰습니다..
토요일인데도 영화를 보는 사람은 저를 포함 3명이었습니다.
영화관 사장님께는 죄송스럽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사람이 없는 영화관에서 조용히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사치에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출처. CGV 이미지 다운로드영화의 이야기는 전달 의식을 지니고 있는지 매우 인위적입니다.
아픈 아버지가 있고 아들은 행사 진행을 하며 돈을 벌고 여동생은 휴학을 하고 학원을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경험해 본 사람이면 알 것입니다.
누군가는 멋진 차를 몰고 다니며 내가 일하는 매장 주차장에 차를 세웁니다.
또 누군가는 한 끼에 두 시간 일하는 금액에 해당하는 음식을 먹고
때로는 버는 것이 적어도 선배님이란 존대에 대한 값을 치르기 위해 내가 두어 시간 일한 돈을 써야 하는 등.
당시는 다들 넓고 깊게 생각하는 수준의 차이가 있기에 작은 것이라도 자신의 것을 내놓고 상대를 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는 부모님의 것이 자신의 것이기에 상대가 내어 주는 작은 것들에 대하여
찌질하다는 평을 하며 짧은 생각과 시선으로 상대를 대하는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시기로 추정되는 동생. 그리고 사회인으로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오빠.
이 둘을 바라보며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병간호를 교대하고 가는 아들에게 '파이팅'이라고 말하는 아버지...
그 파이팅은 과연 자식에게 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딸이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딸이 아버지를 부축하며 돕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대변기 칸에 놓아드리고 나오면서 혼자 일어나려 하지 말고 당부를 하고
꼭 자신을 부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다른 장면이 나온 후 전화로 동생이 오빠에게 울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특별히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한데 화장실에서 볼일을 다 본 후에
혼자 일어나시려고 하다가 어딘가에 부딪혀서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말을 TV에서 종종 들으면서 자세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면서 존엄성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성적인 관점으로 보기 어려운 관계라고 봅니다. 그러나 성적 차이가 있음은 분명합니다.
아버지는 딸에게 자신이 볼일을 보는 것과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신체를 보여줘야 하는 것.
그러한 상황에 대하여 항상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셨을 것입니다.
이는 딸이 혼자 일어서려 하지 말고 꼭 자신을 부르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다고 봅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가족들에게는 슬픔이지만 타인에게는 무감각한 일일 뿐입니다.
장례식장 직원에게는 사업입니다.
장례식장 직원은 주인공을 무조건적으로 돈으로 보기보다는 무덤덤하게 업무로 바라보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식당 아주머니는 수육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가난한 상주에게 배려를 해 주셨는지
수육을 안 해도 된다고 말을 해서 상주의 부담을 덜어 줍니다.
하지만 장례식을 방문한 사람들은 육개장에 수육을 떠올리기에
그 말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게 잠시 주의가 머물렀을 것입니다.
친구들이 도착했을 때 상주는 뒤돌아 서 있고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듣습니다.
우리가 흔하게 하는 돈을 맞춰서 내야 한다는 것과 부조를 하면 돌려줘야 하는 부담감이 있을 수 있다는
누구나 고민해 봤을 만한 또는 경험해 봤을 만한 이야기를 제시하여
몰입을 하게 하는 한편 친구들을 등지고 가만히 그 하는 말을 들으며 앉아있는 주인공을 통해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친구들의 말은 가난한 친구에 대한 배려인 한편
아버지 장례식 비용을 치러야 할 주인공의 현재 상황을 더욱 분명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장치라고 생각됩니다.
장례식이란 경건한 예식에 끊임없이 돈이 필요한 상황이 등장합니다.
장례식은 현세를 마무리하는 의식이며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를 표현하는 자리라고 봅니다.
돈은 현세를 살아가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요소로 의 식 주 모든 것이 함축된 대상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장례식장과 같이 마지막 가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자리에서는 돈 이야기하는 것을
매우 불편해합니다. 이는 주인공이 행사를 간 집에 초상이 났을 때 상주에게 돈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는 부분에서도 드러납니다.
죽음은 세상과 끊어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상과 인연을 끊는 의식인 장례식 중에
세상과 관련된 일들이 점차 등장합니다.
친척에게 빌린 돈은 이제 세상과 관계가 끊어진 아버지 대신 그 아들에게 이어집니다.
아버지는 세상과의 관계가 끊어졌는데 세상은 아버지를 놓아주지 않고 계속 돈을 요구합니다.
사업이기에 최소 인원 30인에 맞춰서 치를 대금이 필요하고 음료수와 술의 수는 정확히 파악되어
그에 따른 값을 치러야 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아버지를 떠올리고 추모해야 할 의식인데 주인공에게는 아버지를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세계는 계속해서 아버지를 보내고 싶으면 무엇이든 매듭지으라고 죽은 자에게 더는 필요 없는 돈을 아버지의 장례식을 위해 계속 요구를 합니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를 조용히 생각하며 보내기보다 진정으로 아버지에게 필요 없는 돈(장례식 비용)을
벌기 위해서 아버지를 떠납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걱정스러운 주인공에게 우연히 해결할 방법이 생깁니다.
그것은 태어날 아이 때문에 행사 일을 가지 못하게 된 선배가 자기 일감을 주인공이 받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미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선배에게 악운이 따를까 봐 주인공은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지 않습니다.
탄생과 죽음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거리감이 작용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이의 탄생은 시작인데 그것에 대하여 죽음의 소식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그 인식으로 인하여 조금이라도 변화된 행동과 생각이 새로운 시작을 하는 아이에게 해를 끼칠까 하는 생각이 반영되어
그런 미신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생과 사가 단절이 아닌 이어짐으로 인식해서 소식조차도 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근거는 바리데기 이야기와 같은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서 산 사람도 죽음의 세계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죽음에 대한 인식은 멀리멀리 가다 보면 죽음의 세계가 나오는 것을 통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서양에서는 강으로 단절이 되거나 지하 세계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런 삶과 죽음에 대한 이어져 있다는 인식 때문에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임에도 아이가 태어날 선배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말하지 않고 계속 버티다가 나중에 어떻게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을 때
그때 털어놓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 차이는 핼러윈 데이와 같은 기념할 대상에 대한 인식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서양의 다른 세계의 존재들은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이나 인간을 해치는 존재입니다.
이는 그들이 삶의 반대편에 있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다른 세계의 존재들은 인간이 한을 품은 귀신. 씨름을 좋아하는 도깨비처럼
인간에게 이유 없이 해를 가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달에 대한 인식도 서양에서는 부정적인 것으로 본다면 한국에서는 달은 전해져 오는 민요들을 통해서
어둠을 밝혀주는 존재이며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을 이뤄주는 긍정적 존재로 인식합니다.
이런 인식은 현대에도 이어져서 달밤을 배경으로 하는 현대 소설들에서는 낭만적 분위기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서구 소설에서 달밤이 범죄가 늘어나고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과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문화가 교류되면서 한국에서 전통 절기를 챙기는 것보다 핼러윈 데이를 더 우선하고 기념하는 행사들이 많은 것처럼 그 경계가 모호해진 것들이 있어서 앞서 제시한 것들에 대해 반론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옆으로 빠진 것을 다시 정리하자면 새 생명의 탄생을 앞둔 가정에 죽음의 소식을 알리지 않은 것.
그리고 이러한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미신이 존재한 이유에 대하여 개인 의견을 말해 보자면
탄생과 소멸은 서로 다른 성격의 것이기에 구분을 하려는 심리의 작용일 것입니다.
다른 관점은 생과 사는 이어져 있기에 죽음의 소식이 생명 맞이를 앞둔 가정에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하여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까 우려하는 마음(예. 산모의 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산모의 마음에 동요가 와서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 등)에 생긴 미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선배의 일을 받고 아버지의 끝을 지키는 의식에서 자리를 할 것인가
아버지의 장례비를 마련해야 할 것인가 계속되는 고민 끝에 장례비를 마련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이는 일을 하기 전과 한 후에 물품을 선택하는 차이에서 드러난다고 봅니다.
선배를 통해 일을 소개받기 전에는 국의 종류를 선택하는 것. 수육을 추가하느냐 마느냐에서
모두 가장 저렴한 것으로 합니다.
그런데 이후 미루다 미룬 입관 과정의 물품은 좋은 것으로 해 드린다고 하는 것을 근거로 볼 수 있습니다.
언제 생겼는지 모를 말 중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못 들어주냐'란 말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을 우선하는 생각이 반영된 말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 말이 떠올랐던 장례식 준비 장면에서는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앞서 말한 말이 떠오르며 산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끌려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못 해 드린 후회 때문에
마지막에 자신의 마음의 짐을 덜려는 산 사람을 위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죽음에 있어서 입관 과정에서 좋은 등급으로 준비해 달라고 합니다.
장례 물품에 있어서 등급이 있는 것은 몇 가지 관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듯합니다.
우선은 곁에 있어도 소중한 줄 몰랐던 부모님의 마지막에 좋은 물품을 드린다는 것은 합리적 관점으로 봤을 때 문제가 있습니다. 장례 물품은 영화 중에 가격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카드 하나를 1만 원에 판매하는 장면 하나를 근거로 추론해 본다면
일반 옷의 가격과는 차이가 분명하게 날 것입니다.
이처럼 예를 다해야 한다는 과정 속에서 상주와 같은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는 장례식장은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느라 항의하지 못하는 유가족의 입장을 반영하여 일상적으로 구매하는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장례식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장례식장이 설악산에서 음료수를 파시는 분들처럼 물품을 구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주인공은 동생이 자는 것을 깨우지 않고
장례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비를 미리 받고 학원을 중간에 그만두겠다던 동생을 위해서
아버지의 장례 중에 잔칫집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