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잡담] 잔칫날 2-내용 공개 주의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느냐. 한국 단편소설 같은 영화

by 기록

찾아간 시골 마을.

쉽지 않을 것이란 암시의 장치가 역시 보입니다.

잘 타고 다니던 자동차는 무엇을 말하려는 듯 마을 입구에서 고장이 납니다.

주인공의 일상 깨짐의 시작입니다.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황 자체가 평생 한 번 경험하는 일이기에 일상은 깨진 상태입니다.

그런 비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약속 시간에 늦지 않고자 분장 도구를 들고뜁니다.


다수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소중한 일상이 깨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06)은 평범한 공간인 한강에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환상적인 일탈이 아니라도 기생충(19)에서는 가난한 일상 중 부잣집과의 연결점이 생기며 일상의 변화가 생깁니다. 일상에 있을 법한 일을 제시하여 더 몰입하게 합니다. 환상적이든 일상적이든 이들 모두 주인공이 비일상 속에서 있다가 일상으로 돌아오고자 노력하고 조금은 망가지긴 했지만 일상에 근접한 상황으로 돌아옵니다. 잔칫날의 주인공에게 매일 타고 다니던 차가 고장 난 것은 이러한 비일상의 시작점이며 이렇게 일상이 깨짐에서부터 흥미로움은 시작되고 지켜보게 만든다고 봅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한 곳은 다래 상자들과 농기구들이 쌓여 있는 창고입니다.

격식을 따지지 않고 본래의 것만 중시하는 시골 사람들에 대한 성격이 배경 설정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이렇게 창고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오늘 팔순 잔치를 의뢰한 사람이 교육계통 일을 한다고 합니다.

다양한 사건들이 교육 계통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학생의 수와 학부모의 수만큼 다양한 눈높이를 제시하고 그에 맞출 것을 요구하는 것 또한 교육계입니다. 이런 교육계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인물로 설정하여 주인공에게 행사 진행을 의뢰한 것도 하나의 장치라고 봅니다. 행사가 중단되었을 때 행사비 200만 원을 아까워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말을 하고 돈을 조금 주기 위해서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마을 사람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을 위로하면서 점잖게 말을 하고 행사비를 내어주는 행사 진행 의뢰인의 대비가 사회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활용하여 인물의 대비를 만들어 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결말부의 해결 방식이 자연스럽게 흘러간 것의 하나라고 봅니다.


이러한 부분들도 1부에서 제시한 교과서적이란 말씀을 드리는 근거입니다. 교과서에 수록된 원고지(이근삼)의 경우 인물 설정이 박사인 아버지와 돈만 찾는 아내 그리고 젊은 세대답게 즐기는 딸 등의 설정입니다. 인물 설정에 있어서 지식인인 박사를 제시하여 박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을 활용하여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또 꺼삐딴 리(전광용)에도 박사가 나와서 일본에 붙어살고 러시아에 붙어사는 기회주의적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지식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아는 만큼 신중하고 생각 깊은 모습이 있는데 그렇지 못하고 시대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지식인에 대한 이미지와 실제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박사 사이 이미지 충돌로 시대의 문제성과 인물의 행동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잔칫날에서도 잔치를 부탁한 사람을 교육계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한 사람으로 설정한 것은 해당 분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있기에 결말에서 원만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행사비를 주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에 자연스러운 흐름을 형성했다고 봅니다. 만약 힘을 쓰는 건설분야나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이 무엇인가 깨우쳐서 주인공에게 이야기하고 행사 비용을 온전하게 주는 설정과 비교하면 이야기 흐름에서 인식의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물 설정의 교과서 적인 성격이 있음을 제시하고 다음은 사건 설정에서 교과서적인 성격이 있음은 아버지의 장례식과 팔순 잔치 행사 중 할머니의 장례식이라는 실제 일어나기 힘든 인위적 사건의 배열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개인 생각이지만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들은 다수가 어떤 기법이나 장치 또는 무엇인가 전달하기 위해서 아직은 작품과 만남의 경험이 적은 학생들을 위해 극명하게 특정된 영역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을 쓰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앞서 예를 들은 원고지(이근삼)에서는 아버지인 교수의 복장이 원고지이고 쇠사슬을 차고 있습니다. 해당 작품을 읽지 않아도 특이하단 것과 쇠사슬은 어떤 억압이란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꺼삐딴 리에서는 인물이 강점하는 나라가 일본, 미국, 러시아 등 바뀔 때마다 계속 그 나라 말을 배우고 연줄을 만듭니다. 인물에 대한 문제를 공유하고 싶어서 인물이 계속 일관되게 문제 행동을 한다는 것이 느껴 집이다.

이러한 장치들을 생각한다면 잔칫날에서도 무엇인가 전달하기 위하여 장례식과 자신과 같은 자식의 위치인 행사 의뢰자, 아버지와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으면 하는 할버니, 생일잔치 중에 죽음과 같은 일상적이지 않아 눈에 띄는 장치들을 제시했다고 봅니다. 이러한 것들은 무엇인가를 전달하기 위해 흩뿌렸지만 마치 교과서 학습 활동을 하듯이 일정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만든다는 것은 어떻게 할까요? 그것은 해당 분야에 대한 정보를 예상 관객이 알지 못해서 작품에서 말해주는 그대로 따라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웃사촌(20)이란 영화에서 군부 독재 시기를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특정한 시기를 명확히 제시하지는 않아서 군부 독재에 대한 사람들의 대략적인 배경지식을 건드리면서 자세한 것은 작품 내에서만 제시하여 관객이 작품 내의 정보를 중심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비교적 인위적 과정이 있더라도 몰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역할에는 배우의 표정과 그 상황에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장치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잔칫날에서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자식이 주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객은 거부감이 일어납니다. 너무 큰 거부감은 작품에 대한 몰입을 방해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거부감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공처럼 어려운 상황이라면 주인공에게 이해하겠지만 자신이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면 현실적인 문제보다는 도리를 따졌을 것입니다.


이렇게 창고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행사 분장을 하는 중에 마을 이장이 찾아옵니다. 마을 이장은 주인공에게 열심히 하면 특별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고 귀띔을 줍니다. 돈이 궁해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이만큼 든든한 일이 없습니다. 주인공은 과묵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은 행사가 끝나고 얼마를 받게 될지는 미정이지만 돈을 받는 것이 확실해진 이후부터는 아버지의 장례 물품에 대하여 좋은 것을 골라달라고 합니다. 그런 선택은 팔순 잔치를 하는 모습을 본 것에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해 드리고 싶은 심경의 변화일 수도 있고 돈이 들어온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으로 입관 물품의 등급 선택에서 고민을 하다 좋은 것을 고르게 된 것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드디어 행사가 시작되고 남편을 잃은 후 웃음을 잃었다는 주의사항에 맞게 행사 분위기 잡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픈 상황에 주인공이 평소보다 힘을 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의 관심은 잔칫날 주인공의 표정에 쏠립니다. 하지만 할머님의 표정은 혼자 살아서 내가 이렇게 좋은 날을 맞이해도 되나 하면서 영감님을 그리워하는 듯합니다. 그러던 상황 중 주인공은 팔순 잔치를 의뢰자 분이 주신 두루마기와 모자를 떠올립니다. 이 두 물건은 할어버님이 생전에 쓰시던 것으로 이것을 입은 주인공을 보면서 할머님은 생전의 할아버지를 보신 듯이 그리워하며 마지막에 얼굴 한 번 봐서 좋다는 표정으로 미소와 함께 쓰러지셨습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그 옷을 입은 주인공에게 '여보'라고 한 마디를 내뱉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리 없는 마을 주민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아마도 잔치를 즐기기보다는 어머니의 표정만 살핀 아들만이 그 진상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은 위중한 어머니를 따라 응급실로 향했고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와 함께 신나게 춤판을 벌이느라 이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할머니가 두루마기와 모자를 쓴 주인공을 보고 할아버지의 생전 모습으로 착각한 부분이 할머니의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로 보입니다. 많은 이야기 작품들에서 자주 보는 장치들이라 교과서적 성격이 있다고 말하는 근거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공감적인 위치로 같은 시공간에서 보낸 시간이 1여 년만 되어도 시간이 흘러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 때까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떠오르는 시작이 수십 년이고 이 세상에서 아예 볼 수 없다면 그 그리움은 경험해 보지 못해도 기존에 알고 있던 아련함보다 배는 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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